Lori Andrews and Dorothy Nelkin, Body Bazaar: The Market for Human Tissue in the Biotechnology Age (New York: Crown Publishers, 2001), chap 6. (pp. 102-125) [『시민과학』 38호, pp. 35-49에 수록]
DNA 수사망: 생물학적 감시와 DNA 신원확인의 확대
로리 앤드류스 & 도로시 넬킨
블레어 쉘턴(Blair Shelton)은 감식기술자가 DNA 검사를 위해 그의 혈액을 채취했을 때 눈물을 흘렸다. 그 전날, 경찰이 쉘턴의 직장인 티제이 맥스(T.J. Maxx)로 찾아와 지배인에게 그에 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경찰은 지배인에게 한 여자가 키가 170cm에서 188cm 사이이고 나이는 스물다섯에서 서른다섯 사이로 보이는 흑인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말하면서 쉘턴이 그 남자일 수도 있다고 넌지시 암시했다. 쉘턴은 37세의 흑인으로 자기 집을 갖고 있었고 티제이 맥스와 인근의 학교에서 수위 일을 맡아 하고 있었다. 경찰이 지배인에게 그에 관해 물어본 후 그는 첫번째 일자리를 잃었다.
쉘턴은 결백했지만 경찰은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경찰은 검사를 위한 혈액 샘플을 제출하도록 압박을 가했고, 만약 자발적으로 내놓지 않으면 혈액 채취를 위한 수색 영장을 받아오겠다고 위협했다. 경찰을 상대해 본 경험이 없었던 쉘턴은 굴욕감을 느꼈고 겁에 질려 결국 눈물을 흘리며 샘플 채취를 허용했다.
쉘턴은 이번 DNA 수사망에 걸려들었던 미시간주 앤 아버에 거주하는 수백 명의 흑인들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앤 아버 경찰은 강간범의 모호한 인상착의에 근거해 7백 명의 남자들을 검문했고 DNA 검사를 위해 그 중 160명의 샘플을 채취했다.
쉘턴의 DNA는 강간범의 DNA와 일치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경찰의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 이후 몇 주 동안 경찰관은 그가 극장 앞에 줄을 서 있거나, 버스에 막 올라타려 하거나, 빵을 사고 있거나, 야구장 주변을 조깅하고 있을 때 나타나 그를 검문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의 혈액이 이미 분석되었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시하도록 요구받았다. 그 중 한번은 그가 자신의 유전적 결백함을 “증명”할 때까지 경찰관이 그에게 총을 겨누었던 적도 있었다. 결국 그 서류는 추가 심문을 피하기 위한 “통행증”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나중에 강간범이 잡히자 쉘턴은 자신의 혈액 샘플을 되돌려 받기 위해 경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997년 법원은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현재 쉘턴은 “그 일로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를 잊지 않기” 위해 냉장고 안에 그 두 개의 튜브를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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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뱉은 침, 약간의 핏자국, 정액 얼룩, 머리카락 한 가닥 ― 이들 모두는 DNA “지문(fingerprint)”을 만드는 데 이용될 수 있다. DNA 프로파일(profile)은 누군가의 손이 닿은 물체나 우표를 핥은 침 또는 이발소 바닥의 머리카락으로부터 뽑아낼 수 있다. 1998년 강간 혐의를 받고 있던 한 남자를 미행하던 감시요원들은 그가 거리에 침을 뱉자 압지를 써서 이를 수거했고, 법의학 실험실은 이 소량의 샘플로부터 방사선 사진 위의 이미지 ― 바코드를 닮은 수평적인 선들의 집합 ― 를 만들어냈다. 이 방사선 사진은 범죄현장에서 수거된 정액 샘플의 패턴과 일치했고 그 남자를 고소하는 데 필요한 증거를 제공했다.
처음에는 이 기술이 유전병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 표식자(marker)를 식별해내기 위한 기법으로 의학적 맥락에서 개발되었다. 그러나 1983년에 영국의 한 유전학자가 강간범의 신원확인 용도로 DNA 분석법을 이용했고, 이후 DNA 검사는 대중 감시의 영역으로 퍼져나갔다. 오늘날에는 매년 수백만의 사람들이 스스로가 블레어 쉘턴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음을 깨달으면서 범죄해결을 위한 유전자 프로파일을 만들기 위해 신체조직 일부를 내놓고 있다. DNA 지문감식은 그 절차가 상대적으로 비간섭적이고 간단하다는 점 때문에 의학적 맥락이 아닌 많은 다른 영역 ― 예를 들어 군대나 이민 심사국과 같은 ― 에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DNA 지문감식에 특히 매료된 것은 경찰조직으로, 그들은 이제 DNA 지문감식을 신원확인의 “금본위제(gold standard)”로 여기고 있다.
오늘날 DNA 지문감식의 유행은 컴퓨터 연산능력의 향상과 범죄에 대한 우려의 증가가 결합해 중앙집중화된 신원확인 시스템의 설립 시도에 힘을 실어주었던 1960년대 후반에 이미 예견되었다. 당시 존슨 대통령 직속의 경찰 및 사법 위원회(Commission on Law Enforcement and the Administration of Justice)는 범죄를 통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컴퓨터화된 국가범죄기록보관소 건립을 제안했다.
중앙감시시스템의 도입을 추진했던 당시의 노력은 대중적 저항에 직면했다. 미국인들은 공공기관의 지도자들을 신임하지 않았고, 중앙집중화된 정보시스템을 불신했으며, 시스템이 프라이버시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국가신원확인센터의 설립 구상은 이른바 “도시에 사회(dossier society)” ― 권력을 가진 정부관료들이 국민들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개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사회 ― 의 망령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인들은 “거의 감지하기 힘든 감시의 눈길”이 형사재판 시스템을 넘어 더 확대될 것을 우려했다. 비판자들은 이 시스템이 오용될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는데, 예컨대 정당한 허가를 받지 않고 “수상쩍은” 사람들을 추적한다거나, 특정 단체를 선택적으로 감시한다거나, 정치적 활동가들을 괴롭힌다거나, 고용 내지 신용등급에 필요한 자료를 찾는 민간기업에 정보룰 누설한다거나 하는 것이 그런 예들이었다.
블레어 쉘턴의 경험은 오늘날 DNA 신원확인을 위해 혈액과 조직을 수집, 저장하는 프로그램이 예전과 동일한 쟁점을 제기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DNA 신원확인 시스템에 대해 항의하는 대중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작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범죄 수사의 비용을 낮추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DNA 데이터베이스를 환영하고 있다. 현재 컴퓨터에 자신들의 신용등급에 관한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지만, DNA 샘플의 수집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협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DNA 신원확인 기술을 둘러싸고 있는 과학의 신비스런 이미지(aura)가 점차 확장되고 있는 DNA 검사 프로그램의 수용에 기여하고 있다.
1989년 버지니아 주는 유죄판결을 받은 강간범과 폭력범의 혈액 샘플을 수집해 주 DNA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을 통과시킨 최초의 주가 되었다. 경찰은 교도소를 출소한 폭력범의 재범 확률이 62%에 달한다는 연구를 인용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1990년 이 법은 동일한 연구에서 비폭력사범의 경우 1000명 중 4명만이 출소 이후 폭력 범죄를 저지른다는 점을 보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폭력사범까지 포함하도록 확대되었다.
1991년 버지니아 타즈웰 31호 교도소에 수감중이던 6명의 재소자들이 주 정부의 강제적 DNA 검사 프로그램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은 이 프로그램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는데, 개별적인 혐의 사실이 없는 상태에서 DNA 샘플을 강제로 추출하는 것은 부당한 수색과 체포를 금하고 있는 수정헌법 4조의 보호조항에 위배된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헌법상의 이 보호조항은 어떤 사람이 특정한 범죄에 연관되어 있다는 모종의 증거(“상당한 근거”)가 없는 한 수색받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해석되어 왔다. 그들은 또한, 법이 통과되기 이전에 유죄판결이 내려진 재소자들의 경우 석방을 위한 조건으로 DNA 샘플을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한 단서조항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러한 요구는 가석방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추가적인 조건을 덧붙여 [가석방을 위한] 정당한 절차에 간섭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물론 재소자들이 투옥될 때 특정한 권리들을 포기하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죄수들은 프라이버시의 많은 부분을 잃는다. 교도관은 재소자의 감방에 들어갈 수 있고 영장이나 허가를 미리 얻지 않고도 소유물을 수색할 수 있다. 그러나 6명의 버지니아 재소자들은 체액의 추출이 신체 보전권(right to bodily integrity) ― 그들이 별도의 범주로 정의한 권리 ― 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설사 교도소 체계 하에 놓인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신체조직의 일부, 자신들의 유전적 청사진이 침해당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법원은 동의하지 않았다. 법원은 주 정부가 “상당한 근거”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음을 인정했지만, 범죄 억제 및 탐지에 관한 주 정부의 이해관계와 재소자들의 프라이버시라는 이해관계를 견주어 볼 때 버지니아 주의 혈액 샘플 수집은 합당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 판결을 놓고 고심한 한 사람의 판사가 있었다. 순회판사인 머내건은 그 판결이 폭력범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했지만, 비폭력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재소자들로부터 혈액을 수집하려는 구상에는 단호히 반대했다. 그는 비폭력 범죄자들이 출소 이후 폭력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0.4%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법원에 상기시켰다. 그리고 머내건은 감방이 사적인 장소가 아니라고 해서 이것이 곧 신체 세포 역시 사적인 것이 아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감방에 적용되는 판례는 모든 범죄자(폭력범과 비폭력범을 가리지 않고)의 체액에 대한 수색을 허용하도록 확대되지 말아야 했다. 또한 머내건은 행정적 효율성이라는 관심사가 시민들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중대한 침해를 부추길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곧이어 다른 주들도 버지니아 주의 뒤를 따라 자체적인 DNA 신원확인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이런 움직임은 의회로부터의 재정적 유인책에 의해 촉진되었다. 1994년 제정된 범죄통제법(Crime Control Act)은 FBI가 운영하는 CODIS라는 이름의 국가 DNA 분석 프로그램에 2천만 달러를 지원했고, 주(州) 실험실의 DNA 검사능력 개발을 위해 4천만 달러의 연구비를 제공했다.
1998년이 되자 50개 주 모두가 특정 범죄자들에 대해 법의학적 DNA 검사 목적의 혈액 샘플 제출을 요구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상적인 범죄해결 시스템이라고 가정한 것, 즉 경찰이 살인현장에서 얻은 DNA와 보관중인 DNA 프로파일을 서로 맞춰볼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데 수억 달러가 투입되었다. 버지니아 주 법의학 국장은 “컴퓨터 스위치를 가볍게 두들김”으로써 대부분의 폭력범죄가 해결되는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실제로도 200건 이상의 사건들에서 범죄현장에서 수거된 샘플과 DNA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 샘플을 맞춰 봄으로써 범죄자를 밝혀낸 바 있다([아무런 정황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DNA 증거만 가지고 범인을 찾아낸] 이런 경우를 “맹목 적중(cold hit)”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이상적” 시스템에는 결함이 있다. 일례로, 맹목 적중은 상당한 근거를 밝혀낸 후 수행하는 DNA 검사보다 신뢰도가 떨어진다. 그리고 FBI의 CODIS 시스템이 주 법의학 부서들에 자체적인 프로그램을 설립하도록 조력을 제공하고 있긴 하지만, 그러한 [주 단위의] 프로그램들은 적절한 시기에 양질의 DNA 검사를 할 수 있는 자금과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NA 검사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처음에는 주 법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강간범에 대해서만 DNA 수집을 요구했다. 통계적으로 볼 때 강간범이 높은 재범율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초의 대상으로 강간범을 선택한 것은 전략적 조치이기도 했데, [강간범과 같이] 매우 부정적인 대중적 이미지를 지닌 집단에 대해 DNA 검사를 강제로 부과하는 것은 대중의 반대를 유발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었다. 이 전략은 DNA 정보은행 프로그램의 확대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일단 은행이라는 게 한번 설립되고 나면 ‘예금’을 모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아닌가?
DNA 프로그램들은 곧 폭력범죄와 비폭력범죄 모두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4개 주에서는 중범죄의 경우 일단 유죄판결을 받으면 피고로부터 혈액 샘플을 채취하는데, 여기에는 낮은 재범율을 보이는 비폭력 범죄자들도 포함된다. 버지니아 주에서는 우편 사기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도 반드시 샘플을 제공해야 한다. 오레건 주와 아칸소 주는 포주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에게 DNA 샘플 제공을 요구한다. 위스콘신 주에서는 범죄가 차후 성범죄로 진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사가 판단하면 DNA 샘플을 요구할 수 있다. 적어도 7개 주에서는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DNA 검사를 하는데, 심지어는 교통법규 위반자들까지 샘플 제공을 요구받을 수 있다. 그리고 29개 주에서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들에게 적용되는 DNA 수집법을 가지고 있다.
뉴욕 주에서는 중범죄, 강간, 폭행, 근친상간 또는 탈옥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인들로부터 혈액 샘플이 수집된다. 1998년 12월 뉴욕 시 경찰부장 하워드 새피어(Howard Safir)는 체포된 모든 사람들로부터 DNA 샘플을 수집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 설령 그들이 실은 무죄라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더라도 말이다. 새피어는 지하철 회전문을 뛰어넘는 것과 같이 “대수롭지 않은(small-time)” 범법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나중에 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고 가정했다. 1999년 10월 주지사인 조지 파타키(George Pataki)는 납치, 절도, 방화, 마약거래 등을 포함해 DNA 샘플을 요구하는 범죄 수를 21가지에서 107가지로 증가시키는 DNA 데이터베이스 확대 법안에 서명했다. 뉴욕 시장인 루디 지울리아니(Rudy Giuliani)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는 차후의 DNA 분석을 위해 모든 신생아들로부터 혈액 샘플을 수집할 것을 제안했다.
일부 지역 경찰은 앤 아버에서 블레어 쉘턴을 위협했던 것과 같은 DNA 수사망을 이미 펼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경찰이 혐의자의 인종에 관한 모호한 설명에 근거해 샘플 요구 대상을 선정한다. 1998년 경찰은 병원 간호부장을 목졸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 DNA 수사망을 동원하면서 50명에 달하는 병원의 흑인 직원들에게 타액 샘플의 제공을 요구했다. 그들은 수사를 효과적으로 집중하기 위한 수단(비용효율적)이라며 DNA 수사망을 정당화했다. 경찰이 범죄 현장 근처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샘플을 채취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1993년 독일에 주둔중인 미 육군 하사관의 두 살 난 딸이 납치되어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된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8개월 동안의 조사를 통해 군인 주거단지 근처에 사는 1,900명의 남자들에 대해 DNA 검사를 한 후에야 살인범을 밝혀낼 수 있었다. 1995년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교외에서 일어난 연쇄 강간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2,300명 이상의 남자들로부터 타액 샘플을 수집했다. 이들은 범죄 현장 인근 도로에서 무작위로 검문을 당했다.
DNA 수사망은 다른 나라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1997년에 쁠랑-뽀제리라는 작은 마을(인구 2,000명)에서 십대 소녀를 강간, 살해한 범인을 잡기 위해 마을에 사는 15세에서 35세 사이의 모든 남자들에게 DNA 검사를 위한 혈액 샘플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영국에서는 1988년에 북아일랜드 경찰이 게릴라 용의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강제적 유전자 검사를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1991년 영국의 몇몇 하원의원들은 경찰이 범죄자를 더 쉽게 잡을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의 유전자 지문을 수집, 보관해 둘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국가시민자유위원회(National Council for Civil Liberties)는 영국인 특유의 조심스러움을 담아, 이런 방침이 프라이버시를 위험에 빠뜨릴지도 모른다는 점잖은 논평을 냈다. 이 제안은 몇 년 동안 수면 아래 잠재되어 있었으나, 1994년에 경찰이 “신기술을 통한 범죄해결”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어 국가 DNA 데이터베이스의 개발을 공표함으로써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이 보도자료에서는 전과기록이 남는 범죄로 인해 체포되거나 기소되거나 유죄판결을 받은 용의자들로부터 동의를 받지 않고도 “은밀하지 않은 부위의(nonintimate)” DNA 샘플을 채취할 수 있도록 경찰력을 확대할 것도 함께 공표했다. 그리고 영국 경찰의 한 고위 간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 DNA 데이터베이스의 설립을 요구하면서 이를 통해 범죄수사의 시간과 비용이 절감될 거라고 주장했다.
앞서 버지니아 주의 사례에서 이의를 제기했던 머내건 판사는 행정적 효율성이라는 목표가 미래의 어떤 시점이 되면 모든 시민들에 대해 출생시에 DNA 검사를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라고 해봐야 미래에 발현될지 모르는 폭력의 가능성 때문이라는 게 전부일 텐데, 이조차도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구체적인 증거는 전혀 없는 것이다. 또한 그는 만약 주 정부가 비폭력 범죄자들의 혈액 수집을 허용한다면, 동일한 논리에 의해 인종적 소수집단처럼 구별되는 주민들에 대한 검사 역시 허용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주 정부가 [흑인들이나 소수민족이 주로 거주하는] 도시 내부의 인구밀집지역에 들어가 혈액 샘플을 요구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머내건 판사와 비슷한 주장이 매사추세츠 주 사례에서는 승리를 거두었는데, 1998년 8월에 열린 예심 법정(trial court)에서 수정헌법 4조에 위배된다는 이유를 들어 재소자, 집행유예자, 가석방자로부터의 DNA 수집을 중지시킨 것이다. 그러나 1999년 4월 이 문제가 매사추세츠 대법원으로 옮겨졌을 때, 법원은 50개 주 모두가 이미 법의학 DNA 법률을 채택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판사들은 DNA의 채취가 수색과 압류에 해당하며 따라서 수정헌법 4조의 적용을 받는다는 데는 동의했으나, 유죄판결을 받은 중범죄자들은 온전한 프라이버시권을 누릴 수 없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혈액 샘플을 수집하는 것은 합당하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보스턴의 관선 변호인인 벤자민 킨(Benjamin Keehn)은 미끄러운 경사길(slippery slope)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아예 일망타진해 버리지 그러는가?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 데이터베이스에 DNA가 보관되어 있을 확률이 훨씬 높다. 물론 당신이 맹목 적중을 매번 얻어낼 때마다 분명한 실익이 존재한다. 이것은 극적인 성공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대체 어디서 이를 멈출 것인가?” 강제적 유전자 검사 프로그램이 확대되어 감에 따라 킨의 질문에 내포된 중요성은 커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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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호놀룰루 인근 캐니오이 기지에 주둔중이던 두 병의 해병대원 조셉 블라콥스키(Joseph Vlacovsky) 하사와 존 메이필드 3세(John Mayfield III) 상병은 기지 내 의료부서로 호출을 받았다. 그들은 이것이 정기 신체검사를 위한 의례적인 호출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신체검사가 아니라 군대의 강제적 유전자 샘플 수집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혈액과 뺨의 상피세포를 제공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들은 DNA 샘플이 그들이 혹 전투에서 죽게 될 때 유해의 신원확인을 쉽게 하기 위한 용도로 국방부 DNA 보관소에 저장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메이필드는 샘플이 그 외 어떤 용도로 쓰일 것인지, 누가 그것에 접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보관될 것인지 등의 문제를 알고 싶어했다. 어느 누구도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와 블라콥스키는 혈액 제공을 거부했고, 상관에 대한 명령불복종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1990년 미 의회는 모든 군 인력의 DNA 검사를 위한 혈액 및 신체조직의 수집을 의무화한 군사 프로그램을 승인하고 예산을 지원했다. 국방부는 1992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진행시켰다. 여기에는 현역과 예비병력뿐 아니라 심지어는 무명용사가 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민간인 직원과 청부업자까지도 포함되었다. 각각의 개인들은 지문, 서명, 혈액, 구강표본(oral swab), 바코드가 담긴 두 장의 밀봉된 플라스틱 카드를 보관해 두게 된다. 카드의 비용은 탐침을 포함해 3달러에 불과하다.
군인들이 개별적으로 소지하던 전통적인 “군번줄(dog tag)”과는 달리, 이제 군 인력의 DNA 샘플은 보존을 위해 진공 밀봉되고 냉동된 상태로 메릴랜드 보관소에 저장된다. 샘플은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냉장실(가로세로 5미터×9미터)에 보관되어 있는데, 냉장고 하나에 140만개의 검체를 보관할 수 있다. 이 DNA 은행에는 매일 5천 개의 샘플이 추가되고 있으며, 군 당국은 2001년까지 400만 개의 샘플이 저장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DNA 보관소인 이 은행은 샘플을 2,500만 개까지 저장할 수 있다.
군 당국은 유해에 대한 신원확인이 군인과 그 가족들의 절박한 관심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DNA 은행 이전에는 “군번줄”과 치아 및 지문 기록이 유해의 신원확인 가능성을 상당한 정도로 향상시켰다. 그러나 군 DNA 신원확인 연구소(Armed Force DNA Identification Laboratory)의 초대 프로그램 관리자이자 군 의료조사관(Armed Force Medical Examiners) 사무국의 수석부관인 빅터 위든(Victor Weedn) 중령에 따르면, 오늘날의 전장은 더욱 치명적인 것이 되었다. 걸프전에서의 사상자들과 더욱 파괴적인 무기들의 발달은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해 더욱 향상된 능력을 요청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사막의 폭풍 작전 때 298구의 사체를 처리했던 한 영안실의 기록에 따르면, 그 중 30%가 지문을 읽어낼 수 없었고, 14%는 지문을 채취할 수 있는 손가락이 없었으며, 20%는 치아기록의 해석이 불가능했고, 26%는 식별하기 힘들 정도로 갈가리 찢겨 있었다.
위든은 법의학 병리학자이자 변호사이며 의사이고 DNA 분석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러시아 정부의 의뢰를 받고 DNA 신원확인 기법을 이용, 짜르 니콜라스 2세의 유골을 검사해 그것이 진짜임을 확인했던 인물이다. 그는 또한 대형참사에서 엉망으로 훼손된 사체 잔해들의 신원확인을 위해 다양한 미 정부기구들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국가교통안전위원회(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와 함께 일했을 때는 상무장관 론 브라운(Ron Brown)을 비롯한 비행기 추락 사고의 사망자들과 TWA 800 항공기에서 수습된 희생자들의 신원확인을 맡았고, FBI와 일했을 때는 텍사스 주 와코에서의 화재로 사망한 브랜치 데이비디언(Branch Davidian) 사교도들의 신원확인 작업을 했다. 위든은 강제적 군 검사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육군, 해군, 공군 병사들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그들은 ― 만약 전장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면 ― 자신들[의 희생]이 기억될 것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그는 무명용사의 묘(Tomb of the Unknown Soldier)가 과거 한때의 유물로 남기를 희망한다.
유해의 신원확인 문제는 1차대전을 거치면서 중요하게 부각되었는데, 전례없는 엄청난 사망자 수와 함께 수많은 사체들이 신원확인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영국에서는 500만이 넘는 남자들(남성인구의 22%)가 군에 입대했고, 15세에서 49세 사이 남자의 7%가 전쟁에서 죽었다. 가장 격심했던 몇몇 전투에서는 전장에서 사망한 사람들 중 신원이 확인된 경우가 25%에도 못미쳤다. 이러한 미확인 전사자들은 전후 사회에서 중요한 상징적·개인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당시의 한 신문기사에서의 표현을 빌면 이렇다. “사망[이라는 통지]은 최종적인 것이고, 부상은 희망과 가능성을 의미하며, 전쟁포로는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음을 암시한다 . . . 그러나 행방불명은 지독한 것이다 . . . 그것은 어떤 빛도 뚫고들어올 수 없는 구름의 장막 뒤로 삼켜진 것과 같다.” 1차 대전기의 전투에서 행방불명된 병사들의 남은 가족들은 군 당국의 무관심과 책임회피를 비난했다. “무명용사”라는 말은 전쟁의 공포에 대한 강력한 상징이 되었다. 가족들의 요구는 그에 대한 응답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모든 미확인 전사자들을 대표하는 최초의 “무명용사의 묘”가 1920년 영국에 건립되었다. 미국에서는 1932년 버지니아 주 앨링턴에 무명용사의 묘가 만들어졌고, 전쟁에서 알려지지 않은 채 죽어간 이들을 기리기 위해 한 구의 사체 ― 찾는 가족은 없지만 칭송받는, 그리고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는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의 신화로서 기념되는 ― 를 안치해 두고 있다.
그러나 블라콥스키와 메이필드는 죽었을 때의 신원확인보다 살아있는 동안의 신체 보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블라콥스키는 군법회의에 회부될 위험을 감수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것[군법회의]이 남은 내 인생을 파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소란이 끝나고 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내 DNA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두 명의 해병대원들은 버지니아 재소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신체조직 채취가 수정헌법 4조의 프라이버시권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부당한 수색과 압류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나는 입대할 때 프라이버시를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헌법적 권리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라고 메이필드는 말했다. 그들은 또한 수집된 샘플이 부지불식간에 혹은 자신들의 동의 없이 유해에 대한 신원확인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었다. 예를 들어 샘플이 유전질환에 대한 소인(素因)이나 동성애 성향을 평가하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우려였다. 샘플은 생물무기의 개발과 같이 그들이 반대하는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으며 범죄 수사에서 경찰 당국에 의해 이용될 수도 있다.
책임있는 유전학을 위한 회의(Council for Responsible Genetics), 그리고 유전자 차별 문제에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던 폴 빌링스(Paul Billings)라는 임상의가 해병대원들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진술서를 제출했다. 빌링스는 검사로 인해 밝혀진 정보 때문에 병사들이 제대 후 받는 혜택이 거부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검사는 특정 조건에 해당하는 이들을 [제대 후] 혜택으로부터 배제함으로써 증가하는 비용-편익(benefits costs)을 상쇄하는 데 이용될 수 있었다.
위든은 그런 우려를 일축했다. “만약 당신이 우표를 핥아서 소득 신고서에 붙여 보낸다면, 당신은 DNA 샘플을 이미 정부에 보낸 것이다.” 실제로 FBI는 [1993년의] 세계무역센터 폭파사건 용의자의 범행 여부를 판단하고 유나바머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우표에 묻은 침을 검사한 적이 있었다. 위든은 더 큰 신뢰를 요구했으며 정부는 보관된 정보를 오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뢰에 대한 위든의 호소는 두 명의 해병대원을 설득하지 못했다. 메이필드는 “핵실험을 할 때 그들은 검은 안경을 사람들에게 건네주는 게 고작이었고 그러면서 ‘저기 폭탄이 터지는 걸 보라’고 말했다 . . . 1950년대에 그들은 육군 부대에 LSD[환각제의 일종 ― 역주]를 지급했고 . . . 1970년대에는 자군 부대 위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 월남전에서 사용된 강력한 고엽제. 인체에 대한 부작용이 있다 ― 역주)를 살포했다.”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informed consent)의 중요성을 무시한 법무부 차관보 씨어도어 미커(Theodore Meeker)의 태도 역시 해병대원들의 신뢰를 강화시켜 주지는 못했다. 그는 군대에서는 과거에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고 아직 검증되지 않은 약물을 병사들에게 시험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는데, 그 뜻인즉슨 별것아닌 DNA 좀 수집한다고 투덜거리지 말라는 얘기였다.
위든 자신은 DNA 샘플의 용도에 부과되는 제약이 그 자신의 개인적 지침에 불과하며, 군 위계질서 내에서는 자기보다 높은 상관에 의해 뒤집힐 수 있음을 인정했다. 특히 군 샘플을 이용해 생의학 연구를 수행하려는 유혹은 엄청날 것이다. 우수한 병사들이 어떤 유전 형질을 공유하고 있는지, 혹은 특정 전장의 환경적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어떤 병사들이 가장 덜 취약하겠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유익해 보일 수 있다.
블라콥스키와 메이필드는 모범적인 복무 기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군법회의에 회부됐고 명령불복종에 대해 투옥, 벌금, 불명예제대에 처해질 거라는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군 재판관은 [DNA 샘플 수집] 프로그램에 불응했을 때 이를 다루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고소를 기각했다. 두 해병대원은 퇴역군인으로서의 혜택을 받으면서 명예제대를 할 수 있었고 자신들의 DNA도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즈음에 이르면 두 해병대원은 [자신들의 문제를 넘어] 강제적 검사가 제기하는 보다 광범한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모든 복무인력(잠재적 “무명용사”)의 편에 서서 국방부를 상대로 하와이 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은 군대의 DNA 수집 프로그램이 비밀 유지와 동의에 관한 기존의 절차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소송을 기각했는데, 새뮤얼 킹(Samuel King) 판사는 혈액 샘플의 채취가 부당한 압수가 아니라 “최소한의 침해”라고 판시했다. 그리고 연구 이전에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를 요구하는 연방 규제들은 이 사례에 적용되지 않았는데, 연구용으로 검체를 사용할 당장의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방법원의 결정이 있은 후 국방부는 애초의 정책을 수정해, 수집한 DNA 샘플은 범죄 수사과정이나 기타 법에 의해 강제된 용도로 요청을 받지 않는 이상 유해의 신원확인에만 이용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명시했다. 또한 국방부는 샘플 보존 기간을 75년에서 50년으로 줄였고, 샘플 제공자가 병역의무를 마쳤고 차후 소환될 가능성이 없을 경우 그가 요구하면 병역기간 종료와 함께 샘플을 파기하겠다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종교적 신념을 감안해 DNA 수집에서의 특별한 예외를 허용했다.
블라콥스키와 메이필드는 그와 같은 “양심적 DNA 거부자”의 시초에 불과했다. 1996년 4월에는 14년간 공군에서 의료장비 수리공으로 복무한 베테랑인 35세의 워런 싱클레어(Warren Sinclair) 중사가 유전자 검사를 위한 혈액과 조직 샘플의 제출을 거부했다. 블라콥스키와 메이필드가 군의 동기를 불신한 경우였다면, 흑인인 싱클레어는 자신의 신체 조직이 어떻게 쓰일 것인가에 대해 특정한 정치적 우려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DNA 샘플이 인종차별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이용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우리가 유태인들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독일인들에게 주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 . . 인종차별주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흑인들은 자신의 유전물질을 계속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싱클레어는 해군에서 흑인들이 겸상적혈구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를 검사했던 1970년대를 떠올렸다. 이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판명된 사람들은 특정한 직무에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나중에 자식을 가지려 할 때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보유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공군사관학교에서도 이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판명된 몇 명의 건강한 남자들을 퇴교시켰다. 싱클레어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이와 같은 배제가 흑인들의 기회를 제한하는 또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미 공군 법원은 유해의 신원확인 보장이라는 정부의 관심사가 혈액 채취가 가져오는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의 중요성보다 우선한다고 판시함으로써 싱클레어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 그는 1996년 5월 10일 군법회의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14일간의 중노동과 2계급 강등을 선고받았다.
미 군함 아칸소 호(USS Arkansas)의 1등 상사이자 해군 핵 기술자인 도널드 파워(Donald P. Power)는 네이티브 어메리컨(Native American)이라는 종파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가진 종교적 원칙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DNA 검체의 제공을 거부했다. 파워는 거절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 몸은 내게 있어 신성한 수단이며, 나는 이를 [다른 누군가와]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 . . 그들은 내 몸의 일부를 선반 위에 보관할 수 없다. . . .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데서 개인적인 힘을 발견하게 된다.” 파워는 1계급 강등되고 수입의 40%와 함께 핵무기 기밀 취급권을 잃었다. 그는 제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해안 부대로 재배치되었다. 그 후 그는 종교의 자유에 기반한 적용면제(waiver)를 신청했고, 18개월 후 종교적 적용면제 요청이 받아들여져 원 계급과 핵무기 기밀 취급권이 복원되었다. 그러나 군 복무자들 중 협소한 종교적 예외규정을 이용할 수 있는 이들은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도덕적 반대만으로는 군사 규정을 피하는데 충분치 않다.
강제적 DNA 샘플 추출을 위한 군사 규정에 따르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군대가 그 휘하 병사들의 신체에 대해 확고불변의 권위를 행사한다는 오랜 가정들에 도전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군대란 병사들을 전장으로 보내는 곳이고, 병사들은 자신의 신체 보전을 위협하는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샘플 추출에 따르기를 거부한 것은 비록 그들이 군 복무 중이고 자신의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자신의 신체 조직을 다른 목적을 위해 반드시 내놓아야 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유전적 청사진”으로서의 DNA가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 ― 통상적인 군대의 권위의 영역을 넘어서는 데 위치하며 결코 침범될 수 없는 ― 를 지닌다는 관점에 기초한 일종의 권리 선언인 셈이다. 앞서의 두 해병대원 중 한 명이 썼듯이, “그것은 당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말해주는 유전적 청사진이며. . . . 당신의 신체는 당신이 통제권을 갖고 있는 몇 안되는 것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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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분석을 위해 신체 조직을 수집·저장하는 것은 상습범이나 군인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해 선호되는 기술이지만, 그 이용은 군대와 형법의 범위를 넘어 확대되고 있다. 1989년 영국의 대처 정부는 이민 신청자들이 영국에 있는 그들의 보증인들과 정말로 [혈연] 관계가 있는지 밝히기 위해 공무원들이 DNA 지문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정책을 세웠다. 그 후 몇 년 동안 잠재적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18,000건의 DNA 검사가 진행되었다.
이 검사의 대부분은 신청자가 거주하고 있는 국가 주재의 영국 영사관에서 수행된다. 예를 들어, 한 파키스탄 여성이 7살난 아들을 버밍엄에 있는 그녀의 남편에게 보내려면 그녀와 아들은 내무성 공무원의 참관 하에 검사를 받아야 하며 샘플은 런던으로 보내진다. 이슬라마바드 주재 영국 고등 판무관실(British High Commission)의 경우 1994년 한 해 동안 아이를 영국으로 보내려는 파키스탄인들을 대상으로 그와 같은 유전자 검사를 833건이나 수행했다.
DNA 검사는 이민 신청자들에 대한 심문 ― 종종 몇 시간씩 걸리기도 하는 ― 을 대체할 값싸고 더욱 효과적인 방법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이민 단체들은 영국의 검사 프로그램이 인종차별적이며, 이민에 대해 새로운 관료적·금전적 장벽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규정상으로는 이민 신청자들에게 검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혈액 샘플을 채취하는 대사관 소속 의사의 말에 따르면, 가족들은 영국 이민 관리들이 왜 자신의 혈액을 원하는지 잘 알지 못하며 이를 거부했을 경우 관리들의 의심을 사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턱대고 이에 응한다.
잠재적 이민자들에 대한 유전자 검사의 관행은 1991년 캐나다로 확산되었다. 캐나다 정부가 명시적으로 밝힌 목적은 구비서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민 신청자들이 가족과 재회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민자들의 보증을 서는 친척들은 상당한 비용 ― 신청자들은 975달러, 보증을 서는 친척은 325달러 ― 의 부담을 각오해야 하며, 이 점이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한다. 베트남에서 온 44세의 한 중국계 여성의 경우에는 스무살 먹은 자기 아들을 캐나다로 데려오려고 했다. 그녀는 1985년에 두 번째 남편이 보증을 서서 캐나다로 건너왔는데, 그는 첫 번째 결혼에서 난 아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그녀의 전 남편]와 함께 베트남에 계속 머물렀는데,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홍콩의 난민 수용소로 보내졌다. 1995년 그녀의 남편은 실업자가 되었고, 가계를 꾸려나가는 유일한 사람이 된 그녀는 아들의 이민을 도우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아들의 출생증명서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정부는 많은 비용이 드는 DNA 검사만을 친족관계의 증거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성지위에 관한 캐나다 국가행동위원회(Canadian National Action Committee on the Status of Women)는 이민 검사 프로그램이 제3세계로부터의 이민을 억제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고가의 검사는 결국 상이한 사람들에 대해 이민정책을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며, 인종주의와 반(反)이민 정서를 부추긴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캐나다 당국은 그토록 많은 비용이 드는 온갖 종류의 우스꽝스런 장애물들을 설치하는 것을 중단하고,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가족 보증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보다 더 공정해지는 길이다.” 인권 연맹(League of Human Rights)의 대변인 역시 유전자 검사 프로그램이 인종차별적이라고 비판했는데, 이 프로그램의 근저에는 비(非)백인 이민자들이 국가를 속여 갈취하려 드는 사람들이라고 간주하는 가정이 깔려 있다는 것이었다.
유전적 연관을 이민 정책의 기초로 삼는 것은 또한, 반드시 그것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 가족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입양된 아이들의 경우, 그들이 가족들과의 재결합을 위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유전적 관계를 증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은 이민자들에 대한 DNA 검사 프로그램을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1990년대에 반(反)이민 열풍이 몰아치면서 전자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된 노동자 ID 카드를 개발하는 시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카드는 지문, 성문(聲紋), DNA 서열을 담게 되며, 이는 시민들과 합법적 외국인들만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보증하는 구실을 할 것이다. 1952년에 제정된 이민 및 귀화 법(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 Act)에 따르면, 정신적·신체적 결함, 질병 내지 장애가 있는 외국인들은 이민이 거부될 수 있다. 그런 조건들에 관한 정보는 이민 신청자의 DNA로부터 수집되어 이민을 거부하는 근거로 이용될 수 있다. 반(反)이민 정서가 널리 퍼진 분위기에서는 유전자 검사가 모든 이민 신청자들이 의무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감시 도구가 될 수 있다.
DNA 감시 기법은 정치 영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모니카 르윈스키(Monica Lewinsky)의 옷에 묻은 정액 얼룩에 대한 검사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음은 새삼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른 지역의 경우, 말레이시아 경찰은 부수상 앤워 이브라힘(Anwar Ibrahim)이 비밀 성관계를 갖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파트에서 정액 얼룩이 묻은 매트리스를 압수했다. 그들은 경찰 실험실에 매트리스의 검사를 의뢰했고, 앤워가 전(前) 비서의 부인과 성관계를 맺었음을 밝혀줄 증거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AIDS 검사를 빙자해 앤워로부터 채취한 혈액과 매트리스에서 나온 샘플을 비교할 계획인데, 앤워에게는 혈액 샘플을 채취한 진짜 목적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물론 DNA 신원확인을 하는 합당한 목적들도 있다. 상습범의 기록을 보관해 둠으로써 범죄 통제를 용이하게 하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민 통제나 전장에서 사망한 군인의 유해 식별을 위한 정확한 수단을 개발하면 왜 안되는가? DNA 신원확인을 위해 체액을 수집하는 공무원들에게 있어 신체에서 뽑아낸 물질들은 단지 물질일 뿐이며, 정당한 정책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은 DNA 정보은행 프로그램이 신원확인 목적으로 쉽게 접근이 가능하므로 효율적이며 비용상으로도 우위에 있음을 강조한다.
얼른 보면 DNA 신원확인 프로그램들은 범죄를 해결하고, 이민 사기를 미연에 방지하며, 군인 유해의 식별을 돕는 효율적인 방법인 것처럼 보인다. DNA 정보 수집의 증가와 중앙집중화된 DNA 은행들의 확대가 대중적 반응을 거의 일으키지 않은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터이다. 이런 조치들은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 ― DNA 신원확인 기술이 자신과 별로 상관이 없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 의 눈에는 크게 거슬려 보이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블레어 쉘턴, 이의를 제기한 병사들, 이민 신청자들의 경험들은 이에 대해 우려를 표할 만한 이유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DNA 지문감식의 대상이 넓어지면서 DNA 정보의 용도 또한 확대되어 왔다. 그러나 DNA 샘플의 수집과 분석에는 오류와 오용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무고한 사람들이 DNA 신원확인망의 함정에 빠져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하고 있음을 그제서야 알아챌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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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지문감식은 신원확인의 “금본위제”로 간주되어 왔다. 이 기술은 각 개인의 DNA 지문이 고유한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실제로 30억 개 이상의 염기쌍으로 이루어진 한 개인의 전체 유전체(genome)의 출력본은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고유한 신원확인수단(identifier)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의학 검사는 개인의 유전체의 작은 일부분만을 보는 것이며, 그 중 특정 부분은 다른 개인들 ― 특히 같은 민족집단(ethnic group) 내에 있는 ― 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될 수 있다.
DNA 증거의 신뢰성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논란이 되어 왔다. 1996년 국립연구회의(National Research Council, NRC)는 대부분의 실험실에서 이용하는 절차들을 승인했지만, 절차의 신뢰성은 검사가 이뤄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실험실에서 오류를 저지를 가능성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많은 법의학 실험실들에서의 상황은 극히 열악하다. 실험실의 60%는 미국범죄실험실장협회(American Society of Crime Lab Directors)에서 제시한 최소한의 인증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한 실험실은 중요한 증거들을 남자 화장실에 보관하고 있었다. 미시간 주 경찰 법의학 실험실은 값비싼 장비들이 녹스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법의학 목적의 DNA 검사에 관한 법에서 유능성 심사(proficiency testing, 특정 실험실이 분석의 정확성을 보증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는지 시험하는 데 쓰이는 성취도 심사)와 같은 품질 보증 조치들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주는 단 둘뿐이다.
유능성 심사는 법의학 실험실들에 내재한 문제점들을 드러내 보였다. 셀마크(Cellmark)라는 법의학 실험실에서는 분석자가 하나의 시험용 홈에 용의자의 DNA를, 다른 홈에 범죄 현장에서 나온 DNA를 넣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양쪽 홈 모두에 동일한 샘플을 넣었고, 이를 알지 못한 채 두 개의 샘플이 일치한다고 ― 실제로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데도 ― 단언한 일이 있었다. 1993년의 한 연구에서는 45개 실험실을 대상으로 특정한 DNA 샘플들이 서로 일치하는지 여부를 검사해 주도록 의뢰했다. 여기서 각 실험실은 자신이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각자 가지고 있는 최고의 분석 기법들을 이용했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23건의 검사 중 18건에서 실제로는 일치하지 않는 두 개의 DNA 샘플이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법의학 DNA 검사 과정에서 오류가 실제로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은 종종 오류의 발생가능성이 거의 제로라는 틀린 얘기를 듣게 된다. 그 결과, 그들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유죄를 선언하게 될지도 모른다.
최적의 조건 하에서라면 DNA 샘플은 청결하고 개인으로부터 직접 채취된다. 만약 결과가 확실치 않으면 새로운 샘플을 채취할 수도 있고 정확성을 보증하기 위해 검사를 되풀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 분석자는 혈액이건 조직이건 간에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것만 가지고 작업을 해야 한다. 한 실제 사례에서는 피고인의 시계에서 발견된 핏자국이 희생자의 혈액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양쪽 모두가 3개의 DNA 띠를 나타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계에서 나온 DNA에는 두 개의 띠가 더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험실 보고서에서 이 점은 언급되지 않았다. 실험실의 분석자들은 기소된 사람이 결백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대신, 샘플에 사람의 것이 아닌 오염물질이 포함되어 있었을지 모른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이례적으로 검사측과 변호인측의 유전학 전문가들이 모두 법의학 DNA 작업결과를 분석했고, 그 자료는 신뢰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동료심사(peer-review)를 거치는 저널들은 그런 자료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범죄 현장에서 수거한] DNA 샘플이 다 써서 없어진 다음이었다. 범죄 현장에서 혈액을 더 수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애매하거나 오류가 있는 검사들에 대한 확인은 불가능하게 된다.
DNA 지문의 해석 또한 편향을 갖기 쉽다. 범죄학자인 윌리엄 톰슨(William Thompson)은 법의학자들이 작업하고 있는 제도적 맥락이 어떻게 새로운 검사 절차의 개발, 검사 결과의 해석, 그리고 법정에서의 진술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한 바 있다. 법의학자들은 의뢰인의 목표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전문직업적 유인(誘因)을 가지며, 이런 유인들은 그들의 과학적 공정성을 손상시킬 수 있다. 검사측의 법의학 팀은 자신들의 활동이 지닌 가치를 정당화하는 데 열심인 나머지, 자신들이 수행한 검사 결과의 신뢰성을 문제삼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지 모른다.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그들은 해석상의 오류를 저지를 수 있으며, 발견한 결과를 왜곡할 수도 있다. 웨스트버지니아 주에서는 주 범죄 실험실에서 근무하는 한 법의학 기술자가 수년간 DNA 기록들을 변조한 사건이 있었다. 그 결과 죄없는 어떤 사람이 강간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웨스트버지니아 대법원은 또다른 오판이 저질러졌을 가능성을 우려해, 이 기술자가 법정에서 증언했던 130건의 다른 사례들에 대해서도 검토해 보도록 지시했다. DNA는 법정에서 설득력이 매우 높은 까닭에, 그는 주 사법체계 전체를 그르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 현재까지 9명이 석방되었고, 주 정부는 날조된 DNA 증거 때문에 잘못 내려진 유죄판결에 대한 그들의 소송을 무마하기 위해 4백만 달러가 넘는 돈을 지불했다.
법의학 검사와 임상 유전자 검사 모두의 토대가 되는 DNA 증폭 기술을 개발해 노벨상을 받은 케리 멀리스(Kary Mullis)는 검사 절차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감식기술자에게 용의자의 샘플이 범죄현장에서 수거한 DNA와 일치하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한 명만 세워놓고 증인에게 그 중에서 범인을 골라내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멀리스는 말한다. 보다 더 적절한 절차는 용의자뿐 아니라 다른 몇 사람의 샘플을 같이 제공한 후 실험실에 그 중에서 일치하는 것을 골라내도록 하는 것일 터이다.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DNA 신원확인 기술을 써서 [DNA의 일치 여부를 밝히는 것보다는] DNA가 서로 불일치함을 증명하는 것이 더 쉽다. 이를 써서 폭력범죄로 기소된 사람들을 사형대로부터 구해낸 성공 사례가 여럿 있다. 카도조 법대의 배리 궂(Barry Scheck)이 조직한 결백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는 DNA 검사를 써서 무고한 재소자들을 무죄방면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립연구회의(NRC)는 법의학 DNA 검사에서의 문제점을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를 소집했다. 1992년과 1996년에 각각 발간된 두 개의 보고서에서, NRC는 DNA 감식절차에 법적 유효성을 부여하기 위해 필요한 단계들과 신뢰할 만한 결과를 보증하는 데 필요한 규제조치들을 제시했다. 이 보고서들은 법정에서 DNA 증거가 일치한다는 발견을 이용해 추론을 이끌어내는 것을 돕기 위한 의도로 마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이 보고서에서 제시한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보고서에서는 DNA 검사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고, DNA 실험실에 대한 외부 규제, 방사선 사진의 맹목 판독(blind reading, 결과를 미리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판독 작업을 수행해 검사자의 선입견을 배제하는 방법 ― 옮긴이), 각기 다른 실험실에서의 재검사 등과 같이 품질 관리를 보증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DNA 신원확인의 용도 확대에 대한 또다른 우려는 절차의 오용 가능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DNA로부터는 많은 유형의 정보들이 수집될 수 있다. 군대나 법의학 연구자들에게 조직 샘플을 제출하도록 강요받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샘플이 신원확인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거라는 ― 예컨대 건강상의 위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유전적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 우려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는 법의학 DNA 은행 담당자들이 자신들은 신원확인 목적으로만 검사를 수행하며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는 샘플은 개인의 건강 문제에 관한 정보를 얻는 데는 쓰일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의료상의 위험들을 나타낸다고 생각되지 않았던 특정 표식자들이 지금은 건강에 관한 정보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일부 주의 법의학 부서들에서는 미래의 건강상의 위험들을 나타내는 유전자들의 염기서열을 밝혀낼 수 있는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기를 구입하고 있다. 법의학 연구자들은 범죄 현장에서 수거한 DNA 샘플을 검사해 가해자가 특정 유전 질환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내고자 할 수도 있다. 그런 다음 병원이나 약국의 기록들에 접근해서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주들에서는 보험업자들 역시 그런 결과에 접근할 수 있으며, 이를 막을 수 있는 규제수단은 아무것도 없다. 그 때문에 범죄자들뿐 아니라 블레어 쉘턴과 같은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건강보험을 잃을 수 있다. 형제들은 유전자의 50%, 사촌들은 25%를 서로 공유하기 때문에 범죄자들의 무고한 친척들까지도 보험가입을 거부당할지 모른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법의학 DNA 샘플에서 건강 정보를 추출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곳은 4개 주에 불과하다. 뉴욕 주는 법의학 DNA 은행으로부터 보험회사, 고용주, 잠재적 고용주, 건강서비스 제공자, 고용감시기구, 인력공급업체 등으로 정보가 흘러나가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인디애나, 로드 아일랜드, 와이오밍 주에서는 신체적 특징이나 질병에 대한 소인 분석에 샘플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행동유전학(behavioral genetics)으로 관심이 전환됨에 따라 오용 사례는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정보는 군대와 범죄 맥락 모두에서 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내건 판사가 제시했던, DNA 검사가 시민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더 이상 공상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만약 공격적 내지 범죄적 행동과 연관된 유전자가 규명된다면, 범죄를 인종과 연관짓는 고정관념을 감안해 볼 때 흑인 남자들에 대한 강제적 검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인종적 선별 수사들의 사례들은 이미 수없이 일어난 바 있다. 이런 사례들은 그와 같은 고정관념이 흑인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정보 수집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해 준다.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는 주 경찰이 은행 종업원들에게 수상해 보이는 흑인들의 사진을 찍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는 결과적으로 특정 인종 집단에 적용되는 범죄 프로파일을 만드는 것이다. 공항 안전 프로파일은 인종을 테러의 가능성이나 마약 밀반입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로 이용하고 있다. 인종 식별에 DNA 샘플을 이용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은 증가하고 있다. 만약 용의자의 인종을 예측하거나 수색영장을 얻기 위한 “상당한 근거”를 내세우는 데 DNA 검사를 이용할 수 있다면, 오용의 가능성은 증가할 것이다.
만약 반사회적 행동을 나타내는 유전적 소인이 언젠가 규명된다면, 사회적 이해관계는 “범죄 유전자”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권리에 제한을 가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려 하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 폭력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범죄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방법에 관한 논의들이 대중 매체와 정책 매체들에 넘쳐나고 있다. 예방 조치들에는 반사회적 행동의 “소인을 가진”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을 파악해 감시 아래 두거나 예방 차원에서 구금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그들의 프로파일은 보관해 두었다가 범죄가 발생하면 참고하게 될 것이다.
군대에서는 DNA 샘플에서 사람들에게 동성애 소인을 부여한다고 주장된 돌연변이가 발견되었을 경우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현재 국방성은 동성애에 관해 “묻지도 말고 스스로 밝히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병사들은 자신의 동성애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군대는 슬쩍 엿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하지는 않았고, 이에 대해서는 유전자가 대신 말해줄지도 모른다.
사실 감시기술의 오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FBI와 지역 경찰조직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에서 활동하던 수천 명의 시민들의 전화를 도청했으며, 몇몇 사례들에서는 불법적인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DNA 지문감식을 포함한 중앙정보 시스템의 능력 증가와 함께 감시 도구들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 시민들은 수정헌법 4조에 의해 신원확인 목적으로 수집된 샘플의 2차적 사용으로부터 보호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지만, 여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중앙집중화된 컴퓨터 정보은행의 초창기에 제기되었던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들은 오늘날 DNA 정보가 등장함에 따라 더욱 긴급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강제적 검사에 도전했던 해병대원들, 재소자들, 이민자들에게 있어 신체조직은 종교적·사회적·정치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고, 여기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는 결정적이었다. 원주민 부족 출신인 도널드 파워가 보기에, 해군이 군 저장용 DNA 샘플을 채취하는 것은 그의 종교적 신념을 침해하는 것이었다. 메이필드와 블라콥스키는 자신들의 DNA를 개인적 정체성이라는 관점에서 정의했다. 프라이버시권에 명백한 제약이 가해지는 재소자들조차도 DNA 채취는 감방에 대해(심지어는 몸속에 대해서도)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수색과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보았다. 수색은 보통 재소자들이 무기를 숨기고 있거나 함으로써 당장의 위험을 제기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반면 DNA의 수집은 먼 미래의 위험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행해지는 것이다.
정보은행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법 조항들의 수준은 다양하다. 가장 엄격한 법령은 사법적 목적에 대해서만 정보은행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고 있다. 몇 개 주에서는 유전정보를 개인의 고유한 소유물로 규정하고 이를 양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가 필요하다는 ― 사법적 상황에서는 보통 예외가 허용되지만 ―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사법적 목적’은 폭넓게 정의될 수 있다. 대체 사법적 목적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자녀 부양을 포기한 사람의 신원확인은 그 속에 포함되는가? 오하이오 주는 정보은행을 아버지나 어머니를 찾는 과정에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뉴저지 주와 메릴랜드 주법에서는 법원의 명령을 얻어내면 유전적 부모를 찾기 위해 DNA 정보은행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노스다코타 주에서는 법원의 명령이 없더라도 부모를 확인하는 데 DNA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할 수 있다.
기밀성을 유지하는 것 역시 항상 문제가 되어 왔다. 미국에서는 19,000개 이상의 경찰관련 기구들이 있고 전세계적으로는 51,000개 이상의 범죄수사 기구들이 더 있으며 여기에는 60만 명 이상이 고용되어 있다. 군대는 경찰조직에 자신들이 보유한 정보를 기꺼이 공개하고 있으며, 많은 병원들은 경찰이 진단 목적으로 수집한 DNA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제 3자가 의료기록에 접근하는 것은 이메일 정보나 비디오 대여 영수증을 얻는 것보다 더 쉬운데, 이는 후자의 경우 구체적인 연방 프라이버시 법률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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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와 군대는 외부로부터 격리된 공간이다. 그곳은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이 “전체주의적 제도(total institutions)”라고 불렀던 곳으로, 사회적 통제에 관한 특별한 규칙과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권리에 근거해 작동한다. 그러나 법의학 DNA 은행은 범죄자나 군인들보다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 관한 정보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범죄 현장 인근을 마침 지나가다가 DNA 수사망에 걸려들어 검사를 받았던 사람은 DNA 샘플이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다. 범죄의 희생자들 역시 DNA 검사를 받게 되고 이 정보는 법의학 실험실에 보관된다. 범죄자와 연관된 가족들 또한 영향을 받는다. 범죄자나 군인에 관한 건강정보(암에 걸리기 쉬운 유전적 소인과 같은)는 그 친척들 역시 유전적 위험이 존재함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을 준수하는 사람들도 친척의 죄를 입증하기 위해 DNA를 제공하도록 강요받을 수 있다. 형제자매들은 어머니와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동일한 미토콘드리아 DNA를 공유한다. 아들의 죄가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어머니가 DNA 샘플을 내놓으라는 압력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감시의 도구로서 DNA 검사는 매력적이다. 우리 사회는 전장에 나가는 군인에서부터 보조 군목(軍牧)까지, 폭력범에서부터 비폭력범까지, 이민 가족에서부터 해외 입양아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 대해 조직을 검사하고 저장하는 두드러진 경향을 목격하고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신원확인을 위해 조직 샘플을 수집하는 주체가 의사나 공중보건 관리들이 아니라 정부, 경찰조직, 군대, 이민 당국이라는 점이다.
DNA 샘플의 수집은 영리 목적의 벤처기업들이 생겨나 수집 과정을 조력함에 따라 이러한 정부 기구들을 넘어 더욱 확대되고 있다. 한 회사는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DNA 주사기를 판매하고 있다. 이 상품의 기본 발상은 성폭행을 당할 때 희생자가 강간범을 DNA 수집용 바늘로 찌른 후 이를 법의학 실험실로 보내 검사를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희생자가 자신의 DNA를 가져가도록 강도가 그대로 내버려두겠는가? 범죄자들은 점차 자신의 DNA가 자신을 배반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강간범들 중 일부는 콘돔을 착용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범죄자가 신원확인을 피하기 위해, 혹은 다른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우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DNA를 담은 분무용기를 사용할지 모른다는 상상을 해볼 수도 있다. 사실, 앞서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법의학 DNA 사례에서 가석방된 고소인들의 관심사 중 한 가지는 누구라도 살인 현장에 특정 개인의 머리카락을 갖다놓을 수 있고 그럼으로써 골치아픈 조사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DNA 감시의 확대에 대한 우려는 그동안 별로 제기되지 않았다. 과학에 대한 신념과 유전학의 약속이 오류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가려 버리는 경향이 있다. 감시는 “타자들(others)” ― 범죄자나 불법 이민자들 ― 에나 해당되는 것이라는 인식과 DNA 신원확인이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믿음은 DNA 수집의 오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덮어 버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충분히 따져 보지 않은 채 많은 영역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감시를 받아들이고 있는 듯 보인다. 쇼핑객들은 백화점에서의 TV 감시를 받아들이고, 산책하는 사람들은 공원에서의 카메라 감시를 받아들이고, 운전자들은 전자화된 톨게이트 시스템으로부터 여행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받아들인다. 수년 전에 예견되었던 “도시에 사회”가 정보를 수집·저장·접근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에 의해 촉진되어 우리에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수집·저장·접근되는 정보에는 이제 재정상태, 신용등급, 소비자 선호와 같은 것뿐 아니라 개인의 신체, 신원, 건강에 관한 것까지 포함되고 있다.
프라이버시와 DNA 지문감식의 오용 가능성이라는 문제를 감안했을 때, 검사는 더욱 면밀히 규제되어야 한다. 수정헌법 4조와 프라이버시 보호법은 동의에 근거하지 않은 조직 수집을 금지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의 원칙은 더욱 폭넓게 강제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갖는 소유권을 인식함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조직으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더 큰 통제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치들은 아직 법으로 제정되지 않았다. 그 대신 법원들은 행정 편의의 필요성에 대한 정부 기구들의 주장을 그대로 좇아 왔다. 이제 머지않아 우리 모두의 DNA는 정보은행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분자생물학자인 리로이 후드(Leroy Hood)는 20년 내에 모든 미국인들이 개인 유전체의 컴퓨터 정보를 담은 신용카드 형태의 플라스틱 조각을 휴대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당신의 전체 유전체와 의료기록이 신용카드에 담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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