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만나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임신과 출산이 심사숙고할 일 혹은 힘들게 결정해야 할 일이 되고 말았다. 아이를 낳음으로써 져야 할 부담이 너무나 커졌기 때문이다. 그 부담은 특히 여성에게 크다. 여성은 아이를 가짐으로써 직장을 그만두거나,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경력 쌓기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그 기간이 가정에 더 큰 부담이 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가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과 임신한 여성, 그리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성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임신한 여성들에게는 위해한 노동 환경이 있을 수 있다. 이런 환경 역시 바꿔줘야 한다. 때로는 일하는 시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임신한 여성 노동자는 잦은 휴식이 필요하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하고 화장실도 자주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옮기는 것, 오랜 시간 앉아 있거나 서 있는 것 등은 임신한 여성에게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 감염성 질환, 납 등 중금속, 살충제 등 화학물질, 방사선, 직업 관련 스트레스, 담배 연기, 매우 긴 노동 시간, 매우 시끄러운 환경 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도 임신한 여성에게 맡기지 않아야 할 작업이 규정돼 있다. 진동 작업, 고압 작업 및 잠수 작업, 고열 작업이나 한랭 작업, 원자력 및 방사선 관련 업무,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업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병원체 감염이 일어날 우려가 짙은 업무, 신체를 심하게 펴거나 굽힌다든지 또는 지속적으로 쭈그려야 하거나 앞으로 구부린 채 있어야 하는 업무, 연속 작업에서는 5㎏ 이상 혹은 단순 작업에서는 10㎏ 이상의 중량물을 취급하는 업무 등도 포함된다.
임신한 여성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중요한 것은 이런 작업 혹은 업무가 있는 사업장의 사업주가 임신한 여성을 해고하거나 전직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 법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노동 환경이 있는 사업장은 가능한 한 그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할 때 노동시간 단축이나 직무 전환을 고려할 수 있다. 이때에도 이를 이유로 임금을 깎으면 안 된다. 이도 저도 힘들 때 고려할 최후의 수단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유급 휴가를 주는 것이다.
임신을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어떤 경우도 정당화될 수 없다. 임신한 여성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사업주의 배려가 아니다. 이는 사업주의 의무이고 임신한 여성 노동자의 권리다.
이상윤/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원
한겨레신문 2008년 1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