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이명박 정부 ‘의료 선진화’ 논리의 허구성
ㆍ인력 줄여 의료서비스 질 저하
한국 정부는 지난 3월13일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토론회’를 열고 의료 민영화 재추진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의료 민영화는 다음의 두 가지 내용을 포함한다. 하나는 현재 비영리인 병원을 주식회사형의 영리병원으로 전환하는 것, 다른 하나는 현재 건강보험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는 민간의료보험의 역할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정부가 의료 민영화의 추진 명분으로 삼고 있는 논리는 의료기관에 대한 민간투자 활성화 및 고용창출, 경쟁을 통한 의료서비스의 질 개선, 해외원정 진료 감소 및 해외환자 유치와 의료비 절감 등이다. ‘삽질’ 말고는 달리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한 이 정부에 병원은 좋은 투자처로 보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병원은 모두 ‘비영리’이다. 많은 병원이 ‘돈벌이’를 하고 있는데 이를 ‘비영리’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여기서 영리성을 나누는 기준은 영리적 행위 여부가 아니라, 발생한 이윤을 병원의 외부로 유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병원은 돈을 벌 수는 있지만 이를 외부로 가지고 갈 수는 없고, 병원에 재투자를 해야 한다. 영리병원이 되면 외부 자본이 이윤을 목적으로 투자될 수 있고, 병원은 환자의 건강보다는 투자자의 이윤 창출에 우선순위를 두게 되는 것이다.
미국을 보자. 병원의 응급실 기능은 지역사회 건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 영리병원은 이윤이 남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 응급실을 닫기도 한다.
영리병원이 된다고 고용이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더 높다. 영리병원은 기본적으로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지출을 최소화하려 한다. 병원 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인건비이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이지 않고는 지출을 줄일 수 없다. 실제 미국 비영리병원의 100병상 당 의료인력은 522명으로 영리병원의 352명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영리병원은 특히 진료와 관련된 인력(간호사, 의사 등)을 줄이기 때문에 이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 영리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미국의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질에 관한 연구를 종합한 한 연구에 의하면 영리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비영리병원에 입원한 환자에 비해 사망률이 2% 더 높았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영리기관에서 인공신장투석을 받는 만성신부전 환자의 사망률이 비영리기관에 비해 20%가 높았다. 영리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나쁘다는 연구 결과는 이외에도 수 없이 많다.
영리병원 도입으로 해외로 유출되는 진료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정부가 추산한 해외의료비 적자는 약 6000만달러(당시 기준 665억원)이다. 이는 국민의료비 54.5조원의 약 0.12%에 불과하다. 더구나 해외원정의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정출산이나 부유층의 해외 의료 이용이 영리병원 도입으로 크게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 정부의 주장 중 가장 황당한 것은 의료 민영화로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의료기관간 경쟁이 심해지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일반론만 되뇌고 있다. 환자가 병에 걸리면 환자가 아닌 의사가 환자의 대리인으로 의료서비스의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장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병원간 경쟁이 심하다고 가격이 내려가지는 않는다. 영리병원은 멋있는 인테리어 등으로 환자를 ‘유인’해서 높은 진료비를 물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영리병원 도입은 악화되고 있는 건강 불평등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영리병원의 높은 진료비 부담은 저소득층 환자가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심각한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의료 민영화의 다른 한 축인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는 어떤 영향을 줄까. 현재 민간 의료보험의 건강보장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미국은 전 국민의 16%인 4700만명이 건강보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일은 전국민건강보험을 가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민간보험의 역할을 대폭 확대해서 현재의 건강보험을 대체하도록 하면, 건강보험은 현재보다 대폭 축소될 것이며 일부 저소득층은 ‘실질적으로’ 건강보장을 못하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민간보험은 환자진료에 필요한 진료비(민간보험회사는 이를 ‘의료적 손실’이라고 한다)는 가능한 한 줄이지만 행정비용은 훨씬 더 많이 지출한다. 캐나다 공공 의료보험인 메디케어는 가입자 1만명당 직원이 1.2명인 데 비해 미국 최대 민간보험사인 에트나는 20배인 20.8명에 달한다.
의료 민영화는 국가경제에도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최근 거의 부도 상태에 빠진 GM 자동차가 경쟁력을 상실한 이유 중의 하나는 직원과 은퇴자에 대한 과도한 의료비 부담 때문이다. 미국 GM의 경우 자동차 1대를 만드는 데 1525달러를 지출하는 데 비해 캐나다 GM은 187달러, 일본 도요타는 97달러를 지출했을 뿐이다.
주식회사형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는 의료부문을 자본의 ‘놀이터’로 만들 것이다. 이제 병원은 국민의 건강이 아닌 투자자의 이윤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자본은 의료정책의 결정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할 것이며 이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취약계층의 접근성 축소와 건강 불평등의 심화로 나타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정책변화가 한 번 이루어지면 뒤로 무를 수 없다는 데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다시 건강보험체제로 돌아올 수 없다. 경제자유구역에는 래칫조항(다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 적용되고, 그 외의 지역에는 투자자국가제소조항이 기다리고 있다.
의료서비스의 선진화는 의료 민영화로 달성할 수 없다. 의료기관에 대한 공적 자본 투입 확대,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와 함께 의료기관의 역할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올바른 대안이다.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확대하거나(예를 들어 보건소 방문간호 서비스 확대 등)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적 역할에 대해 정부의 지원을 강화하면(보호자 없는 병원에 대한 재정 지원 등) 질 좋은 일자리를 훨씬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정부는 의료를 시장에 맡기면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향신문 4월 3일
조홍준(울산대의대 교수,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