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독감 걸린’ 특허청…”늦기 전에 ‘치료약’을 확보하라”

신종 인플루엔자와 특허

멕시코와 미국에서 발생한 인플루엔자가 대유행의 조짐을 보이면서 치료제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지금까지 알려진 치료제 중 세계보건기구는 ‘타미플루’와 ‘리렌자’를 권고한다. 이 약들은 인체 내에서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항바이러스제인데, 타미플루는 복용이 간편하여 리렌자보다 더 널리 사용된다.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현재 타미플루와 리렌자의 보유량은 남한 인구 5%인 240만 명분이며, 연말까지 인구 10% 수준까지 늘리겠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 권고량인 인구 20~30%에 턱없이 부족하다.


타미플루와 같은 항바이러스제의 비축이 문제가 된 지는 벌써 4년이 넘었다. 2005년에 조류 인플루엔자 공포가 확산되면서 각국 정부가 치료제 확보 경쟁에 나섰고 당시 인구 2%의 비축량만 확보했던 한국 정부는 국내 제약사에게 치료제 생산 기술을 확인했다.


국내 16개 제약사들이 타미플루를 자체 생산할 기술이 있다고 밝혔으며, 한 제약사는 시제품까지 만들어 식품의약품안전청에 공급했다. 그런데 4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이 제약사들은 약을 만들지 않고 있다. 단 한 곳 ‘유한양행’만 자회사인 ‘유한화학공급’을 통해 타미플루의 중간체 원료 물질을 생산하고 있다.


항바이러스제 완제품은 고사하고 중간체의 원료 물질을 한 제약사만 공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특허권 때문이다. 타미플루에는 특허가 걸려 있어서 특허권자가 허락하지 않는 한 아무도 생산하지 못한다. 특허권자와는 다른 생산 공정을 사용하거나 특허권자보다 더 혁신적인 생산 기술을 개발했더라도 특허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타미플루의 유효성분 자체에 특허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를 물질 특허라 하는데, 타미플루의 물질 특허는 미국 제약사 ‘길리아드(Gilead)’가 가지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2016년, 한국에서는 2017년이 되어야 특허가 만료된다.


현재 타미플루를 독점 판매하는 스위스계 다국적제약사 ‘로슈(Roche)’는 1996년에 길리아드와 계약을 맺어 전세계 독점적인 특허 사용권을 얻었다. 길리아드는 타미플루 판매량에 따라 14~22%의 로열티를 받는데, 최근 3년간 로열티 수입만 약 11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조5000억 원에 달한다. 길리아드의 로열티 수입은 2008년 들어 절반으로 줄었으나, 이번 돼지 인플루엔자로 인해 이를 만회하고도 남을 전망이다.


(2005년 이후 타미플루 판매량이 급격하게 늘어난 이유 중 하나는 펜타곤이 전세계 미군에게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약을 지급하는 조치를 취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런 조치가 언론으로 보도되면서 인플루엔자 공포가 더 확산되었고 타미플루 주문이 더 늘었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럼스펠드는 타미플루 비축을 위해 10억 달러의 예산을 추가 배정했고, 부시 대통령은 20억 달러의 예산 편성을 의회에 요청했다. 럼스펠드는 국방장관이 되기 직전까지 길리아드의 최고경영자였고 국방장관 자리에 있으면서도 길리아드의 지분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장 치료제 확보가 급한데 특허가 걸려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나? 그렇지는 않다. ‘강제 실시’라는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타미플루의 생산 능력이 있는 국내 제약사들이 특허청장에게 강제 실시를 청구할 수 있다. 문제는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특허청을 거쳐 행정법원, 대법원 판결까지 나려면 5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당장 급한 상황에 활용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서 강제 실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한데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정부 사용을 위한 강제 실시 제도다. 특허 기술을 정부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가령 신종 인플루엔자의 방역 대책의 하나로 국가가 치료제의 비축량을 정한 다음, 국내 제약사와 계약을 체결하여 필요한 양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럼 특허권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나? 그렇지 않다. 국내 제약사가 생산한 양에 따라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는다. 다만 국가가 치료제를 생산하는 것을 그만두게 할 수 없을 뿐이다. 타미플루의 생산, 판매와 관련하여 길리아드가 로슈에게 로열티를 받는 것과 유사하다. 차이점은 길리아드 스스로 한국 정부에게 사용 허락을 하지 않았다는 점 뿐이다.


이런 제도 개선은 필자의 상상력이 아니다. 세계무역기구의 부속협정(트립스협정)에 들어 있는 제도다. 세계에서 특허권 보호를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미국도 이런 제도를 가지고 있다. 특허 제도가 태동했던 영국도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최초의 특허법이라고 불리는 1474년 베니스 특허법에도 정부는 특허 기술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강제실시 제도는 상식에도 맞다. 우리 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헌법 제36조 제3항). 국민에게 보건에 관한 보호를 제공하려면 국가는 체계적인 보건의료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신종 인플루엔자로 인한 전염병이 돌기 전에 방역 대책을 세우고 필요한 치료제를 확보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국가의 의무에 속한다. 이를 위해 국가가 특허 기술을 사용하는 것조차 못하게 막을 수 있다면, 그런 특허권이야말로 비상식적인 권리다.


현행 특허법은 전쟁이 나거나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일 때에만 정부 사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신종 인플루엔자가 국내에 이미 퍼진 비상사태가 된 다음에는 방역조치를 취하기 이미 늦었기 때문에 현행 특허법의 비상사태 요건을 없애야 한다.


그런데 정부 사용을 위한 강제 실시 제도를 개선하려고 하면 ‘독감’ 증세를 보이는 곳이 있다. 바로 특허청이다. ‘고귀한’ 특허권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특허권도 재산권인데 남의 재산권을 국가라고 하여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제도 개선을 하면 외국인 뿐만 아니라 내국인도 국내 특허 제도를 신뢰하지 못하여 국내 출원을 하지 않을 것이며 최악의 경우는 국내 경제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게 특허청의 결론이다.


특허청의 이런 주장은 미국 제도에만 적용해 보아도 터무니없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미국 정부는 물론 미국 정부와 계약을 맺은 사기업도 타인의 특허 기술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미국의 특허 제도를 신뢰하지 못하고 미국 경제에 어떤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나? 조류인플루엔자 공포가 확산되었을 때 미국 상원에서조차 정부 사용을 위한 강제 실시를 발동하자는 주장이 실제로 있었다.


정부 사용을 위한 강제 실시를 하면 특허권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는가? 아니다. 특허권 보호를 존립 기반으로 삼는, 특허청의 ‘형님’ 격인 세계지적재산권기구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내 놓은 Q&A에 나와 있는 정답이다.

프레시안 5월 1일자 기고 / 남희섭(건강과대안 연구위원, 정보공유연대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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