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역병에 대해 그렇듯이 이번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해서도 음모론이 떠돈다. 그중 한가지는 인도네시아 보건장관의 음모론이다. 수파리 보건장관은 “이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선진국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보건장관은 조류독감이 문제가 되었을 때도 “선진국들이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해 바이러스를 만들어 퍼뜨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도네시아는 “선진국이 빈국으로부터 바이러스 균주를 받아 백신을 개발하고 이를 비싸게 되파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2006년부터 조류독감 균주를 세계보건기구에 제공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보건장관의 음모론을 지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스부터 조류독감, 이번의 북미독감 또는 신종 A형 인플루엔자(이하 IA)까지 계속 신종 바이러스 질환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하는 대비책은 전혀 효과적이지 못하다. 백신을 준비하고 항바이러스치료제를 구입하라고 하지만 대다수의 나라들은 그럴 기술도 돈도 없다. 정작 필요한 지역보건의료체계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붕괴돼 있다. 그리고 그 치료제와 백신은 대기업들이 특허를 가지고 있어 엄청난 이익을 올린다.
이번의 IA 사태에서도 가장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은 타미플루와 리렌자의 독점판매회사들인 로슈와 글라소스미스클라인(GSK)이다. 이들은 조류독감 등으로 이미 천문학적인 이익을 올렸다. 타미플루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타미플루의 특허는 길리어드가 가지고 있고 로슈가 가진 것은 그 판매권이다. 2005년부터 3년 동안 로슈가 길리어드에 지불한 로열티만 11조 원이 넘는다. 그런데 길리어드의 전임 대표이사는 바로 미 국방부장관을 지낸 럼스펠드다. 그는 국방부장관 재임 때도 길리어드의 지분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바로 그가 전 세계 미군에게 타미플루를 일괄지급하라고 명령한 장본인이었다. 여기에 조류독감 유행과 타미플루 사재기가 어느 정도 끝나서 로슈와 길리어드의 이익이 2008년에 절반 정도로 줄어들자 때마침 IA가 나타나서 또다시 길리어드와 로슈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정말로 ‘제약회사 음모론’을 믿고 싶을 정도다.
지금 전 세계는 또다시 타미플루 확보를 위한 ‘전쟁’에 돌입했다. 타미플루의 약값은 천정부지다. 멕시코에서 타미플루 10알에 최근 1백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한국 정부도 이번에 8백33억 원의 추경예산으로 타미플루 보유량을 2백50만 명 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래봤자 최소한 인구의 20퍼센트까지 항바이러스제를 확보하라는 전 세계적 전문가들과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한 양의 절반밖에 안되고 지금은 살 수도 없다.
로슈ㆍ길리어드ㆍ럼스펠드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똑같은 성분이지만 인도의 시플라라는 제약회사가 생산한 안티플루라는 약은 타미플루보다 훨씬 싸서 지금도 5분의 1 가격이다. WTO 지적재산권협정의 예외로 돼있는 인도에서는 로슈의 특허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인도제약회사의 약을 사면 되지 않을까? 다른 방법도 있다. 2005년 조류독감 유행 시기에 한국 정부는 이미 국내제약회사들에게 생산능력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이때 16개 제약회사가 생산능력이 있다고 답했으며 그중 한 회사는 시제품까지 정부에 제출했다. 특허를 하늘처럼 받드는 WTO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특허에 대한 정부사용(정부에 의한 강제실시) 제도는 공익적이거나 비상업적 목적인 경우에는 정부가 특허를 일단 사용하고 나중에 로슈나 길리어드에게 일정량(대략 3~4퍼센트)의 로열티만 지불하면 되는 제도다.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당장 한국의 제약회사에 타미플루 복제약 생산을 허가하거나 이게 시간이 걸린다면 인도약을 수입하면 된다.
그러나 한국은 정부에 의한 특허권 강제실시를 특허법 106조에 “전쟁이나 이에 준하는 상황”에만 가능하다고 규정해서 이를 스스로 제한하고 있다. 특허법이 가장 강력하다는 미국에서조차 이렇게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법은 당장 한국 정부가 뜯어고치면 된다. 이미 중국이 타미플루의 강제실시에 들어갔고 대만도 2005년에 그렇게 했으며 멕시코, 뉴질랜드, 이스라엘이 인도의 복제약 수입을 타진하고 있다는 보도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럴 의향이 없다고 한다.
대기업과 선진국 정부들 간의 특허권에 대한 동맹은 타미플루에서만이 아니라 인플루엔자 백신의 특허에도 동일하다. 인플루엔자만이 아니다. 치료약이 있음에도 매년 3백만 명의 에이즈 환자가 죽어야만 하고 결핵과 말라리아로 매년 3백만 명이 죽는다. 에이즈 치료제의 특허를 가진 기업이 바로 로슈와 GSK가 포함된 거대 다국적 제약사들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IA의 진정한 원인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논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거대 다국적 식품기업들의 공장식 가축사육방식으로 인한 변종 인플루엔자의 창궐 가능성과 이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무대책이 신종 인플루엔자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진정한 원인이다.
여기에 덧붙여야 할 것은 멕시코의 의료제도 붕괴다. 멕시코에서 사망자가 많이 나온 원인은 바로 멕시코의 의료민영화 때문이다. 멕시코 국민 중 우리 나라와 같은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는 사람들은 46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본인부담금이 너무 높다. 나머지 50퍼센트는 시설도 약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보건소만 이용할 수 있다. 오직 4퍼센트에 해당하는 특권층만이 메트라이프나 ING 등의 다국적 민영보험사가 운영하는 의료보험에 가입해 미국이나 멕시코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사립병원의 의료혜택을 누린다. 신종 인플루엔자를 북미자유무역협정 즉 나프타(NAFTA) 독감이라고 부르는 것은 멕시코 의료제도가 나프타로 더 악화했다는 의미에서도 올바른 명칭이다.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이 거대기업들의 이윤보다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이 촛불의 요구였다. 그러나 오늘날 IA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는 촛불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촛불 1주년인 지금 이명박 정부는 한미, 한EU FTA를 통해 특허를 더욱 강화시키고 또 의료민영화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한다. 진정 무서운 것은 신종 인플루엔자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보다 기업의 이윤을 우선시하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이고 이명박 정부다. 따라서 박멸해야 할 것도 신종 인플루엔자만이 아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부대표) / 레프트21 5월9일자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