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종플루와 자본주의 : 의약품, 백신 그리고 정의

1. 지난 8월 21일 한국의 언론들은 영국의 전문가들이 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 남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같은 날 한국 정부는 타미플루를 예방목적으로가 아니라 치료목적으로 사용하는 방침으로 정책방향을 결정했다. 8월 24일 세계보건기구는 타미플루의 남용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렇게만 보면 한국정부가 타미플루의 남용가능성이나 부작용 때문에 치료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일 정도다. 그러나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영국과 한국이 처한 현실은 다르다 못해 극과 극이다. 영국은 지난 4월 신종플루가 문제가 되기 시작하던 시점에 이미 인구대비 50%의 치료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인구대비 80%의 치료제를 갖추고 있다. 전체인구의 30%정도가 감염된다고 가정하고 모든 감염자에게 타미플루를 다 쓴다고 해도 약이 남는 상황이다. 자금 영국에서는 전화로 신종플루를 진단하고 타미플루를 우편으로 우송한다. 반면 한국은 타미플루 확보량이 4월에도 5%였고 지금도 5%이다. 치료제를 폭넓게 쓰면 안되는 상황이고 특히 타미플루 확보가 필요한 이유 즉 “백신이 나오기 전에 백신 대신 확산방지용으로 사용하는”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나오는 결론은 영국은 타미플루 남용을 걱정하는 상황인데 한국은 없어서 못쓰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신종플루를 예측하고 대비하라고 한 것은 이미 2000년대 초이고 타미플루를 비축하라고 권고한 것이 조류독감유행시기인 2005년이므로 4년간의 준비기간 동안 한국정부는 준비를 하지 않았고 또 올해 4월부터라도 준비를 했으면 이러한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터다.   


2. 물론 백신도 마찬가지다. 영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등 많은 나라들은 이미 전 인구에 대해 2회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을 확보했다. (플루 백신은 2-3주 간격으로 2회 접종을 해야 효과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한국은? 내년 2월까지 인구의 27%까지 접종을 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그것도 1회 접종에 한해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이라면 전체 인구와 고위험군과의 차이는 명확한데 대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이 접종대상인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권고에 의하면 우선접종대상에는 초중고생뿐만 아니라 만 24세 까지의 청년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청년들은 한국의 27% 접종대상에는 없다. 왜 청년들뿐이겠는가? 누구는 예방주사를 맞을 수 있고 누구는 맞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많은 대학원생들이 정의론의 고전적인 배분 우선순위문제를 떠올렸을 것이다. 다행히 신종플루의 독성(virulence), 즉 치명률이 높지 않은 상황이라서 그렇지 치명률이 높다면 (예를 들어 조류독감 정도로 60%정도라면)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번 신종플루에서도 심각한 문제인 것은 변함이 없다. 예를들어 65세 이상 노인들의 경우 신종플루 예방접종 우선순위에서는 배제된다. 받아 들여질까? 그리고 정말 한국사회에서 “필요에 따른 분배” 원칙이 관철될 수 있을까? 어린이와 학생들, 임산부와 의학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먼저 백신접종을 하게될까? 아니면 늘 그렇듯 구매능력이 있는 사람들, 즉 돈있고 힘있는 계층이 어떻게든 백신접종을 하지 않을까?
  선진국들이 인구 전체에 대한 예방접종을 준비한 것은 우선순위 문제 자체를 비켜간 것이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이런 문제를 자초했다. 우리 단체만 해도 2005년부터 이미 국영백신공장을 주장해왔다. 지금 화순의 백신생산시설을 짓는데 약 1000억원이 들었다. 백신생산시설 완공이 애초 예상보다 늦어졌다. 정부 예산지원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가 백신과 치료제 확보에 들이고 있는 돈이 3000억원이 넘는다. 참으로 한심한 정부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3. 그런데 문제를 전세계로 확대해보자. 한국에서도 치료제가 부족하다면 전세계적으로는 어떨까? 동남아시아의 각국들은? 중국은? 북한은? 남미와 아프리카는? 당장 겨울을 넘긴 남반구를 보면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사망률이 0.1% 미만으로 보고된 것에 비해 아르헨티나는 4.5%였고 우루과이와 코스타리카는 각각 2.7%와 2.3%였다. 영양상태, 사회적 위생상태, 동네병원 등의 지역보건의료체계, 치료제 등 여러 상황으로 이런 차이가 났다. 백신 우선순위와 치료제의 확보를 말하지만 전세계의 빈국들과 그 나라의 대부분의 인구를 차지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백신과 치료제는 없다. 인류 대다수의 구성원들에 백신과 치료제는 그림의 떡이다.
 
4. 문제를 치료제로만 한정해보자. 특허가 없다면 치료제 품귀현상이 이토록 극심할까? 세계보건기구, 아니 왜 UN은 세계의 위기상황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특허를 한시적으로라도 없애자는 주장을 왜 하지 못할까? 특허는 그 목적이 어떤 아이디어나 기술을 한 사람이 무덤까지 가지고 가지 못하도록 일정한 사용료를 지불하고 인류의 공동재산으로 만들자는 제도다. 그런데 그 특허를 20년동안의 배타적인 재산권처럼 인정하는 자본주의적 원칙의 관철이 약은 있는데 인류 대대수의 구성원이 그 약을 구경도 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심지어 존재하는 제도조차 무력화된다. 특허권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e)는 특허 때문에 시장실패가 일어날 경우 특허를 특허권자가 아닌 사람이 사용하여 수요공급간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이는 WTO 즉 세계무역기구에서 조차 공익적 비상업적 목적일 경우 각국 정부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부여한 권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빈국정부도 이 강제실시나 정부의 강제사용권을 시행하기를 꺼린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보복을 꺼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가 많아 공급이 부족하면 공급이 늘어난다는 것이 시장의 원리다. 그런데 특허는 독점이므로 공급이 늘어날 수 없다. 그 ‘상품’이라는 것이, 없으면 사람이 죽어나가는 의약품이라도 그렇다. 신자유주의적 교리에 따르면 바로 여기서 시장의 원칙이 관철되어야 할 것이지만 어느 누구도 여기서는 시장의 원칙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교리의 신봉자인 세계무역기구에서도 인정하는 시장원칙 회복을 위한 조치인 강제실시조차 금기로 여긴다.
  하긴 AIDS로 매년 300만명이 죽어도 의약품 특허는 문제되지 않고 20년간 배타적 권리로 인정되었고 의약품 특허의 강제실시를 하는 나라들은 온갖 형태로 압력을 받았다. 자국에서 에이즈체료제를 비상업적 목적으로 생산하거나 인도같은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이 유보된 국가에서 수입을(또 다른 형태의 강제실시)하려하면 다국적 제약사들의 소송과 같은 압력에 직면해야 했다. 당장 에이즈치료제의 경우 약은 같은데 인도에서의 약값과 타미플루 판매권자인 로슈와의 약값차이가 20배이상이 난다. 지금 타미플루와 똑같은 약이 인도의 시플라라는 제약회사에서 생산되는데 그 약값은 1/5-/10의 1이다. 


5. 전재희 복지부장관은 3일 한국에서 강제실시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국제신인도 하락이 문제란다. 그러나 당장 한국에서도 치료제는 모자란다. 국제신인도? 다국적 제약회사사이에서의 국제신인도는 하락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신종플루 치료제에 대해 강제실시를 한다고 하면서 인간의 생명보다 앞서는 특허와 이윤은 없다고 선언하고 전세계 정부들에게 같은 조치를 시행할 것을 촉구한다면 국제신인도가 떨어질까? 한국의 ‘국제신인도’는 그날로 전세계 최고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만 더 지적하자. 강제실시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정답은 가난한 나라들이 아니라 미국이다. 9.11 사태이후 편지로 탄저병가루가 배달되는 사태때 미국정부는 탄저병 치료제 시프로바이(ciprofolxacin)에 대한 강제실시방침을 밝혔다. 당장 시프로바이의 약값이 4달러에서 1달러로 내려갔다. 이후 미국의 국제신인도가 떨어졌거나 WTO에 제소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 계신지. 당시 미국의 사망자수는 총 4명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신종플루 사망자수는 며칠전 4명이 되었다.


6. “이윤보다 생명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에이즈치료제 강제실시조치에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남아공 정부를 고소했을 때 프레토리아 법정앞에 걸렸던 구호다. 이 구호는 한편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타미플루의 특허권을 가진 미국의 전 국방부장관 럼스펠드와 같은 극소수의 사람들과 그것을 배타적으로 옹호하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순진하고 도덕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 신종플루사태 앞에서 이 주장은 수 천만명의 생명이 걸린 요구이기도 하다. 당신에게는 어떤가? 이윤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생명이 더 중요한가? 지금 신종플루 사태앞에서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바로 이 문제다.
 
연세대 대학원 신문 기고 / 우석균(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건강과 대안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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