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미 FTA…누리꾼은 고소되고, 포털 사이트는 폐쇄되고! – FTA와 지적재산권

이명박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하면 늘 따라붙는 뉴스가 있다. 바로 그 나라와 FTA를 추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이미 13개국과 FTA 협상을 진행하고 있고, 공동 연구 또는 여건 조성 중인 나라가 10개를 넘는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FTA를 통해 특혜 관세를 누려야 우리 상품의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외국의 값싼 제품이 수입되면 소비자 후생도 증가한다는 홍보도 빠지지 않는다. 며칠 전 기획재정부가 외교통상부, 농림수산식품부, 지식경제부, 관세청 등과 합동으로 발표한 ‘FTA 활용 지원 종합 대책’은 바로 이런 기조에 서 있다. 그런데 FTA를 관세를 낮추는 협정 정도로 이해하면 한국 정부가 미국이나 유럽과 체결한 FTA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협정이다.


한미 FTA만 하더라도 24개의 장으로 구성된 협정문 가운데 상품의 관세와 관련된 것은 극히 일부분이고 대부분은 이른바 ‘비관세 장벽’을 다루고 있다. 이 ‘비관세 장벽’은 한 나라의 공공 정책을 무역 장벽으로 규정하고 이를 해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가령 국민 전체에 적용되는 의료보험제도가 없는 미국은 한국의 국민건강보험 제도와 약가 정책을 비관세 장벽의 하나로 보고 이를 무력화하는 내용을 요구한다. 물론 이를 협정문에 노골적으로 반영하면 정책 주권 침해라는 비판을 받기 때문에, 한미 FTA에는 ‘약가 제도의 투명성’이나 ‘혁신 의약품의 가치 인정’과 같은 외피를 뒤집어쓰고 반영되어 있다.


요즘 한미 FTA 재협상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데, 그 핵심인 자동차 분야만 하더라도 미국은 이미 협정문에 반영되어 있는 배기량 기준 특별소비세의 개편, 환경 기준 완화 조항 이외에 미국산 자동차의 낮은 한국 시장 점유율 그 자체를 일종의 비관세 장벽으로 보고 문제 삼으려 든다.


비관세 장벽의 해소를 주된 목표로 한 미국이 한미 FTA에서 가장 만족하는 분야 중 하나가 지적재산권 분야다. 세계무역기구(WTO)의 <2009년 국제 무역 통계(International Trade Statistics 2009)>를 보면, 미국은 주요 15개국 지적재산권 로열티 수입에서 절반에 가까운 44.8퍼센트(지출은 14.3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지적재산권 분야의 절대 강자이다.


이러한 미국의 핵심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지적재산권 분야의 협정문은 권리 보호를 국제 기준보다 훨씬 더 높게 강화하는 (좀 더 정확하게는 미국 국내법보다 더 높은 보호 기준을 수용하는)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고, 지적생산물의 사회적 이용에는 관심이 없다. 지적재산권 제도를 지탱하는 근간은 권리 보호와 이용 사이의 균형인데, 권리 보호만 강조한 한미 FTA 협상 결과는 한국 지적재산권 제도의 뿌리를 흔들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이를 두고 막을 것은 막고 필요한 것만 수용한 제도 선진화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지적재산권을 미국식으로 강화했을 때 국내 기업은 물론 일반 이용자에게도 어떤 득이 되는 제도 선진화가 가능한지 의문이다. 한국은 지적재산권 로열티 수입이 주요 15개국 전체에서 0.9퍼센트인 반면 지출은 2.9퍼센트로 3배 이상 많을 정도로 지적재산권 무역 수지가 나쁘고, <2009년 국제 무역 통계>에서 유일하게 지적재산권 로열티 수입이 감소한 나라(-15퍼센트)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의 자료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기술 무역수지는 해마다 적자폭이 증가해 왔고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이상 국가 26개국 중 24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국 중에는 26위로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지적재산권은 단순히 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저작권 분야는 인터넷 이용 행위와 직접 관련이 있다. 한미 FTA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일시적 저장’을 저작권의 하나로 인정했다. 이는 마치 저작권자에게 책을 읽을 권리, 노래를 들을 권리, 영화를 볼 권리를 준 것과 같다.


원래 저작권 제도는 권리자와 시장에서 경쟁하는 행위를 제한함으로써 권리자의 경제적 이윤을 보장하여 저작물의 창작을 장려하는 제도다. 가령 저작권자에게 책을 출판하거나 복제할 권리를 줄 뿐이지 책을 읽을 권리 따위는 주지 않는다. 결국 시장 경쟁자의 위치에 있지 않은 일반 이용자는 저작권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인데, 한미 FTA는 이러한 원칙을 뒤집음으로써 저작권 제도의 성격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이뿐만 아니라, 부속 서한을 통해 저작물의 무단 복제나 전송을 허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할 수 있도록 하여 ‘저작권 보호’라는 맹신이 불어올 비극의 끝이 어딘지조차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저작권 침해 행위를 조장하거나 적극적으로 유도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허용’하기만 한 인터넷 사이트도 폐쇄 대상으로 삼았고, 저작권자에게 미리 허락받지 않은 무단 복제나 전송만으로도 이런 결과가 생기도록 함으로써, 웹하드나 P2P 사이트는 물론 포털 사이트, 심지어 이메일 서비스까지도 폐쇄의 위험에 놓이도록 했다.


지적재산권 협정문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집행 조항이다. 여기에는 형사 처벌의 대상을 넓히는 조항이 들어 있는데, 이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한국의 아주 독특한 현상으로 회자되고 있다. 한미 FTA가 타결된 직후인 2008년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된 사건이 전년 대비 5배나 증가한 10만 건에 달해 저작권법 위반이 주요 경제사범으로 분류될 정도이다.


특이한 점은 저작권법 위반 혐의자 중 미성년자의 비율이 10배나 늘었다는 점이다. 대검찰청의 <2009년 범죄 분석>을 보면, 범죄 혐의로 조사받은 미성년자의 15퍼센트가 저작권법 위반 혐의였다. 전체 범죄 중 미성년 피의자율은 6퍼센트이지만 저작권법 위반 사건에서는 미성년자 피의자율이 무려 23퍼센트에 달한다.


이런 결과는 미성년자의 저작권 침해 행위가 2008년 들어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저작권자와 일부 법무법인에서 저작권 제도를 남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미 FTA가 이런 제도를 손보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다는 점이다. 2008년 저작권 위반 고소 사건 9만979건 가운데 피의 사실 또는 범죄 사실이 중대하여 검사가 법원에 정식 재판을 청구한 사건은 불과 8건이다. 전체 고소의 0.00879퍼센트만 정식 재판에 회부된다는 말이다.


95.6퍼센트의 사건은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내리는데, 이 가운데 고소를 취하하여 종결되는 사건이 58.9퍼센트나 된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가? 법무법인이 저작권법을 합의금 장사에 이용하기 때문이다. 저작권법의 문구로만 따지면 인터넷의 일상 행위가 저작권법에 저촉될 수 있고 이러한 행위들을 한 자에게 법무법인이 고소 취하를 조건으로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이 일종의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다. 교육을 받는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781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이들 중 63퍼센트가 법무법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고 한다.


한미 FTA에 들어 있는 지적재산권 집행조항은 최근 복수국 간(plurilateral) 협정 형태로 국제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소위 ‘위조방지무역협정(Anti-Counterfeiting Trade Agreement)’이 그것인데, 한국은 2008년 6월부터 이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그 동안 협상이 비공개로 진행되어 전 세계 시민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자 올해 4월 협상문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한미 FTA의 지적재산권 집행 조항과 한-EU FTA의 지적재산권 집행 조항이 어지럽게 섞여 있는데, 협상문이 공개되자 지난 달 전 세계 공익단체 대표들과 지적재산권 전문가, 학자들 약 100명이 미국 워싱턴에 모여 분석 작업을 진행했다.


필자도 참여한 이 작업의 결과로 유럽연합의회 의원을 포함한 약 700여 명의 지식인과 단체가 서명한 긴급 성명이 발표되었다. 이 성명의 요지는 위조방지무역협정이 공공 정책의 관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을 심각하게 저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한미 FTA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한미 FTA는 위조방지무역협정보다 훨씬 더 가혹한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 긴급 성명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미 FTA의 지적재산권 집행 조항은 일반적인 사법 절차나 행정 절차에 기본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들은 무시한 채, 지적재산권 분야에만 적용되는 특별한 예외들로 가득 차 있다. 이에 대해 지적재산권 예외주의라는 강력한 비판이 있으며, 형사 피의자에게도 적용되는 ‘무죄 추정 원칙’을 부정하고, 지적재산권 침해의 의심을 받은 자에게는 ‘유죄’를 추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지적재산권 침해의 의심을 받은 자에게도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제약한다. 그리고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게 이용자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 과도한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거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들이 이용자들을 감시하도록 조장하고 있다.


민사 소송에서 손해 배상의 액수를 미리 법에 정하도록 하여 권리자가 실제 손해보다 더 많은 배상을 받도록 하거나, 침해 행위의 미수 행위에도 미치지 않은 ‘녹화 장치 사용의 시도’만으로도 형사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고, 침해와 연루되기만 하면 누구의 어떤 정보도 권리자가 가져갈 수 있도록 하며, 권리자의 얘기만 듣고 권리 구제를 해 주도록 한 것은 사법부와 행정부를 지적재산권자의 시중을 드는 기관으로 전락시키는 지적재산권 우월주의의 제도화라는 문제를 낳는다.


이제 한미 FTA는 국회 통과를 위한 사전 작업의 막바지에 서 있다. 오바마가 정한 시한에, 역시 오바마가 정한 의제만을 두고 재협상을 할 것인가, 아니면 공공 정책을 방해하고 기본적 인권을 저해하는 조항들을 전면 재검토할 것인가? 이는 외교통상부 관료들의 몫으로만 맡겨 놓기에는 너무나 중차대한 문제이다.


남희섭(변리사, 건강과대안 연구위원) / 프레시안 7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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