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파동으로 농민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가운데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책임자가 농민들의 멍든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3일 바른사회시민회 주최의 ‘한·미 FTA 추가협상과 한국의 성장전략’이란 조찬세미나에서 “다방농민이라는 말이 있다. 모럴해저드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발언을 해 농민들의 분노를 샀다.
농식품부·지자체 초기대응 실패
정부당국은 구제역 발생 원인으로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축산농민들을 의심했으며, 구제역의 주요 확산 원인으로 가축 사료 차량을 지목하는 등 농민 탓으로 몰아가고 싶을 것이다. 현재 구제역은 경북지역을 벗어나 200㎞도 넘게 떨어진 경기도 양주, 연천, 파주까지 발생했다. 경북과 경기도의 연관성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구제역이 처음으로 발생한 안동지역을 벗어나 예천, 봉화, 영주, 영양, 영덕, 의성 등 경북지역으로 급속하게 확산된 가장 큰 원인은 농민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직무유기와 도덕적 해이 때문이다.
안동시는 11월23일부터 수차례에 걸쳐 구제역 의심신고가 들어왔지만 농장관리자와 돼지의 이동제한, 수의과학검역원 통보 등의 방역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안동시는 간이 키트검사에서 음성이 나왔기 때문에 예찰에만 주력했다고 한다. 경상북도와 안동시는 11월28일이 되어서야 검역원에 정밀검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안동시의 이러한 변명은 농식품부의 지침을 명백하게 어긴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농식품부는 지난 1월18일 “구제역 신고 때 초기 검사 체계를 개선해 시·도의 가축방역관이 구제역 의심 증상 신고가 들어오면 의무적으로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통보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왜냐하면 올 1월 경기도 포천에서 발생한 구제역 사례에서 이미 안동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1월2일 경기도 축산위생연구소는 구제역 항체형성 유무를 확인하는 간이 키트 검사에서 ‘음성’이 나와 구제역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아무런 방역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검역원에 정밀검사 의뢰를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구제역 의심 증상은 계속 나타났고, 경기도 축산위생연구소는 1월6일 해당 농장을 다시 방문하여 구제역 의심 증상을 확인하고 농식품부에 신고를 하였다. 이에 따라 검역원에서 항원을 검사하는 정밀검사를 실시한 결과, 1월7일에야 구제역 양성 판정이 나왔다.
당시 검역원은 구제역의 조기진단을 위해 “이상 증세가 발견되면 즉시 검역원에 신고하라는 긴급행동 지침을 책자로 만들고 매년 3~5월 구제역 특별대책기간에 일선 방역기관에 홍보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검역원은 당시 구제역이 추가로 발생한 것은 “일선 방역기관이 긴급 지침을 무시하고 간이 키트에 의존해 생긴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까지 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구제역 확산을 ‘다방 농민’ 탓으로 돌릴 여지가 없어져 버렸다. 구제역 확산은 ‘다방 농민’ 탓이 아니라 ‘다방 공무원’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농민 탓 말고 피해보상 대책을
구제역 발생으로 소·돼지 등 가축을 살처분할 경우, 농민들은 살처분 보상금과 생계안정자금, 가축입식자금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보상금은 살처분 당시의 시가로 지급되지만 농장 소독 소홀, 이동통제 조치 위반, 의심 가축 신고 지연 등이 확인되면 삭감된다. 생계안정기금은 농가의 사육 규모별로 최대 1400만원까지 지원된다. 가축입식자금은 구제역이 종식된 이후 새로운 가축입식을 원할 경우 연리 3%로 융자를 해준다. 하지만 농민들에겐 이 정도의 보상과 지원만으로 불충분하다. 농장을 다시 열 때까지의 충분한 생계대책이나 예전 수준의 가축품질이 확보될 때까지의 지원대책은 말할 것도 없고, 살처분 대상이 아니었지만 경제적 피해를 입은 농민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정부에 묻는다. 구제역을 확산시킨 정부의 모럴 해저드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박상표(국민건강을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건강과대안 운영위원) / 경향신문 1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