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종합편성채널을 도입하면서 광고시장 확대를 위해 약과 병원 광고를 허용하려 하고 있다. 방송을 통한 약 광고를 허용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미국과 뉴질랜드 두 나라뿐이다. 약 광고 지지자들은 방송광고를 통해 질병 및 치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소비자의 자기 결정권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최소한의 논리조차 없고, 광고 허용의 목적이 광고시장 확대 자체인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컴퓨터나 자동차와 달리 방송을 통한 약과 병원의 광고를 금지한다. 제약회사는 광고를 통해 정보 제공보다는 이윤을 추구하고, 따라서 객관적이 아닌 왜곡된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방송광고는 약의 효과는 과장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며, 약 이외의 치료방법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고지혈증 환자에서의 식이요법이나 운동 등을 통한 치료의 중요성을 알리지 않는다. 미국에서 이뤄진 약 방송광고의 25%는 식약청이 정한 규정을 위반했다는 보고도 있다.
약의 안전성과 관련된 문제도 심각하다. 방송에 광고가 되는 약의 대부분은 출시된 후 1년 이내의 신약이다. 약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이전에는 흔하지 않은 심각한 부작용은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방송광고로 약의 부작용이 충분히 알려지기 이전에 소비자에게 대량으로 판매된다.
머크는 2000년대 중반 관절염 치료제인 바이옥스를 개발했다. 엄청난 방송광고 덕분에 바이옥스의 매출은 1년 사이에 4배 증가했다. 그러나 바이옥스가 심장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퇴출됐다. 그때는 이미 미국에서만 14만명이 심각한 심장 부작용을 겪었다.
약의 방송광고는 약의 사용을 부추겨 약제비를 증가시킨다. 방송에 광고하는 약은 대개 신약이므로 값이 매우 비싸다. 방송광고가 늘어나면 약의 사용이 증가한다. 미국에서 직접 광고에 1달러를 지출하면 4.2달러의 수입이 발생한다고 한다. 1999년 직접 약 광고는 미국 약제비 증가의 12%를 유발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보험진료비 중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어선다. 의료비 증가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상황에서 의료비를 더 증가시키는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약제비가 더 들면서도 국민건강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광고의 대상이 되는 신약의 효과는 대개 기존 약제보다 크게 높지 않다. 따라서 약제의 비용을 고려하면, 기존 약제에 비해 비용 효과성이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의 방송광고 허용은 대형 제약사와 다국적 제약사에 유리하다. 대부분의 중소 규모 국내제약사는 방송광고를 할 재정 여력이 없다. 결국 대형 제약사와 중소 제약사의 격차가 더 크게 할 것이다. 일부 대형 제약회사가 종편사업자의 지분을 가진 것도 약의 방송광고 허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의사와 환자 관계도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의사의 절반 정도는 환자가 요구하는 약을 처방한다고 한다. 의사는 환자의 요구에 압박을 느끼게 되고, 환자가 원하는 약을 처방하지 않을 때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
병원 방송광고 허용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병원 서비스의 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병원들은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과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실제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의료서비스의 질은 높이지 못하면서 의료비는 더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서비스, 예를 들어 심장 컴퓨터단층촬영(CT), 전신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등에 대한 광고가 급증할 것이다.
방송을 통해 약이나 병원을 광고하려는 생각은 잘못됐다. 효과는 불분명하나 부작용은 명확하다. 진정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려면 정부가 공익기관에게 이를 담당하게 해야 한다. 기업의 일차 목적은 국민건강이 아니라 이윤이기 때문이다.
조홍준(울산의대 교수, 건강과대안 대표) / 한겨레신문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