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머지 종이학은 누가 접을 것인가

사사키 사다코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6학년 소녀였다. 엄마의 말로는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아이’였고 학교 릴레이팀에 들어 너무 좋아하던 아이였다. 그런 사사키가 1955년 어느날 달리기 연습을 하다가 쓰러졌고 그해 2월 백혈병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는 히로시마에서 두 살 때 피폭을 당한 히바쿠샤(피폭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사사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1000마리의 학을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고 열심히 학을 접었다. 하지만 사사키는 1000마리의 학을 채 다 접지 못하고 그해 10월 결국 사망했다. 지금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그녀의 동상이 서 있고 그 주변에 수많은 종이학이 놓여있는 까닭이다.


어떤 이는 핵발전소와 핵폭탄은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때와 히로시마 핵폭탄과 비교해 어느 쪽이 더 많은 방사성물질을 공기 중으로 방출했을까? 아마도 폭탄 쪽이 많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상식과 달리 체르노빌의 방사성물질이 히로시마보다 200배에서 400배나 더 많았다. 핵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고 방사성물질로 보면 핵발전소 사고가 더 위험하단 이야기다.


체르노빌 사고로 지금까지 최소한 4000명이 사망했고 최소 4000명 이상의 갑상샘 암 환자가 발생했다. 갑상샘 암은 주로 어린이들에게 생겼다. 많은 수가 방사능이 들어있는 우유를 마시고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주변 지역 식품에서 높은 수치의 방사선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허용치의 수백, 수천배에 달하는 세슘-137과 요오드-131이다. 이 물질들은 백혈병, 폐암, 갑상샘 암 등 여러 암의 원인이 된다. 세슘은 반감기가 30년이 넘는다. 이 때문에 체르노빌에서 서쪽으로 1200㎞ 이상 떨어진 스웨덴의 일부지역에서 1999년 암발생률이 20% 증가했다는 논문이 2004년 국제역학저널에 실렸다. 체르노빌 사고 발생 13년 뒤의 일이다.


세계보건기구는 21일 후쿠시마 인근 생산품에 대한 판매금지조처를 권고했다. 미 식약청은 22일 후쿠시마, 이바라키 등 4개 지역의 생산품에 대한 수입금지조처를 취했다. 도쿄의 수돗물에서도 미량이지만 방사성물질이 검출되었다니 일본의 엄마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당장 아이들에게 먹일 물은 생수로 한다 하더라도 방사능 요오드는 손상된 피부로도 흡수된다는데 아이들 목욕도 생수로 시킬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정부는 경제적 이해득실을 따지며 아직도 수입금지조처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해득실을 따질 시기가 아니다. 정부는 당장 국민의 안전을 위해 일본의 농산물 전체 혹은 최소한 관동 지역 생산물에 대한 수입금지조처를 해야 한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바다는 해류를 타고 흐른다. 오스트리아 연구소 등에 의하면 방사능 낙진이 동쪽으로는 캘리포니아까지 갔고 남쪽으로는 오키나와 부근까지 갔다고 한다. 이제 모든 수산물에 방사능 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체르노빌의 낙진 때문에 서베를린, 터키 등에서 아기들의 선천성 기형이 늘었다는 보고가 있듯이 후쿠시마 문제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국은 물론 인류 전체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히로시마에 살던 사사키 사다코는 644개의 학만 접고 세상을 떠났다. 초등학교 같은 반 어린이들이 나머지 학을 접어 1000마리의 학을 그녀와 함께 묻었다고 한다. 오늘 여전한 핵 공포의 시대에 인류를 위한 나머지 학은 누가 접을 것인가.

우석균(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건강과대안 부대표) / 경향신문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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