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약을 슈퍼에서 팔면 문제가 해결될까

한밤중에 아이가 열이 났거나, 병원문이 다 닫힌 토요일 밤에 갑자기 배앓이를 해 본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지금 시민들이 일반약 슈퍼판매를 기대한다면 아마 이런 경험 때문이지 않을까? 아프지만 비싼 돈을 들여 대학병원 응급실을 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 하지만 이야기는 지금 국민들의 고충과는 다르게 산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언론에서는 ‘제2 의약전쟁’이라는데 나로서는 의사나 약사나 다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의약품 부작용을 누구보다 강조해야 할 의사협회가 슈퍼에서 약을 팔자고 나선 것부터 우선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금 의사협회가 강조하듯이 국민의 ‘편리성’만 고려한다면 미국처럼 의사 처방이 필요없는 일반의약품을 많이 늘리자는 현재의 대한약사회의 주장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 의사협회는 의약품 오·남용을 들고 나온다. 약사회라고 다른 것은 아니다. 일반의약품의 슈퍼판매는 오·남용 때문에 안된다더니 이제는 전문의약품 상당수를 일반의약품으로 바꾸자고 주장한다. 안전성이 우려돼도 말이다. 이러하니 국민들의 눈에는 고충해결과는 상관없는 의사와 약사, 두 직능 사이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이 둘의 직능 갈등에 묻혀 중요한 점이 토론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지금 시급하게 해결되었으면 하는 문제는 밤 시간이나 병의원 약국을 이용하기 어려운 주말에 아프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문제, 즉 야간과 주말 ‘진료 공백’ 문제다.


그렇다면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인 진료 공백 문제를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네덜란드의 예를 들어보자.


네덜란드에서는 공휴일과 야간시간대의 진료를 전국의 105개 지역센터를 중심으로 해결한다. 네덜란드 인구가 한국의 3분의 1 정도라는 것을 따져보면 대략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 진료센터들은 오후 5시부터 아침 8시까지, 그리고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의 주치의 서비스를 대신한다. 최소 두 명의 당직 의사와 보조인력, 응급이동차량과 운전사가 있다. 당직은 해당 지역의사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이러한 ‘시간외 진료센터’에서 하는 일 중 하나는 우선 전화 상담이다. 밤이나 주말에도 몸이 아프면 동네 의사에게 전화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전화로 해결이 안되면 의사가 왕진을 가기도 한다. 심각한 상태라면 큰 병원으로 가도록 해 준다. 영국이나 노르웨이도 이와 비슷한 제도를 운영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시간외 진료센터’를 이용해도 환자들의 본인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 무상의료제도이기 때문이다. 일본조차도 인구 5만명당 1곳의 ‘휴일야간질병센터’를 지방공공단체 등이 운영하고 동네 의사, 약사들이 당직을 서는 방법으로 진료공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밤에 아프면 큰 병원 응급실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곳이 없다. 전화 상담할 곳도 없는데 왕진을 온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밤에 약이라도 구할 수 있었으면 하는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솔깃하다. 그러나 약을 슈퍼에서 판다고 진료공백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한국에도 공공진료센터를 두고 의사와 약사들이 야간 및 주말 전화 상담과 진료를 하면 되지 않을까? 만일 진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국가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공공진료센터가 가까이 있다면, 약의 슈퍼판매는 안전성과 편의성을 따져 해결할 부분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약을 슈퍼에서 판매하면 가장 이익을 보는 것이 대기업 슈퍼마켓체인들이다.


일반의약품을 늘리자는 것은 보수언론의 방송진출을 허용하면서 방통위가 광고시장을 늘리는 방법으로 제시된 바 있다. 보수언론 자신들이 이해당사자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진노’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해당사자들의 싸움속에서 정작 실종되고 있는 것은 국민들의 고충이고 ‘진료공백’을 메울 수 있는 한국 의료제도에 대한 논의다.


우석균(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건강과대안 부대표) / 경향신문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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