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괴담’보다 더 무서운 ‘이명박 괴담’, 그 진실은?
[우석균 칼럼] 민주당, 무엇을 할 것인가?
이명박의 괴담
“옳은 일은 반대가 있어도 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한다. 나는 반대를 많이 경험했다. 청계천, 4대강 등도 반대가 많았다.”
“맹장 수술을 하는데 500만 원이고, 약값 올라간다는 등 괴담이 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에서 날치기된 후 이명박 대통령이 입장을 밝힌 건 지난 25일 ‘사랑의 집배원 초청 오찬’ 자리에서 한 말이 다였다. 담화를 발표한다는 계획은 웬일인지 취소되었다. 아마도 대통령이 무엇을 해도 싫다는 민심만은 읽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언론에 보도된 그의 몇 마디 말을 통해 한미 FTA를 날치기 통과시킨 대통령의 인식 수준을 한번 살펴볼까? 처음 말은 넘어가도록 하자. 반대를 많이 경험했다는 말은 우리가 모두 아는 사실이고, 오죽하면 집권 초기 촛불 집회에 “공약을 지킬까봐 겁이 나는 건 네가 첨이다” 하는 손팻말이 등장했겠나.
ⓒ연합뉴스=EPA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도저 대통령’으로서 모든 의견을 깔아 짓밟고 진군했던 모든 일들은 그의 소신이었던 것은 이제 분명하다. 그러나 한미 FTA의 내용을 두고 ‘괴담’이라 하는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우선 “맹장 수술하는데 500만 원”? 이건 어느 나라 ‘괴담’인가? 외교통상부나 보수 언론이 말하는 ‘괴담’에 ‘맹장 수술 500만 원’이라는 괴담은 없다. 900만 원이라는 ‘괴담’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보면 그는 자신이 ‘괴담’이라고 우기는 바로 그 ‘괴담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맹장 수술 900만 원에 대해서는 이미 경제자유구역 영리 병원에서는 가능한 이야기라고 이전에 충분히 설명했으므로 다시 설명하진 않겠다. (☞관련 기사 : “‘맹장 수술 900만 원’이 한미 FTA 괴담이라고?”)
다만 나는 어떻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기 정부가 ‘괴담’이라고 부르는 내용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아마 우리가 보는 신문과 ‘대통령만의 신문’ 은 다른 모양.
두 번째, 한미 FTA를 하면 ‘약값이 올라간다’는 것을 이 대통령은 괴담이란다. 하지만 한미 FTA를 하면 약값이 올라간다는 사실은 이명박 정부도 이미 인정한 내용이다. 매우 축소 추계한 내용이지만, 정부가 밝힌 내용만으로도 한미 FTA 발효 이후 약값 인상은 10년간 최대 1조1000억 원이 넘는다.
이중 논란이 많은 관세 철폐 부분을 제외하면 향후 10년간 연간 489억~1678억 원의 약값 인상이 예상된다(‘한미 FTA 경제적 효과 재분석’, 보건산업진흥원 등, 2011년 8월 5일). 스스로가 수반인 행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괴담이라고 말하는 대통령은 도대체 어디서 살다 온 대통령인가?
여기서의 결론은 한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FTA의 내용 자체를 모른다. 그래서 그는 날치기 통과를 강력하게 요구했고, 그의 친구들은 날치기를 했다. 그리고 내용도 모르는 한미 FTA에 소신 있게 서명을 한다고 한다.
전 세계에 FTA 괴담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 때부터 시작된 반대 의견을 ‘괴담’이라고 몰아붙이면 이야기가 다 끝나는 줄 아는 이명박 정부와 대통령에게 뉴질랜드 ‘괴담’ 이야기를 하나 해주어야겠다.
뉴질랜드 공중보건의학학회(New Zealand College of Public Health Medicine) 2011년 9월 뉴스레터는 환태평양경제협력협정(TPPA), 즉 미국이 추진하는 태평양 지역 FTA가 공중 보건에 미치는 영향을 특집으로 실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바로 보기)
1) 의약품 공급 차질 : TPPA 조항에 의해 의약품 가격 인상(보건 의료 체계 및 개인 부담 증가), 특히 저소득층의 의약품 구입의 어려움. 2) 공중 보건 및 환경 관련 규제 약화 : 투자자-국가 중재(ISD) 제도에 의해 기업 이익에 장애가 되는 규제 철폐. 식수 공급, 담배 및 알코올 규제, 환경 보호조항에 대한 약화. 3) 공적 상해 보험 제도에 대한 우려 : 공적 상해 보험 제도가 사유화될 경우 직장 보험에 대한 미국의 대형 보험 회사의 동일한 접근권 보장 조항 때문에 민영화가 실패했을 경우라도 이를 되돌리지 못함. 4) 다수의 건강 관련 기관들의 외국 소유 우려 : 예를 들어 노인 요양 시설 체인, 상수도 공급 시설, 쓰레기 처리 시설, 병원 등. |
약값 인상, 건강 보험 민영화, 보건 및 환경 규제 철폐, 상수도 민영화, 오폐물 처리 민영화, 영리 병원 허용.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소리 아닌가?
바로 한국 정부가 한미 FTA ‘괴담’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는 그 이야기가 뉴질랜드 공중 보건 의학계에서 공식 보고서로 나오고 있다. 바로 의료 민영화에 대한 우려고,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걱정이다.
어쩌다 한미 FTA에 대한 한국 괴담이 태평양을 건너 뉴질랜드의 권위 있는 공중보건의학 학회까지 옮겨갔을까? 한국에서 떠도는 괴담이 트위터를 타고 뉴질랜드로 옮겨져서? 이명박 정권이라면 충분히 이렇게도 주장하고 남을 정권이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시간쯤이면 정부 스스로가 인정한 내용까지도 괴담이라고 부르는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이 날치기 처리한 이른바 한미 FTA 이행 법안 14개에 대해 서명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한미 FTA 발효 절차가 완료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조약의 상대국인 한국과 미국이 모두 한미 FTA의 이행을 위한 행위를 모두 마쳤다는 데 대해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확인한 후에야 발효를 위한 서면을 교환함으로써 한미 FTA는 발효될 수 있다.
따라서 오늘 이 대통령이 이행 법안을 서명했다고 끝이 아니다. 반대 의견에 대한 토론도 없이 강행 처리된, 그 자체가 독소 조항인 한미 FTA는 거리의 항의 시위대가 외치듯, ‘비준 무효’이고 이에 서명한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행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서명을 했다하여 발효 절차가 끝난 것이 아니다. 아직 발효 절차는 남아 있다. 이를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는 야당 특히 민주당의 결단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지난주 토요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손학규 대표는 청중들의 야유와 사퇴하라는 거센 목소리 앞에서 “민주당이 앞장서서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그리고 그 약속을 누가 믿을 것인가?
민주당은 한미 FTA를 체결한 정권을 계승한 당이다. 또 김진표 원내대표가 한나라당과 ‘선비준후 ISD 협상’이라는 문서에 서명까지 했다. 또 이번 국회에 들어와서 “10+2 독소 조항 재협상 없이는 비준 거부”를 당론으로 했다가, “ISD 폐기”로 후퇴하고 이후 “선비준 후 ISD 폐기 한미 간 서면 보장”으로 계속 후퇴하여 한나라당에게 강행 처리 비준의 빌미를 제공했다. 결국은 제대로 된 반대 투쟁 한번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한미 FTA를 통과시켰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김진표 원내대표를 유임시켰다.
지금 누가 민주당이 한미 FTA 폐기라는 주장을 지킬 것이라고 믿겠는가? 2012년 4월 총선까지 기다리라고? 내년 4월에 민주당을 뽑아주면 한미 FTA를 폐기시키겠다고? 현실 가능하다고 보이지 않을뿐더러 민주당의 지금까지의 모습을 볼 때 그 약속을 믿을 수도 없다.
지금 민주당이 한미 FTA 폐기의 진정성을 보이는 방법은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의원직을 버리고 국회를 박차고 나와 발효 절차를 막고, 비준 무효가 될 때까지 분노한 시민들과 함께 투쟁하는 방법뿐이다. 그리고 역으로 이것이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진정으로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보인다.
한미 FTA의 폐기는 단지 정치적 구호나 시늉에 그칠 일이 아니다. 한미 FTA 폐기는 한국의 99퍼센트의 미래와 삶이 걸린 절실한 요구이기 때문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한미 FTA 저지 범국본 정책자문위원
*이글은 프레시안 11월 29일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