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

2012년 2월,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이명박’과 ‘노무현’은 정치적인 양극을 상징한다. 이름까지 바꾸었어도 새누리당은 여전히 ‘이명박 정권 심판’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민주통합당은 시민사회진영을 끌어들인 후 더욱 노무현의 계승자를 자임하는 듯이 보인다. 이제는 통합진보당까지 노무현을 내세운다. 통합진보당의 구호는 ‘전태일과 노무현이 꿈꾸던 나라’다.

따라서 현재 정치적 영역에서 ‘노무현’은 이상화된다. 노무현은 그의 ‘의로운’ 죽음으로 또 이명박의 대칭적인 상징으로만 이용될 뿐, 그의 정치행위의 여러 사실들은 무시되고 생략된다. 마치 스탕달이 신고전파 화가 다비드가 그린 벌거벗은 고대전사들에 대해 ‘투구와 칼, 방패로만 무장하고 벌거벗은 채 전투에 나서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지적했어도 여전히 이러한 비판이 간단히 무시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의 정치공간에서는 이명박과 노무현의 대비는 ‘사실’의 문제를 떠나 ‘종교’나 ‘예술’의 문제인 듯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치가 사실을 떠날 때 그 정치는 공허하다. 박근혜씨와 새누리당이 한미 FTA가 민주당이 시작했고 민주당이 지적하는 10개 독소조항 중 자동차 관세 재협상을 제외한 9개가 노무현 때의 한미FTA와 글자하나 틀리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대해 ‘노무현과 이명박의 FTA가 다르다’고 우기는 것은 어떻게 보아도 억지주장일 뿐이다.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적되는 투자자-정부 중재제도(ISD)나 역진방지, 포괄적 개방 문제 등이 모두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FTA때부터 존재했다. 한미FTA에 반대하여 자신을 불사른 허세욱 열사의 유서에도 나오듯이 말이다. 이명박 정부때 이루어진 재협상은 FTA와 한 묶음으로 처리되어왔던 쇠고기 개방, 그리고 자동차관세 문제 두가지다. 이 두가지는 물론 작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를 근거로 두 개의 FTA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에 근거한 주장이 아니다. 지지자들의 희망이거나 정치적 상징의 문제일 뿐이다.

물론 노무현과 이명박은 다르다. 특히 이명박 정권의 부패와 추문, 민주주의 파괴 등은 명백한 정치적 사실이고 그 어떤 수사로도 이를 덮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통상정책이나 FTA에 대해 ‘노무현과 이명박의 FTA는 다르다’는 주문을 외우면서 대충 넘어가려는 전략 아닌 전략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김진표씨가 국회 비준과정에서 ‘선비준 후협상’ 여야정 합의를 했고 새누리당이 지금도 이를 합의처리의 근거로 삼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지금도 여전히 원내대표라는 ‘사실’. 또 한미 FTA 조건부 찬성인지 재협상인지, 폐기인지에 대해 민주당의 입장이 여론에 따라 계속 왔다갔다 하고 있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은 민주당의 정치적 셈법에서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노무현은 보수집단의 반대 때문에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쳤던가? 지난 참여정부시절 경제정책은 지금의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과 과연 얼마나 달랐던가. 지금 정치적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20~30대 들의 가장 큰 불만인 고용문제와 등록금 문제는 노무현 정부 때에는 없었던 문제인가? 바로 김대중-노무현 정부때부터 심화된 문제이고 이명박 정부는 이를 악화시켰을 뿐이다. 한미FTA는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경제와 통상정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정책이고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대표적 정책이다. 

그래서 묻는다. 민주통합당의 경제정책과 통상정책은 과연 무엇인가? 민주와 비민주를 대비시키고 이명박을 심판하자는 것으로 통합민주당의 정체성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물론 선거에는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합민주당은 지금 정권을 맡겠다고 자임하고 있는 정당이다. 분명한 경제정책과 통상정책 없이 또 다시 집권한다면 지금 20대와 30대의 분노는 그 대상만을 바꿔 통합민주당에 그대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정치는 잘 모른다. 그러나 다비드의 벌거벗은 고대전사가 아름다워 보일 수는 있지만, 실제 전투에 그렇게 나섰다가는 곧바로 전사했을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안다.

우석균 (FTA 범국본 정책자문위원, 건강과대안 부대표)


*이 글은 미디어오늘 2월 24일자로 기고된 글이며, 미디어오늘 기고글과는 제목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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