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방사선의 건강 위험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면서 ‘핵의 평화적 사용’이라는 명제에 대한 의문도 증가하였다. 지구상의 모든 핵 사용에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핵 발전소 폐기를 위한 사회적 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고 있고, 이는 더디지만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핵 혹은 방사선 사용에서, 광범위한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그 어느 영역보다도 문제가 됨에도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한 영역이 있다. 바로 의료 영역이다. 의료 영역은 최근 들어 핵 물질 혹은 방사선 사용이 급격히 늘고 있는 분야다. 치료를 위해서 고농도의 방사선을 사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진단적 목적으로 저농도 방사선을 다양한 수준에서 활용하고 있다.
이 중 특히 문제가 되는 영역은 진단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의료 방사선이다. 치료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방사선은 암 환자와 같이 그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생명에 지장이 생기거나 삶의 질 유지에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에, 그 부작용을 알면서도 방사선을 사용하는 경우이므로 상대적으로 윤리적 문제가 적다.
하지만 진단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방사선은 다르다. 각각의 경우에 꼭 그 검사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란이 있고, 각자가 가진 가치관에 따라 그 결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간 이러한 진단적 방사선 사용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컴퓨터 단층 촬영(CT)이다. CT는 컴퓨터 시스템을 활용해서 상대적으로 고농도의 방사선을 사람에게 쫴 해상도와 정밀도가 높은 방사선 사진을 만들어내는 검사다.
이 검사는 방사선에 노출된다는 것 외에는 상대적으로 위험이 적고 검사를 하기가 간편하다는 이유로 그간 엄청난 속도로 그 활용도가 증가했다. 미국은 최근 30년간 CT 촬영 횟수가 20배 이상 증가했다고 하고, 영국조차도 최근 10년간 CT 촬영 횟수가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한국도 통계는 없지만 거의 미국과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짐작된다. 왜나면 2009년 OECD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인구 백만 명당 CT 보유 대수는 37.1대로 OECD 국가 중 3위인 수준이고 이는 미국보다도 더 많은 수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병이 있거나 증상이 있어 병을 진단하려는 사람 외에 ‘건강인’도 CT 촬영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특히 문제다. 이는 질병의 조기진단을 위한 건강검진이 상업화되면서 폐암 등을 조기에 진단하는 방법으로 CT 촬영이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환자뿐 아니라 환자가 아닌 이들까지 그 촬영이 늘어나고 있는 이러한 방사선 촬영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사진을 촬영 받는 사람으로서는 주삿바늘 찔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서 있거나 통에 들어가 사진만 찍고 나오면 되는 검사니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과연 그 검사 시 받는 방사선량은 무시할 만한 것일까? 방사선은 노출되는 양에 비례해서 암 같은 질병에 걸린다고 하는데, 과연 이렇게 마구잡이로 방사선 촬영을 해도 되는 것일까?
그런데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방사선 촬영, 특히 CT 촬영으로 인한 방사선 노출은 전혀 무시할 만하지 않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유방암 검사를 위해 촬영하는 유방 촬영을 보자. 이는 일반 흉부방사선 촬영보다 20배나 많은 방사선을 쬐는 것이고, 이 검사 한번을 받으면 61일간 자연방사선 노출을 통해 받는 방사선을 한번에 다 받는 것이 된다. 폐암 진단을 위해 촬영하는 흉부 CT는 어떤가? 이는 일반 흉부방사선 검사보다 350배나 많은 방사선을 한번에 받는 것이고, 이 검사 한 번이면 1065일, 거의 3년간 받을 자연방사선 양을 단 몇 분 만에 다 받는 것이 된다.
핵공학자들은 자연방사선을 거론하면서 어느 정도의 방사선은 어쩔 수 없이 토양이나 대기 중을 통해 받기 때문에 미량의 방사선은 건강 영향이 미미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자연방사선은 1년에 평균 2.4mSv 정도 노출되는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1년 365일 통틀어 계속 노출되는 것의 합이 고작 2.4mSv 정도인데, 하루에 쓸데없이 두통 좀 있다고 두부 CT를 한번 찍으면 이 방사선량이 2.0mSv다. 1년 치를 한번에 다 받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단적 의료 방사선 노출량은 결코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영국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영국 국민 전체의 방사선 노출량 중 적어도 15%는 진단적 의료 방사선 때문으로 추정될 정도니 말이다.
이로 말미암은 건강 영향을 추정하는 연구도 최근 이루어지고 있다. 그 연구 결과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004년 영국 연구에 의하면, 1년 동안 영국에서 발생한 모든 암의 0.6% 정도가 진단적 방사선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2007년에 미국 내에서 시행한 CT촬영 건수 때문에 앞으로 29,000명의 암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그 중 6%는 유방암이고 그 외는 폐암, 뇌암 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CT 관상동맥 조영술을 행한 40대 여성 270명 중 1명꼴로 이로 인해 암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두부 CT 촬영 남성 11.080건당 1명의 뇌암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 연구도 있다.
영국에서는 이와 같은 연구 결과들에 근거해서 영국에서 촬영되는 방사선 검사의 방사선량을 추정해서 대략 1년에 남성 800명과 여성 1300명이 순전히 방사선 검사 때문에 암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들은 방사선 검사를 받지 않았더라면 암에 걸리지 않았을 사람들이다.
한국은 1년에 촬영되는 방사선 검사량이 정확히 추정되기 어려워 계산하기 어렵지만, 영국의 예에 단순 대입하면 전체 암의 0.6%가 진단적 의료 방사선 때문이라고 하면, 매년 적어도 1200명의 암 환자는 병원에서 받은 방사선 검사 때문에 암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수치를 보고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정도면 뭐 그리 많은 수도 아니네요. 진단적 의료 방사선 검사로 얻을 효용을 생각해 보세요.” 물론 그 효용을 따져서 이익이 부작용이나 비용보다 크다면 이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공리주의의 철칙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그 1200명은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병원에서 받은 검사 때문에 암에 걸리게 되었는데, 이들 하나하나의 생명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생명 하나하나의 문제에도 공리주의가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위험론의 측면에서도 논란거리가 많다. 이 위험은 불특정 다수에게 광범위하게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위험이기에 그 위험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다고 하여도 사회적으로는 중요한 위험이다. 특히 이러한 방사선 위험은 어린이에게 더 치명적이라는 점도 윤리적으로 문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위와 같은 추정도 다 보수적으로 추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과소 추정된 위험일 가능성이 많고, 실제 위험은 이러한 수학적, 통계적 계산에 의한 위험보다 더 클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진단적 의료 방사선 촬영을 줄여야 한다. 특히 병원에 방문하는 이들이 의사들보다 오히려 나서서 방사선 촬영을 받고 싶다고 나서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의사들의 방사선 촬영 결정도 최대한 합리적으로 줄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의료가 날로 상업화됨에 따라 고가의 의료장비를 사용한 검사가 많아지고, 비싼 건강검진이 모두 좋은 양 착각되고 있는 한국적 현실에서는 더욱더 이에 대한 논의와 규제가 시급하다.
이상윤(건강과대안 책임연구원) / 대구경북민중언론 뉴스민 7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