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대법원이 성분만 살짝 바꿔 글리벡 특허를 ‘영원히’ 유지하려는 노바티스에 제동을 걸었다. 매년 1400만명이 비싼 약값 때문에 죽는다. 이 재앙에 맞서 싸워야 한다.
아프리카에 유명한 한 소년이 있다. 에이즈로 열두 살에 죽은 음코시 존슨이라는 소년이다. 그는 에이즈 보균자인 어머니로부터 수직 감염돼 에이즈 환자로 세상에 태어났다. 소년이 유명해진 것은 200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3차 세계 에이즈 총회 연설 때문이다. 이 에이즈 총회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남아공 정부를 상대로 낸 ‘프리토리아 소송(프리토리아는 남아공의 행정 수도)’ 때문에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당시 남아공은 40만 에이즈 환자 중 1만명만이 치료를 받고 있었고, 2010년까지 300만명이 죽음에 내몰리게 될 터였다. 결국 만델라 정부는 에이즈 치료제를 특허와 관계없이 자국민을 위해 생산하거나 인도에서 값싼 복제약을 수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다국적 제약회사 39개가 남아공 정부에 소송을 제기했다. ‘프리토리아 소송’의 시작이다.
4월1일 인도 대법원이 노바티스의 글리벡 특허권 요구를 기각한 날, 인도 약사가 환자들의 처방전을 보고 있다. 음코시 존슨은 야윈 몸에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양복을 입고 연단에 섰다. “나는 정부가 의약품 AZT(에이즈 치료제)를 임신한 엄마들에게 나누어 주길 바랍니다. 그러면 에이즈 바이러스가 엄마에게서 아기한테로 넘어가지 못하게 할 수 있어요. 아기들은 너무 빨리 죽는데, 난 아기들이 죽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꼭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열한 살짜리 소년의 연설은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렸고 “People Not Profit(이윤보다 생명이다)”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국제 여론이 제약회사들에 불리해졌고, 결국 제약회사들은 소송을 취하했다. 프리토리아 소송은 의약품 접근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지난 4월1일 또 하나의 역사적 판결이 나왔다. 노바티스가 인도 법정에서 패소한 것이다. 노바티스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거대 제약기업이다. 세계 1위 농약 판매 기업인데, 2001년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만든 후 더 유명해졌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노바티스 사는 글리벡 가격을 한 알에 2만4000원에 팔겠다고 했다. 만성 백혈병 환자들은 하루 4알에서 8알을 먹어야 산다. 한 달에 최소 300만원에서 600만원이 드는 것이다.
글리벡 약가 인하 시위는 2001년부터 3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2001년 한국에서 환자와 의료인들이 거리로 나섰다. 환자들은 노바티스 사 앞에서 “약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 죽을 수는 없다”라고 약값 인하를 요구하며 연일 시위를 벌였다. 정부와 약가 협상이 이루어지는 건강보험공단 앞에서도 ‘이윤보다 생명’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 약값 인하 시위는 3년 넘도록 진행되었고, 그 사이 함께 싸우던 환자 7명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노바티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글리벡 한 알에 1만7000원을 고시했지만, 노바티스는 한국에서 약 판매를 철수하겠다고 맞섰다. 결국 한국 정부가 졌다. 지금 글리벡 가격은 한 알에 2만3040원이다. 가격 인하가 되지 않은 글리벡은 건강보험 재정에서 1년에 1000억원을 가져간다.
‘전 세계 단일 약값’을 고수하는 노바티스에 인도는 눈엣가시였다. 인도에서 낫코라는 회사가 글리벡 복제약 ‘비낫’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 약의 가격은 2달러로 글리벡의 10분의 1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노바티스는 2005년 인도 정부에 글리벡 특허를 요구했다. 인도 정부가 인도 특허법을 근거로 이 특허 인정을 거부하자 노바티스는 인도 특허법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했다. 인도 특허법은 제약회사가 약 성분을 조금만 바꾸어 특허를 계속 유지시키는 ‘에버그리닝(evergreening)’을 방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인도 특허법 3(d) 조항). 에버그리닝은 의약품의 효과와 상관없이 특허를 지속하는 조치다. 한·미 FTA 협정 때문에 한국에도 도입된 제약회사들의 에버그리닝은 제약회사들에게 ‘영원한 특허’를 부여한다.
인도 특허법은 일부 성분만 살짝 바꾸는 약에 대해 새로운 특허를 주는 것을 막고 있다. 기존 약제보다 개선된 효능이 있어야만 특허를 인정한다. 이 법이 인도가 거대 제약회사에 맞서 10분의 1 가격의 복제약 생산을 가능케 한다. 120개국 이상의 가난한 나라에 공급되는 에이즈 치료제의 90%가, 그리고 전 세계 에이즈 치료제의 50%가 인도산이다. 또 항생제·항암제·혈압약·당뇨약 등 전 세계 복제약의 20%가 인도산이다. ‘국경없는 의사회’가 인도를 ‘세계의 약국’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노바티스가 인도 특허법을 무력화하려고 소송에 나서자 화이자(Pfizer)를 비롯한 다국적 제약사들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를 지원해왔다. 인도 대법원 판결을 며칠 앞두고 미국 의회에서 ‘미국-인도 무역관계:기회와 도전들’이라는 공청회까지 열었을 정도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 존 라슨 상원의원은 화이자를 옹호하며 간디를 인용하기까지 했다. 그는 “세계의 모든 바람이 내 집을 자유롭게 통과해 불기를 바라지만 나는 그 어떤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겠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약값 인상이 인도가 세계와 함께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한국 글리벡 약값 인하 운동에 감사”
인도 암 환자 단체들과 전 세계 의약품 접근권 운동단체들은 지난 7년간 공동 캠페인을 벌여왔고 7년간의 ‘전투’ 끝에 노바티스를 무릎 꿇게 했다. 4월1일 인도 대법원의 노바티스 특허 기각 판결은 의약품이 필요한 전 세계 민중의 승리이자 시민사회단체들의 승리다.
인도 대법원 판결 후 인도 암 환자 단체의 감사 메일이 한국으로 왔다. 처음으로 글리벡 약값 인하 운동을 벌인 한국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감사 인사였다. 2001년 한국에서 벌어진 글리벡 약값 인하 운동과 이와 관련해 2004년 인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에서 진행한 한국 활동가들의 캠페인이 자신들을 고무해, 지금 이 투쟁의 한복판에 서게 했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매년 1400만명이 예방 가능하거나 치료 가능한 병으로 죽는다고 말한다. 비싼 약값 때문이다. 인류가 가장 끔찍한 재앙으로 기억하는 ‘홀로코스트’로 600만명이 죽었다. 지금 매년 두 번의 홀로코스트가 의약품 특허 때문에 일어난다.
미국 경제지 <포천>이 선정하는 세계 500대 기업에 속한 거대 제약회사 10개의 순수익은 다른 490개 회사의 순수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이익의 비결은 특허권이다. 특허를 둘러싼 싸움은 생명을 둘러싼 싸움이다. 이윤인가 생명인가. 지금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인류의 답을 두고 전투를 벌여야 한다.
변혜진(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건강과대안 연구위원) / 이 글은 시사인 291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