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여성이 남성보다 불건강할까. 의료기관 이용횟수는 여성이 더 많은 반면 중증질환 진단, 치료비율은 여성이 더 낮은데, 이게 불건강의 지표일까 건강의 지표일까. 비정규직 3교대 근무를 하는 여성과 부유층 여성의 건강을 ‘여성건강’이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묶을 수 있을까. 여성의 우울증 유병율이 높은 것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젠더 구분을 더 강화하는게 아닐까.
보건학이나 여성학을 접한 사람들이라면 한번씩 고민해봄직한 질문들일 것이다. 여성 건강을 단순한 생의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을 넘어, 젠더적 관점에서, 인권의 차원에서, 보건학적, 정치경제학적 차원에서 바라본 고전, 레슬리 도열의 [무엇이 여성을 병들게 하는가] 가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특히 어느 한 페미니즘 사조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여성을 지나치게 일반화하지 않았고, 여성 내부의 집단간 차이(저자는 ‘공통된 차이’ 라고 표현)에도 주목하여,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이론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보건 지표들을 분석함에 있어서 생의학적 개념에서 나온 지식들을 활용하되, 남성중심의 의료기술이 여성건강에 미친 영항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것도 잊지 않는다. 아울러 양적 연구와 함께, 개개의 사례들과 심층인터뷰를 통한 질적연구가 뒷받침되어 글에 힘을 실어준다
1995년 출간된 책이다 보니 업데이트 해야하는 데이터도, 사회적 배경이 바뀐 부분도 많다. 중요하게 덧붙일 것이, 1997년 컬럼비아 의대의 심장내과의사 Marianne Legato가 의학 연구와 진료에 있어 성차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 ‘정상적 신체 기능과 질병 체험에 있어 성차를 연구’하는 새로운 의학, ‘성인지의학(Gender Specific Medicine)’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이 후 남성중심적(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기존 의학을 비판하고, 여성에게 적합한 질병예방모델을 만드는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이것이 생물학적 환원주의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항상 경계해야 한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도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반대로 불거진 재생산권의 논의를 공론화하자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프로라이프-프로초이스 이분법을 넘어, 일방적인 생명윤리와 생의학적 접근을 넘어, 현상황을 바라보는데 있어서도 좋은 분석틀을 제공하므로, 일독을 권한다.
윤정원(건강과대안 연구원)
정기간행물 · 서적
우왕 엄청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서평이네요
재밌을 것 같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
젠더와 건강 세미나에서 같이읽기 하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 연락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