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경영’ 논란 너머의 진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분회(이하 서울대병원 노동조합)가 지난 10월 23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이에 서울대병원의 ‘비상경영’ 체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7월 2013년 대규모 적자를 우려하며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하였고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였다. 노동조합은 서울대병원이 실제 적자가 아니며, 설령 적자이더라도 이것은 경영진의 잘못된 경영의 결과이므로 경영진이 책임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서울대병원이 과연 실제 적자냐 아니냐는 사실 관계 확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 경영진과 노동조합의 주장은 적자를 둘러싼 사실관계 공방을 넘어서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드러난 사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의 차이이고, 그 차이는 향후 서울대병원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과 전망의 차이를 내포한다.
여기에 이번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투쟁의 중요성이 있다. 이번 대립은 일상적이거나 반복적인 노사 갈등의 한 표현이 아니다. 서울대병원 단일 사업장의 문제도 아니다. 이는 서울대병원이라는 한국 최고의 대형병원이자 공공병원에서 터져 나온 하나의 ‘징후적 사건’이다. 현재 봉착해 있는 한국 병원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서로 다른 두 입장의 결정적 충돌이다.
병원의 ‘경영 위기’, ‘적자’라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병원의 돈벌이 경향을 더욱 가속화하자는 입장이 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현재의 모순은 현 체제의 비윤리성과 비효율을 극적으로 웅변하는 것이므로 환자와 국민을 위해 다른 방향의 발전 경로를 택하자는 입장이 있다.
무한 경쟁, 적자 생존의 게임에서는 공공병원이건, 국립대학교병원이건 다른 병원들과 똑같이 비윤리적 행태를 일삼으며 발가벗고 뛰어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공공병원은, 국립대학교병원은 의료와 의학의 참뜻을 지키며 본연의 의미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그러므로 현재 서울대병원이 실제 적자냐 아니냐를 두고 과도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는 꼴이다. 손가락을 보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손가락을 보아야 그게 달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손가락을 따라가 달을 보아야 하는데 손가락만 보고 달은 못 본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손가락을 한번 보자, 아래 표는 2013년 7월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국회의원의 결산 심사를 지원하기 위해 발간한 ‘2012회계연도 결산 부처별 분석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서울대병원 경영진과 노동조합은 같은 회계지표를 두고 계산하는 방식에 따라 한쪽은 적자를 주장하고 한쪽은 흑자를 주장하고 있다. 그 차이를 이 보고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병원 경영진은 아래 표에서 회계장부상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서울대병원이 지난 5년간 지속적으로 적자였다고 하고 2012년에는 특히 그 적자 폭이 컸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는 실제 상황과 차이가 있다. 이는 의료기관 회계기준상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비용 처리하도록 함으로써 실제 비용 지출보다 더 과다하게 회계장부상으로 비용을 잡은 결과다. 이러한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은 기업회계기준에 따르면 이익의 처분으로 회계처리하도록 되어 있어 비용으로 처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를 비용에서 제외하여 병원의 실제 손익에 가깝게 조정한 것이 아래 표의 ‘조정 순이익’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17일 의료기관 회계기준 규칙 제4조에 의한 재무제표 세부 작성방법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하였다. 개정안에서는 그간의 논란을 반영하여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부채로 설정하지 아니하고, 고유목적사업준비금 전입액 및 고유목적사업비를 비용으로 설정할 수 없도록 변경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회계 계산 방식은 빠르면 내년부터 적용될 ‘공식적인’ 의료기관 회계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현실에 보다 충실한 형태로 조정 순이익을 계산하면, 분당 서울대병원을 포함할 경우 2008년을 제외하고 매년 흑자가 났고, 2012년에도 46억 원의 흑자가 났다. 이는 분당 서울대병원을 제외하고 서울대병원 본원만 따져도 비슷한 양상이다. 다만 서울대병원 본원의 경우 2012년에는 조정 순이익 72억 원 적자가 났다. 하지만 서울대병원 본원의 경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누적 흑자가 432억 원에 달한다.
사실 관계는 이와 같다. 서울대병원의 경영 상황이 ‘비상 경영’을 선언할 만큼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병원 경영진의 말처럼 2012년에는 흑자 폭이 줄었고, 본원의 경우 적자를 기록했으므로 최근 상황이 2009-2011까지의 상황과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2013년의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기에 확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지만, 2012년과 비슷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좋지 않아 의료 이용이 줄고 있다는 통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서울대병원이 적자냐 아니냐, 적자 폭이 크냐 작냐는 관점과 지향에 따른 해석의 문제다.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병원은 계속 높은 수준의 혹자를 내고 이익률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현재의 상황이 ‘돈벌이’의 위기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지 돈 버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현재의 상황은, 그간의 돈벌이 병원 경영 행태의 모순이 더 이상 봉합되지 않고 터져 나온 ‘증상 발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서울대병원 경영 위기 논란과 노동조합 파업이 가리키고 있는 ‘달’은 무엇일까? 이제는 서울대병원의 경영 위기 논란과 노동조합 파업이라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볼 차례다.
이러한 논란이 불거지고 결국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 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본질적 이유 첫번째는, 현재 한국의 병원 생태계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으며, 모순이 격화될 경우 조만간 파국에 이를 수도 있다는 현실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그 모순이란 바로 한국 병원들이 극심한 경쟁에 내몰림으로 인해 윤리적 문제와 더불어 비효율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서울대병원의 경영이 어렵다는 사실에 의아해할 것이다. 서울대병원에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서울대병원은 늘 환자로 북새통이고, 진료비도 비싸기 때문이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 5년간 서울대병원의 외래 환자는 연평균 3.6%씩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입원 환자도 연평균 2.3%씩 계속 증가했다. 환자 1인당 수익 증가율은 더 가파르다. 외래환자 1인당 수익은 지난 5년간 연평균 5.2%씩 증가했고, 입원환자 1인당 수익은 연평균 5.4%씩 증가했다. 지난 5년간 100병상당 의료수익도 연평균 7.4%씩 증가했다. 매출은 꾸준히 높은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매출 증가와 더불어 비용도 꾸준히 증가했다. 의료수익 증가율이 지난 5년간 연평균 8.2%였던 반면, 의료비용 증가율은 연평균 8.6%로 수익 증가율을 넘어섰다. 이는 인건비 때문이 아니다. 지난 5년간 연평균 8.2%씩 증가한 감가상각비 때문이다. 다시 말해 건물, 기계 등 설비 투자 비용의 급격한 증가가 의료 비용 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대병원 본원의 경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외래암센터 건립, 첨단치료개발센터 건립, 메디컬 HRD센터, 외래암센터 장비 도입, 지하복합진료공간개발, 의생명연구원 노후장비교체, 본관 리모델링 재배치 등의 명목으로 2000억 원에 가까운 재정을 지출하였다. 그래서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최근 5년간 유형자산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렇다면 서울대병원은 왜 이익 증가율을 웃도는 과잉 설비 투자를 해야 했을까? 이는 병원간 과잉 경쟁 때문이다. 한국은 병상 과잉이고 특히 수도권은 병상이 과포화 상태여서 병원간 환자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병원이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안은 병상 확대 및 설비 투자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자본 구성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설비 투자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병원은 돈을 더 열심히 번다. 한국의 병원은 개인병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영리법인 병원이므로 벌어서 이익이 난 것은 다시 설비 투자를 한다. 서울대병원과 같이 초기 투자 비용을 마련할 수 없는 병원들은 초기에는 금융권에서 빚을 내 설비 투자를 한다. 그러면 이자 부담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자를 갚기 위해 돈을 열심히 번다. 번 돈으로는 이자를 갚고 다시 설비투자를 한다. 이와 같은 순환 체계를 돌릴 수 있는 병원은 몸집을 불리고 수익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리고 병원간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무한 경쟁 순환 체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체계의 비윤리성과 비효율이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환 체계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첫째, 병원이 지속적으로 설비 투자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매출을 늘릴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병원의 이익을 설비 투자에 집중하기 위해 타 부문의 비용을 철저히 통제해야 하고, 특히 인건비를 통제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을 지속적으로 만들기란 어렵다. 병원이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환자를 더 많이 진료하거나, 환자 1인당 진료비를 높이거나, 환자 진료외 부대사업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필연적으로 저질 의료, 과잉진료, 편법 운영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 파업의 주요 요구로 교수 1인당 1일 진료 환자수 제한, 의사 차등 성과급제 폐지 등을 들고 나온 것이 우연이 아니다.
두 번째 전제조건도 충족시키기 어렵다. 병원에서 비용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재료비를 줄이거나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료비를 줄이기 위해 저질 재료를 쓴다면 이는 사회적 지탄을 받을 일이기에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인력을 충분히 사용하지 않거나, 비정규직이나 미숙련 인력을 사용하여 인건비를 절감하려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 의료의 질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노동자들의 집단적 반발에 직면하게 되기에 지속가능하지 않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 주요 요구로 인력 확충,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순환 체계는 위와 같은 전제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러한 체계가 낳는 비효율과 부작용이 심각하기 때문에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체계는 필연적으로 서비스 공급 과잉, 중복 투자 등의 비효율을 낳는다. 대형병원만 살찌고 지역의 중소병원과 1차 의료기관은 제물이 되며 국민 의료비를 상승시킨다. 과잉 진단이나 과잉 진료가 발생하는 와중에 경제적 취약계층은 과소 진료를 받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그러므로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의 파업은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폭로하는 것이며, 이제 더 이상 이와 같은 구조나 체계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니 다른 대안적 발전 경로를 모색하자는 의사를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 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본질적 이유 두번째는, 공공병원이자 국립대학교병원으로서의 서울대병원이 그간 이름에 걸맞지 않는 행태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은 국립대학교병원이자 공공병원으로서 한국 의료 및 의학의 중심이자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인류에 기여 하는 의학 연구 및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진료의 표준을 만들어나가고 지켜가며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앞장서는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서울대병원의 모습은 이러한 것과 거리가 있다.
교수가 진료 현장에서 과잉 진료를 하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진료를 하지 않는데 수련 의사나 학생들이 어떻게 교과서적인 진료를 배우겠는가? 인류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건강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연구보다는 돈 되는 연구만 진행하고, 환자 진료시간에 쫓겨 충실한 연구나 교육은 뒷전이 되는 상황이 연출된다면 한국 의학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번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의 파업은 서울대병원이 공공병원으로서, 그리고 국립대학교병원으로서 가져야 할 본 모습이 무엇일지에 대해 우리 국민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의 성격을 갖는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이번 파업을 통해 현재 한국 병원이 가지고 있는 근본 모순을 폭로하며 이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사회에서 공공병원, 국립대학교병원이 가져야 할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도 되묻고 있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 이번 파업을 통해 호명하는 존재는 서울대병원 병원장만이 아니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의 외침과 호소에 의사, 환자, 국민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응답해야 할 이는 정부다. 병상 및 병원 의료서비스 공급 구조에 대한 정부의 무규제와 무대응, 공공기관에 대한 과다한 예산 및 인력 통제가 낳은 결과가 바로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상윤(건강과대안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