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풀린 공공부문 민영화]2020년 어느 날, 건강들 하십니까?
ㆍ우석균의 ‘의료 민영화’ 시나리오 -‘주식회사 한국병원’에서 생긴 일
#뼈가 부러져 ‘한국병원’에 입원한 김씨는 아픈 다리를 끌고 원무과에 내려갔다. 의료비 청구서에 0 하나가 잘못 찍혀 있었던 것이다. 자기공명영상(MRI) 검사가 200만원, 2인실 병실료가 하루에 50만원이라니…. 착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무과는 계산이 맞다고 했다. 요즘 웬만한 검사기계는 다 리스로 들여오고 병원건물도 임대한 것이라서 병원에서도 어쩔 수 없단다. 6인실 병실은 여전히 빈자리가 없다고 했다. “혹시 괜찮은 민영의료보험 한두 개 안 들어놓으셨어요”라는 소리만 듣고 돌아섰다. 지하철 한 정거장 값을 아껴보겠다고 빙판길을 걸어간 게 잘못이었다.
입원실에 돌아와 옆에 입원한 환자에게 하소연하니 이미 수술 경험이 있는 이씨 말로는 그건 시작일 뿐이란다. 김씨는 아침에 의사가 수술에 대해 설명했을 때를 떠올리면서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새로 나온 인공관절을 쓴다고 했는데….’
김씨의 불안은 적중했다. 생각했던 수술비도 0 하나가 더 나왔다. 차마 의사에게 물어볼 자신은 없고 다시 원무과에 내려가자 자기 병원 자회사에서 개발한 ‘특수인공관절’이어서 그렇단다. 되레 나보고 좋은 관절로 해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그런다. 그리고 병원 자회사 설립이 허용되면서 요즘은 병원마다 다 특수인공관절을 쓴다고 했다. 건강보험은 적용이 안되지만 자회사가 병원에 의료기기를 대기 때문이란다.
뼈 골절로 병원에 갔다. MRI 비용 200만원 2인실 하루 입원비가 50만원이 나왔다. ‘0’이 하나 잘못 찍힌 줄 알았다. 검사기계를 임대해 쓴다며 환자인 내게 비용을 전가한 것이다. 암 치료제·인공관절 등 병원마다 비보험인 ‘자회사 의료용품’을 사용해 건강보험이 소용 없게 됐다. 그나마 건보 적용한다는 지방 국립대병원을 물어물어 찾아갔다(다른 병원은 민간보험 환자에게 진료 우선권을 준다). 치료비가 싼 대신 그곳의 의사들은 건강식품을 팔고 있었다. 12개월 할부로 480만원어치를 구매해야 했다.
수술 후 재활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김씨에게 권고된 곳은 병원 1층에 있는 헬스클럽이었다. 헬스클럽이 말로만 듣던 호텔 헬스클럽처럼 화려했다. 의사 말로는 헬스클럽에서 물리치료를 받은 후 옆 온천장에서 물마사지(수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가격이 하루 입원비의 절반인 30만원가량 들었다. 너무 비쌌지만 치료에 포함된 것이라며 병원에서 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헬스클럽과 온천욕을 할 수밖에 없다.
#암 진단을 받은 박씨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새로 개발된 바이오 암 치료제인지 줄기세포인지를 같이 쓰면 치료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담당의사가 말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적용은 안되지만 효과가 좋을 거란다. 다른 치료방법으로는 안되겠느냐는 질문에 병원 방침상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막 대학생이 된 둘째 아이, 고등학생 막내 딸의 교육비도 그렇고, 전셋값 정도 하는 돈을 대면서 암 치료를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박씨는 암 환자들의 필수코스가 된 암 동호회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다른 치료방법이나 좀 더 싼 병원을 검색해본다. 암마다 카페도 다 달라 수천 개나 되니, 잘 찾는 것도 큰일이다. 그런데 수천 개의 조회수가 달린 글이 하나 있어 클릭해본다. ○○국립대병원은 아직 건강보험 적용 치료만 한다는 글이다. 그런데 새로 달린 댓글에 얼마 전 그 국립대병원마저도 건강보험 환자만으로는 어렵다며 바이오치료 병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런 게 의료민영화라고 불리던 ‘뱀파이어 효과’구나 싶다. 병원이 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것 말이다. 박씨는 다른 카페를 찾아보기로 한다.
박씨는 겨우 지방에 있는 국립대병원에 입원했다. 여기가 나름 아직은 싼 곳이란다. 그런데 아침에 의사가 찾아오더니 암에 좋다고 건강식품을 복용하라고 한다. 젊은 의사가 건강식품 카탈로그를 꺼내면서 조금 얼굴이 붉어지는 듯하다. 의사들도 건강식품 세일즈를 하게 되니 부끄럽긴 한 모양이다. 카페 글에서 본, 이 병원에 입원하면 암 치료비는 조금 싸지만 건강식품 ‘공격’이 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다. 카페 지침에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버티라고 나왔지만 내 담당의사가 건강식품을 이야기한 지가 벌써 일주일째다. 항암제에 정신도 없고 이 병원에 계속 다니자면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다. 결국 건강식품을 사기로 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 건강식품은 1년 이상 먹어야 효과가 있다며 12개월치를 할부로 구매해 480만원이 들었다.
#최씨가 이러려고 의사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이건 세일즈맨이지 의사가 아니다. 오늘도 환자에게 건강식품 카탈로그를 내밀 때는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 매달 진료비 목표액 할당제와 검사비 목표액 할당제는 이제는 어쩔 수 없다 했지만 건강식품 판매 목표치 달성은 정말 못할 짓이다.
선배에게 전화를 하니 참으란다. 동기들이 취직한 피부과나 부인과는 병원 자회사가 화장품업이라 화장품 판매 실적을 올리느라 생고생인데 화장품보다는 건강식품이 낫지 않냐고 한다. 일리도 있는 말 같다. 오늘 아침 회의 때도 몇 개 과에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건강식품도 할당제 때문에 젊은 과장 몇이 들고일어났나 본데 결국 거부하겠다고 한 과장 한 명은 인사발령이 났다고 한다. 잘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가 없을 거다. 이제 어느 병원에 취직해도 그 자회사 때문에 의사가 의사가 아니라 세일즈맨이 됐다. 박근혜 정부가 의료민영화는 아니라며 병원그룹에 건강식품과 화장품 회사를 갖도록 허용해주어서 생긴 일이다. 그래도 한 달에 몇 백만원씩 하는 건강식품을 팔아야 하는 건 어떤 다른 것보다 적응이 안된다. 나도 안 먹는 식품들이고 위험도 최종 검증된 것이 아닐 수 있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헬스케어. 요즘은 이게 최대 관심주다. 주식에 밝다는 소리를 듣는 정씨는 오늘 컴퓨터를 켜자마자 헬스케어 주가를 쭉 한번 살펴보고 곧바로 주식투자 카페로 간다. 오늘은 ㄱ그룹의 병원 자회사 인수확장이 화제다. ㄴ그룹이나 ㄷ그룹의 헬스케어 주는 이미 오를 대로 올랐으니 더 볼 게 없고 요즘은 ㄱ그룹이 화제다. ㄱ그룹은 뒤늦게 진출했지만 구매대행회사(GPO) 모델을 통해 중소병원 자회사들을 공략한 게 성공의 비결이었다. ㄹ병원이나 ㅁ병원처럼 병원 오너가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들이 ㄱ그룹의 공략에 살아남을지가 요즘 관전 포인트다. 두 병원이 합병을 할지 어떨지…. 미국의 최대 영리병원 체인을 가진 ㅂ사모펀드가 들어온다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중요한 건 주가다. 내가 투자한 헬스케어 회사의 주식만 높아진다면 나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회사 봉급 외에 이렇게라도 주식으로 돈을 벌지 않으면 애들 사교육비와 아버지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며칠째 병원이 뒤숭숭하다. 병원이 ㅅ병원 체인으로 합병된다는 이야기가 돈 건 벌써 몇 개월 전인데 병원장이 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해대더니 며칠 사이로 넘어가게 됐단다. 직원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인수·합병 이야기를 한다. 병실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환자들도 병원이 ㅅ그룹에 넘어가는 게 맞느냐고, 우리는 별문제 없겠느냐고, 문닫는 건 아니냐고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ㅅ그룹은 돈 안되는 병원은 합병한 후 문을 닫아버리고 주변 자기 계열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환자들은 둘째치고 간호사 강씨는 자기 자리가 걱정이다. 수간호사가 부르더니 이번 인수·합병 때 간호사 인력 30% 감축 이야기가 나왔단다. 그래서 고참 간호사들은 다른 병원 일자리를 알아보는 게 좋겠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정부 방안대로 병원 인수·합병이 허용되면 인건비 감축을 위해 오래 일해 월급이 높은 고참 간호사들부터 잘린다는 노조 주장이 사실이었나 보다.
#시민단체 조씨의 기록이다. 2014년 3월 박근혜 정부 2년차, 이때부터 한국 의료는 근본적으로 영리기업 의료체계로 바뀌었다. 정부는 병원은 비영리법인으로 놓아두고 ‘병원 자회사’만 영리기업으로 하는 건 ‘영리병원’이나 의료영리화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병원 수익이 자회사를 통해 늘어나니 병원들의 진료 행태는 정상화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 주장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병원 자회사들이 병원을 통해 돈을 더 벌기 때문에 자회사건 뭐건 돈을 버는 대상은 바로 병원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병원 가서 쓰는 의료비는 엄청 올랐고, 병원은 그야말고 껍데기만 ‘비영리법인’이지 알맹이는 ‘영리 의료종합상사’로 변질되었다.
병원의 부대사업이라며 대통령이 맘대로 시행령·시행규칙으로 규제를 풀어준 것이 결국 병원의 기업화를 초래했다. 거기다 의료기관 임대업까지 허용해서 대형 병원들이 동네의원들을 다 체인화시켰다. 결국 비영리법인이라는 이름으로 병원은 자회사를 새끼 치고 빈껍데기 모병원으로 남은 셈이다.
결국 자회사가 엄마(母)병원에 건물을 임대하고 의료기계를 리스하고 의료용품과 약을 공급하는데 이 자식회사가 수익을 남긴 건 엄마병원에 온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병원은 의료종합상사가 됐다. 건강식품이나 화장품까지 팔았으니 의사의 권유만 따르는 환자들에게는 의료비 폭등의 결과만 안겨준 것이다.
그나마 좀 싸던 동네의원도 믿을 수가 없다. 의료기관 임대업이 허용되자 대형 병원들의 계열병원들로 전락해 검사나 치료비 담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병원들의 덩치가 커지고 재벌들이 이 네트워크 병원 지주회사에 갖가지 명목으로 투자하면서 재벌체인병원이 지배적 병원 형태가 되었다. 덕분에 주식시장에서 의료 관련 종목들은 최고 수익률을 보이며 상종가를 치게 됐다.
의료민영화를 하면 일자리 창출이 된다며 병원협회에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더니 병원노동자들의 구조조정과 해고는 날로 증가한다. 병원 인수·합병이 가능해지면서 돈 안되는 병원들은 문을 닫거나 합병되면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인수·합병이 진행되는 병원마다 고용승계 싸움으로 난리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건강보험이다. 과잉검사와 과잉진료가 난무하니 건강보험 재정이 거덜나서 건강보험이 폭풍 앞의 촛불이란다.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도 보장성은 점점 줄고 있다. 국민들한테서는 ‘건강보험 무용론’까지 등장했다. 건강보험료가 재벌병원 체인들 퍼주기로 쓰이는 데다, 병원마다 죄다 자회사 의료용품을 쓴다고 비보험 치료재료를 쓰니 건강보험이 있으나마나 무력화되는 이유도 있다. 게다가 재벌보험회사들이 병원 자회사 형태로 의료기관 임대업까지 하게 되는 형국이 되어 자기네 민간보험을 가입한 사람들에게만 진료 우선권을 주는 인센티브를 도입해 건강보험 환자는 찬밥 신세다. 사회연대고 뭐고 건강보험이 해주는 게 없으니, 다들 민간보험으로 갈아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건강보험당연지정제도 ‘자율선택제’로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을 듯하다. 부자들은 서비스 많은 민영의료보험으로 가고 가난한 서민들만 건강보험으로 해주자는 것이다.
#골절 수술을 하고 퇴원한 김씨가 집에 도착하니 의료비 청구서가 날라왔다. 이미 지불한 입원비용 말고도 마지막에 쓴 비용이란다. 관절보호용구 500만원, 특수신발 200만원, 특수목발 100만원, 특수물리치료 및 수치료 예약비 300만원…. 김씨는 이제 고민하기 시작한다. 수술 후 치료를 위해 계속 병원 외래치료를 받아야만 할까, 아니면 그냥 뼈가 저절로 굳도록 기다리고 집에서 나 혼자 소독하고 드레싱하면서 버틸까, 에이 다리 한쪽 조금 절룩거리는 게 뭐 큰 불편이겠나, 치료비 때문에 온갖 생각이 다 든다. 그래, 약국에서 소독약과 거즈를 사서 집에서 소독하고 운동하며 재활을 하는 거다! 서민들이 한다는 일명 자가치료법! 인터넷에 오만 가지 노하우가 떠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랬다고, 김씨는 약국으로 간다.허걱. 그런데 약국도 옛날 같지가 않다.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약국도 내가 퇴원한 그 계열 병원그룹의 대기업 체인약국이다. 그래도 약국에 있는 온갖 드레싱 패키지나 자가물리치료 키트는 병원보다는 싸다.
드레싱을 하는 실력도 많이 늘었다. 이젠 외상치료 카페에서 드레싱 용품과 방법에 대해 사람들을 가르쳐줄 정도가 되었다. 집에서 혼자 드레싱을 하다가 문득 2013년 겨울인가 대학생들의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안녕한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나는 안녕하지도 못하고 건강하지도 못하다. 이제 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아직까지 건강들 하십니까”라고.
- 우석균 |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건강과대안 부대표·의사
*이 글은 우석균 건강과대안 부대표가 지난 2013년 12월 19일자로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기사의 원문출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2192225105&code=21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