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WTO에 쇠고기분쟁 패널 설치 요청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캐나다가 한국의 쇠고기 시장 개방 문제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분쟁해소패널‘의 설치를 요청함에 따라 이 문제를 둘러싼 통상 분쟁이 본격화하게 됐다.
관심의 초점은 우리에게 승산이 있느냐다. 다만 분쟁해소패널 절차가 진행 중이더라도 양자가 합의점을 찾으면 언제든 분쟁은 종료된다.
◇ 분쟁해소패널이란
WTO 무역 분쟁 해소 절차의 2단계에 해당하는 절차다. 통상 분쟁 사안이 WTO에 제소되면 양 당사국은 1단계로 60일간 협의를 진행한다. 양자 협상을 통해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60일의 협의 기간 동안 답을 찾지 못하면 제소국은 분쟁해소패널 설치를 요청할 수 있다. 분쟁해소패널이란 WTO 회원국들로 꾸려진 일종의 통상 재판부다. 여기서 내려진 결정은 국제적인 구속력을 갖는다.
패소하면 대체로 피제소국의 법률이나 규정이 WTO 규정에 위배되므로 이를 개정하라는 형식의 결론이 내려진다. 피제소국은 패널의 결정에 한 차례 항소할 수 있지만 최종 확정되면 이행해야한다.
패널 설치를 위해서는 WTO 분쟁해결기구(DSB)에 이 문제가 의제로 상정돼야하는데, 캐나다의 이번 요청은 7월 20일 열릴 DSB 회의에 이를 의제로 올려달라는 것이다.
◇ 예견된 수순
캐나다의 분쟁해소패널 설치 요청은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다. 양국은 WTO 제소 후 60일간의 협의 기간 단 한 차례 협의를 가졌다. 비공식 접촉도 있었지만 공식 협의는 한 번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캐나다는 “구체적인 수입 재개 일정을 제시하라”고 요구했지만 한국은 “행정부 권한 밖의 일”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광우병(BSE.소해면상뇌증) 발생국에서 쇠고기를 수입하려면 국회 심의를 받도록 돼 있는 국내 법 절차상 행정부가 임의로 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지난달 8일로 60일의 협의 기한이 만료하면서 캐나다는 패널 설치를 요청할 권한을 갖게 됐다. 며칠 뒤인 12일 루이 레베스크 통상부 차관이 방한하면서 또 다른 돌파구가 열리는 것 아니냐 하는 관측도 나왔지만, 방한은 특별한 진전 없이 마무리됐다.
이후로도 캐나다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이에 따라 분쟁해소패널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왔다.
다만 캐나다가 협의 기한 만료 후 곧장 패널 설치를 요청하지 않으면서 ‘협상을 통한 해결’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결국 캐나다가 뜸을 들인 것은 패널 설치에 필요한 절차적 요건을 갖추는 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던 셈이다.
한편으로 캐나다의 패널 설치 요청은 일종의 고육책으로도 풀이된다. 통상 패널을 통한 분쟁 해결에 2년 이상 걸리고 이 기간엔 캐나다가 한국에 쇠고기를 팔 수 없어 그만큼 실익이 줄기 때문이다.
결국 캐나다의 선택은 양자 협의를 통한 해결은 어렵고, 일정 부분 손실이 있더라도 강제성 있는 분쟁 절차를 통해 한국을 압박해 시장을 열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 승산 있나
관심은 우리에게 승산이 있느냐다. 캐나다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주로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거치며 강화된 가축전염병예방법의 규정들이다.
이 법은 광우병 발생일로부터 5년이 지나지 않은 국가로부터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나 쇠고기제품을 원칙적으로 수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를 해제하려면 수입위험 분석 과정과 국회 심의를 거쳐야한다.
또 쇠고기 수입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면 언제든 다시 수입을 금지할 수 있도록 했다.
캐나다는 아울러 한국이 WTO 회원국 간 차별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똑같이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받은 미국에는 쇠고기 시장을 개방하면서 캐나다에는 빗장을 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장태평 농식품부 장관은 “가축전염병예방법은 별다른 실익은 없으면서 국제적으로 교역 장벽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제도”라며 “의원 입법으로 법을 개정해줄 것을 국회에 요청했다”고 말한 바 있다.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인정한 셈이다. 다만 농식품부의 공식 입장은 “우리 제도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WTO SPS(동식물검역회의) 규정에 합치한다는 점을 적극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또 “법률 전문가의 자문 결과 국회 심의 조항의 경우 대한민국의 내부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관한 문제여서 법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는 의견이었다”는 농식품부 실무자의 얘기도 있다.
다른 분쟁 사례를 볼 때 불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동식물 검역과 관련된 분쟁은 지금껏 34건이 제소됐고 이 중 10건이 종결됐는데 모두 피제소국이 패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만큼 법률 전문가, 동식물 검역 전문가들과 협의해 적극적으로 분쟁에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 향후 진행될 절차는
캐나다의 요청에 따라 20일 열릴 WTO DSB 회의에서 패널 설치 문제가 의제로 상정된다. 한국은 패널 설치를 거부할 계획이다. “한국의 모든 법이나 규정이 WTO 규정에 합치한다”는 입장에 따라 캐나다의 주장을 수긍할 수 없다는 의사 표명인 셈이다.
그러나 WTO 규정상 한 차례 피제소국이 거부하더라도 그 다음 번 DSB 회의(8월 31일 예정) 때는 자동적으로 패널이 설치된다. 패널은 WTO 회원국 중 일부 국가로 구성돼 양국의 입장을 듣고 법리적 타당성을 따지는 과정을 밟게 된다.
이 와중에 제3국이 ‘제3자 참여’ 형태로 분쟁에 개입할 수 있다. 이 사안에 이해 관계가 있다고 판단하는 국가가 끼어들어 분쟁 과정에 자국의 입장을 개진하는 것이다. 쇠고기 수출국이 참여해 한국을 더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다.
다만 패널 절차 진행 중에도 한국과 캐나다가 양자가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을 찾으면 언제든 분쟁은 종료될 수 있다. 제3자 참여도 자동 종결된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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