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희, <노동자 연대> 146호 | 발행 2015-04-13 | 입력 2015-04-11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처벌법) 21조 1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 첫 공개변론이 4월 9일 열렸다. 성매매처벌법 21조 1항은 성매매를 한 사람을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백만 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는 조항이다.
이번 위헌심판은 2012년 9월 성매매 행위로 기소된 여성이 낸 위헌심판 신청을 오원찬 서울북부지법 판사가 받아들여 2013년 1월 헌법재판소에 제청해 열리는 것이다. 오 판사는 “착취나 강요가 없는 성인 간의 성행위”는 처벌해서는 안 된다며 성매매처벌법 21조 1항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2004년부터 시행돼 온 성매매처벌법은 폭력이나 강요에 의해 성을 판매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판매한 여성(과 구매자)을 처벌한다. 21조 1항이 위헌 판결을 받으면 폭력이나 강요가 없는 성인 간 성매매를 형사처벌하지 못하게 되므로 향후 법률 개정과 함께 국가의 성매매 정책을 놓고 격론이 일어날 것이다. (성매매 알선업자와 포주는 다른 조항으로 처벌되므로 이번 위헌심판과는 관련 없다.)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된 뒤 성매매 여성들이 헌재 앞에서 번갈아 1인 시위를 하며 위헌 판결을 촉구했다. 성매매 여성과 업주들의 모임인 ‘한터전국연합회’는 성매매처벌법 폐지를 요구하며 4월 9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이달 말 서울 도심에서 성매매 여성 수천 명이 모이는 집회를 개최하겠다고 예고했다.
투신자살
2004년 시행된 성매매방지법(‘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통칭)은 노무현 정부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이다.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촉구해 온 한국여성단체연합 소속 여성단체들이나 민주노동당 내 상당수 여성주의자들은 과거 윤락행위방지법에 견줘 큰 개선이라며 새 법을 환영했다.
과거보다 개선된 점은 있었지만, 성매매방지법은 ‘강요’가 아닌 ‘자발적’ 성매매를 처벌하면서 여전히 성매매 여성들을 억압했다. 성매매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지원책은 미미했다. 성매매 알선업자나 포주에 대한 법적 처벌 규정은 강화됐지만 그 실효성은 미약했다.
성매매처벌법 시행 뒤 강화된 경찰 단속은 성매매 알선업자나 포주보다 성매매 여성들을 가장 큰 고통으로 내몰았다. 경찰과 관청, 주류 정치인들과 성매매 업주·포주의 뿌리 깊은 유착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포주들이 처벌받는 경우는 드물었고, 벌금형을 받아도 성판매자에게 전가해 피해를 떠넘겼다.
정부 기관들과 경찰은 성매매가 ‘여성 인권 침해’라며 단속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단속 과정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이 무수히 짓밟히고 비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25일 경남 통영의 경찰들이 실시한 티켓다방 성매매 합동단속 과정에서 붙잡힌 성매매 여성이 단속 현장에서 투신자살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그 여성은 아버지와 딸의 생활비를 보내면서 힘겹게 살아 온 20대 미혼모였다.
당시 경찰이 단속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함정단속을 벌인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그러나 단지 함정단속 같은 ‘무리한’ 방식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경찰 단속 과정에서 성매매 여성들은 증거 채증을 이유로 나체 사진을 찍히고 경찰의 각종 협박에 시달리기 일쑤다. 심지어 경찰에게 강간이나 성추행을 당하는 일도 있다.
성매매 여성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가족이나 친지 등에게 알려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므로 경찰 단속은 그 자체로 성매매 여성들을 옥죄는 엄청난 압박이다.
지배자들은 성매매 여성을 더는 ‘윤락녀’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지만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태도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단속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정부 측은 성매매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성매매 단속을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사회 질서 유지에 이용해 왔다.
대규모 빈곤과 불평등, 소외 등 성매매를 낳는 사회적 요인들은 놔둔 채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성매매 여성들을 속죄양 삼는 처벌 조항은 즉시 폐지돼야 한다.
성구매자 처벌 강화가 해결책일까?
여성주의자들은 대체로 성매매 여성의 비범죄화에 찬성한다. 이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성매매 당사자 중 성판매 여성은 처벌하지 말고 성구매 남성만 처벌하는 스웨덴 모델을 옹호한다.
2013년 새정치연합의 남인순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 개정안이 스웨덴 모델을 따라 성판매 여성을 비범죄화하고 성구매 남성(과 알선업자·포주)의 처벌을 강화하는 안이다. (성매매 알선업자나 포주 처벌은 다수 나라들도 시행하므로 스웨덴 모델의 특징은 아니다.) 최근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도 성판매 여성을 처벌하지 말고 구매자와 알선업자 처벌을 강화하라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스웨덴 모델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서구의 주류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이 모델에 대한 지지가 늘고 있다. 1999년 세계 최초로 스웨덴에서 성매매 당사자 중 성구매자만 처벌하는 법을 도입한 뒤 2009년 노르웨이, 2010년 아이슬란드에서 이 모델이 채택됐다. (그래서 이제 ‘노르딕 모델’로도 불린다.) 지난해 2월 성매매를 줄이기 위해 성매매 여성이 아닌 성구매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결의안이 유럽의회를 통과하면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스웨덴 모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스웨덴 모델 지지자들은 성구매자 처벌이 성매매 수요를 줄여 성매매를 대폭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스웨덴 정부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일 뿐, 그 증거는 별로 없다.
스웨덴 정부는 2010년에 낸 보고서에서 거리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 수가 50퍼센트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새 법으로 전체 성매매 여성 수가 감소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시인했다. 인터넷을 이용한 성매매가 늘었다는 것도 인정했다. 요컨대 거리에서 실내로 옮겨간 성매매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실토했다.
스웨덴 모델
스웨덴 모델이 성구매자 수를 줄였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로 근거가 없다. 성구매자 수를 파악하는 정부 통계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체포와 공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성구매가 억제됐을 수도 있지만, 처벌 위협이 성구매에 대한 남성들의 태도 변화에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많은 남성들이 해외에서 성을 구매하기 때문에 스웨덴 정부의 금지 조처에 개의치 않는다는 연구 결과들이 여럿 발표됐다. 스웨덴 정부도 2010년 보고서에서 성구매자들이 스웨덴 내에서보다 해외에서 성을 구매하는 것이 더 흔하다고 인정했다.
결국 스웨덴 모델의 뚜렷한 효과는 성매매를 주로 거리에서 몰아냈다는 것일 뿐이다. 전체 성매매 감소 효과는 불확실한 가운데, 성매매 음성화로 성매매 여성들이 더한층 위험에 노출됐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스웨덴의 성매매 여성들은 성구매자 처벌로 성구매자들이 경찰 단속을 피해 낯설고 더 외진 곳에서 만날 것을 요구하거나 콘돔 사용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단속시 콘돔이 성구매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위험도가 커졌다고 법안을 비판했다. 또, 경찰 단속 과정에서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괴롭힘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그리고 성매매 여성들은 자신이 원치 않아도 법정에 출두해 ‘고객’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강요받는다고 비판한다.
성판매를 처벌하지 않는다 해도 성구매 처벌로 인해 성매매가 더욱 은밀해진 것이다.
스웨덴 모델도 성매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구매자나 포주 등의 폭력이나 학대, 질병 등에 노출되기 쉬움)을 줄인다고 볼 수 없다.
물론 평등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성구매 행위를 옹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사회에 만연한 성구매 관행에 도전하는 유일한 방식이 형사처벌인 것은 아니다.
성구매 행위가 곧 남성의 강간이고 폭력이라는 ‘급진’ 여성주의의 주장은 성매매 여성들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비교적 소수지만 여성들도 성구매를 한다는 사실, 동성애자나 트렌스젠더 등 성소수자들도 성매매를 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성구매를 그저 남성의 지배욕 탓으로 환원하는 분석은 자본주의 가족제도가 여성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성적 자유를 옥죄면서 왜곡하는 핵심 제도라는 점, 성매매는 가족제도의 보완물이라는 점, 바로 그런 이유로 지배자들은 성매매를 처벌하거나 비난하면서도 용인하는 위선과 모순을 보인다는 점을 못 보게 만든다.
결국 성구매자 처벌 강화론은 또 다른 도덕주의를 부추기면서 자본주의 국가의 형벌권 강화에 이용돼, 지배자들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천대받는 사회집단들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데 이용되기 십상이다.
대중의 왜곡된 성 의식을 바꾸는 것은 억압적인 국가의 힘을 빌려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 존엄성에 대한 자각, 평등의식 고양은 역사적으로 지배자들의 하사품이 아니라 모두 착취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투쟁하면서 사회를 바꾸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특히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 투쟁을 거치면서 자본주의에서 찌든 온갖 정신적 오염을 떨쳐버리고 착취와 천대가 모두 사라지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서 결정적인 구실을 할 수 있다.
진정한 성 해방을 위하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성매매 비범죄화를 지지한다. 하지만 성매매가 ‘여느 직업과 다를 바 없다’거나 심지어 일종의 ‘성 해방’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성매매 등 성산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여느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에 견줘 폭력이나 학대 등에 노출되기 더 쉽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의 소외와 불평등의 한 증상인 성매매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매매는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서 비롯한 착취와 차별, 소외의 복합적 결과물이므로 자본주의 사회 질서를 지탱하는 국가 억압을 통해 성매매를 없애거나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위험하다. 그런 조처는 성판매자들을 더욱 힘든 조건으로 내몰 뿐 아니라 경찰 등 억압기구들을 정당화하고, 가족제도 옹호 등으로 사회 전반을 보수적으로 통제하는 데 이용되기 때문이다.
성매매 행위 처벌에 반대한다고 해서 아예 포주와 알선업자까지 합법화해 성산업을 국가가 관리하는 모델(독일, 네덜란드)이 대안인 것도 아니다.
물론 자본주의에서 거대한 성상품 시장이 형성돼 있고 빈곤과 실업, 복지 축소 등으로 성판매자들이 대규모로 계속 존재하는 한 성판매자들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하는 법적 규정과 정책이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일축할 수는 없다. (특정 모델을 이상화하기보다 구체적 상황 속에서 따져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성매매의 법적 형태나 국가의 관리 방식이 어떻든 성매매가 여성들을 위한 ‘안전하고 매력적인’ 일자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노동권’ 옹호자들도 성매매가 위험한 직업임을 인정한다.
성매매 합법화가 상당수 성매매 여성들에게 더 나은 처우를 가능하게 할지라도 성매매는 인간의 성이 스스로의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인간관계와 성 의식을 왜곡한다는 점, 또한 사회적 불평등의 산물인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구실을 한다는 점을 봐야 한다. 그리고 성매매가 광범하게 이뤄지는 현상이 여성을 얕잡아 보고 성적 대상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를 강화해 노동계급을 분열시킨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성적 대상
그저 여성들이 안전하게 성매매에 종사하는 사회 건설이 노동계급과 여성들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누구도 생계나 다른 이유로 성매매로 내몰리는 일이 없어지는 사회, 진정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 속에서 다양한 성적 만족이 충족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한다.
노동계급이 천대받는 사람들과 함께 착취와 천대 모두에 맞서 싸우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지배계급의 권력을 분쇄할 때 경쟁이 아니라 협력에 바탕을 두고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만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도덕적 낙인 찍기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성매매도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 글은 <노동자연대>의 기사를 옮겨온 것이다. 원문출처는 아래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