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2년 반이 지났다. 2012년 11월 13일 네팔을 떠났으니 대충 이 계산이 맞을 것이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와 함께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이 추진한 <네팔 의료보험 타당성 조사사업>의 현지 프로젝트 책임자로 정확하게 22개월을 네팔에서 근무했다. 아니 살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국제보건 분야에서 일하기로 결심하고 파견된 첫 번째 나라였고, 타국에 살았던 첫 번째 경험이었으니 그 곳의 일상과 삶의 흔적은 아직도 나름 생생하게 남아있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아마 평생 남을 가능성이 많다. 무엇이던 첫 번째라는 경험은 쉽게 지워지지 않으니 말이다. 이건 내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은 한국의 반대편에 있는 남미 파라과이에서 일하고 있다. 아무리 스케줄이 좋은 비행기를 타더라도 대략 30 시간 이상 걸리고, 최소한 두 번의 이착륙을 해야만 도착할 수 있는 먼 곳이다. 그리고 한국과의 시차는 정확하게 13시간이고, 네팔과는 9시간 45분이다. 이 곳에서 들은 네팔의 대지진 소식은 예상한 익숙함, 기억과 추억이 공존하는 곳에 대한 슬프고, 남루해진 향수로 다가왔다. 만약 내가 네팔에 살지 않았고, 그들과 같이 일하지 않았다면 과연 위의 표현이 가능할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예상한 익숙함은 실제로 내가 거주하고 있는 기간에도 늘 들려오던 대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소문에서 기인한다. 그곳에는 그런 루머 아닌 루머, 풍문 아닌 풍문이 그 당시에도 떠들고 있었다. 1934년 대지진 참사 이후로 70-80년을 주기로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그게 2010년대라는 소문이었다. 또한 이러한 전설 같은 예언은 단지 저잣거리 소문만은 아니었다. 미국 대사관은 네팔 거주 자국민에게 비상대피 배낭과 지진 예측기를 지급했고, 평소에도 대피 훈련을 하곤 했다. 한국 대사관도 대피 장소를 공지하고, 긴급한 대피를 위해 평소에 대피용 배낭을 꾸려놓을 것을 권고했다. 이런 부산한 소문과 나름의 예측에 나 또한 여권에 300달러 정도와 신용카드 한 장을 넣어두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건 아주 낯선 느낌이다. 내가 살았던 곳의 참상이 주는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지진으로 피폐해진 모습은 비참함을 넘어 남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있을 때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기적인 안도감은 이 모든 것들과 섞여 향수로 다가온다. 참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이 지구 반대편 남미에 있는 나에게 그건 뭐랄까, 약간의 몽롱한 악몽과 비슷하다.
사실 처음 글을 요청 받았을 때 국제사회 구호 및 원조에 대한 이야기도 주요한 주제 중의 하나였다. 네팔은 지금까지도 많은 원조를 받는 나라이며, 네팔의 ODA(공적개발원조) 규모는 2001년 이후로 현재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1년 네팔의 공적개발원조 규모는 GNI 대비 4.7%, 8.92억불로 전체적으로 ODA 의존도가 높은 나라이다. 주요 원조국의 경우에도 영국, 미국, 중국, 독일 등 다수의 서구 선진국 원조기관들이 지속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는 실정이며, 한국도 지난 5년 (2009~2013년)간 네팔에 대해 약 25개 부처, 기관에서 약 9800만 달러(한화 약 1,073억 원)를 지원했다.
사실 지진이라는 엄청난 재앙 앞에서 구호 및 원조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실례인 듯하다. 이 주제는 어떤 입장에서 보자면 논란이 될 수도 있다. 지구의 어느 한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고통에 시달리는데 굳이 갑론을박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일단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히말라야의 작고, 가난한 나라를 돕는 것이 우선 과제가 아닐까? 그래서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련다. 대신 네팔의 속사정을 조금 더 이야기하고 이들이 왜 이런 참사를 사전에 알고도 막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네팔은 1995년 네팔 인민해방군(마오이스트 반군)이 조직되면서 시작된 오래 내전으로 피폐해진 나라이다. 마오이스트 반군과 왕정의 오래 대립으로 혼란 그 자체였다. 비렌드라 국왕이 2001년 사망하면서 전세가 마오이스트 반군 쪽으로 기울었고, 이후 여러 부침을 겪으면서 2006년 이 내전은 종전되었고, 2008년 제헌국회가 소집되었으나 아직까지도 헌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혼돈의 상태에 있다. 심지어 2011년 1월까지 UN 평화유지군이 주둔할 만큼 최근까지도 불안정한 국가였다. 왕정파, 마오이스트 정당, 친인도 정당 등 거대 정당을 포함해 다수의 소수 정파가 존재하고, 120개가 넘는 카스트가 있으며, 다양한 소수 민족이 존재한다.
또한 네팔에는 40도가 넘는 더위가 빈번한 인도 국경의 떠라이 (Terai) 지역부터 8,000미터 고봉이 존재하는 히말라야 산맥 (Himalaya Mountain)까지 다양한 지리적 환경이 존재한다. 인도 국경과 히말라야의 산간지역의 경우 이런 극단적인 환경적 차이로 인해 인종적, 문화적 차이도 크다. 실제로 인도 국경, 떠라이 지역의 경우 자신의 국가 정체성을 인도에서 찾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이유로 다수의 의견이 항상 대립하고, 이해관계가 상충한다. 그 결과 왕정 이후의 새로운 정치체제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지 못했고, 정치와 국민의 삶은 분리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결과로 네팔은 아시아 최빈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고, 1인당 국민소득은 아시아 최저이다.
비록 많은 원조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제로 네팔 국민들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수자원 이외에는 마땅한 자원도 없고, 내륙국가라는 취약점 그리고 45%에 달하는 실업률 때문에 결국 다수의 네팔 국민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인도, 중동, 아시아 등 해외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2013년 UN 보고서에 따르면 200만 명이 넘는 네팔인들이 현재 외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들이 송금하는 액수는 전체 GDP의 22.9%에 이른다. 오늘도 많은 네팔인들이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네팔 외교부 건물 앞에서 줄을 서고 있고, 그들 중 일부는 한국을 선택하기도 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2014년 현재 고용허가제로 2만2천여 명의 네팔 노동자들이 한국에 입국했다. 결국 다수의 국민들이 외국에 나가서 험하고 힘든 노동을 통해 네팔 국부의 4분의 1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리히터 규모 7.9의 강진과 여기에 수반되는 수 차례의 여진에 아시아 최빈국 네팔이 이러한 막대한 피해를 입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일부 언론이 무능한 정부와 내진 설계되지 않은 건물로 인한 인재라고 단순하게 결론을 내리는데 이건 네팔의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내리는 섣부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불안정한 정치 체계, 경제적 빈곤, 다양한 인종 및 종족, 카스트 제도, 높은 실업률 그리고 불리한 자연환경 등 이 모든 것을 고려한다면 이번 피해는 불가피한 상황일 것이다. 과연 아시아 최빈국에게 내진 설계가 된 건물을 지으라고 하는 게 현실성 있는 이야기인지 먼저 물어봐야 한다.
일부 언론에서 1주일 전에 대지진을 알았고, 네팔 정부가 대책을 논의했다고 하지만 지진의 정확한 발생 시간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누가 모든 국민을 대피시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인재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나 현재 네팔의 상황을 고려하면 인재라고,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고 비판을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이다. 단지 속수무책의 상황에 빠졌을 뿐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가장에게 왜 미리 건강검진을 하지 않아 암을 키웠냐고, 그래서 가족 전체를 힘들게 하냐고 이야기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가장 또한 충분한 경제적 여유와 시간이 있었다면 사전에 검사를 받았을 것이다. 단지 그런 환경이 주어지지 않은 것뿐이다. 모든 결과를 그 가장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네팔도 마찬가지다. 아시아 최빈국의 나라에게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피상적인 분석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그런 상황에 있다는 것이 모든 것을 대변해주지 않고, 충분한 이유라고 여기기 힘든 것은 사실이나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해있는 당사자에게 교과서나 매뉴얼에서나 볼 수 있는 기준을 무조건 들이대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고, 정상적인 것도 아니다. 또한 게을러서,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도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차별, 과도한 노동, 위험한 작업환경에 시달리면서 해외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는 부정될 수밖에 없다. 현재 지진으로 인해 고통에 시달리는 많은 네팔인들을 생각하면 우선 어떻게 하면 그들이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대자연의 재앙 앞에 책임을 묻기 보다는 피해를 입은 네팔의 국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김화준 (한국국제협력단 파라과이 사무소 보건의료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