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생산하는 몸과 건강의 의미

‘건강’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단어이고 쓰임새도 많다. 그러나 건강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해보면 너와 내가 같은 단어를 말하는 건지 아리송해진다. 어떤 것이 건강함의 기준이며, 건강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며, 건강권의 내용은 어떠해야 하는지 논의하다 보면 때때로 우리가 지금까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자각이 번뜩 들기도 한다.

‘건강’을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실제로 건강의 의미는 다양하다. 근대에 들어 건강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 상태’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질병/장애를 건강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놓고 건강을 정의하자면, 과연 질병/장애의 상태와 건강한 상태를 이분법적으로 어떻게 나눌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든다. 건강에 대한 이러한 정의에서 어떤 증상이나 상태를 질병이나 장애로 볼지, 그러한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지, 모든 고통이나 아픔은 건강의 대립항이 되어야 하는지 등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질병과 장애가 없는 상태의 개인이라면 모두가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건강’이라는 단어에 담겨있는 풍부함에 비해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 상태’라는 정의는 앙상하기 그지없다. 여전히 건강과 질병/장애는 대립되는 것처럼 이해된다.

‘건강’이란 대체 무엇인가?

1948년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는 “건강이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WHO, 1948)”이라고 정의한다.1 건강의 사회적 차원을 명시한 것이다. 단순히 질병이나 손상, 장애가 없는 상태보다 개인이 몸과 마음, 정신적으로 안녕한 상태를 누리며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태가 건강의 의미로 적절하다. 그러나 이러한 ‘건강’의 의미를 지켜내고, 구체적인 내용을 사회 안에서 합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여성의 건강은 성/재생산 건강(sexual/reproductive health)의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는 성별, 재생산,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성의 건강이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안녕’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보장되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은 단순히 임신, 출산의 과정에서 필요하거나 요구되는 생식기 건강과 그를 뒷받침하는 의료적 체계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강압, 차별,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즐겁고 안전한 성경험을 가질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와 성적 관계에 대해 긍정적이고 존중하는 접근이 요구된다. 성건강이 획득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의 성적 권리가 존중되고 보호되며 성취되어야 한다(WHO, 2006)”.

장애 여성의 성/재생산 경험과 건강

윤리적인 언어로 여성 건강의 보장을 주창하는 것에서 벗어나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에 작용하는 구조적 힘을 직시할 때 ‘건강’의 의미는 달라진다. ‘건강’은 애초에 개인의 고군분투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한 개인이 속해있는 사회를 벗어나서 이야기될 수 없다. 따라서 건강은 우리가 더 좋은 사회를 위해 지향해야 하는 개념인 동시에 사회의 부정성이 우리의 몸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이 진행했던 연속 간담회 과정에서 드러난 장애 여성의 성/재생산 경험은 장애와 여성의 몸에 개입하는 사회의 차별과 배제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장애를 가진 여성은 파트너와 성관계를 한다는 전제 하에서 필요한 피임에 대한 정보나 적절한 성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남성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협상력이 있는 성적 실천을 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성관계시 자신의 몸과 장애에 미치는 단일하지 않은 변화들을 판단할 수 있는 의료적 정보도 부족하며, 이는 성관계가 임신으로 이어졌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산부인과를 찾더라도 장비의 문제로 적절한 검진과 치료를 받지 못하였고, 임신을 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 피임을 하지 않았으나 임신이 되기도 한다. 낙태와 불임 수술을 종용, 강요받는 것뿐만 아니라 장애로 인해 출산을 할 병원을 찾기도 어렵다. 출산의 경우에도 산모의 몸에 최선인 방식을 고민하기보다는 당연히 제왕절개로 이어지고, 출산 이후에 장애의 정도와 몸에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적절한 치료나 개입, 정보 제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경험들은 장애 여성이 한 사회 안에서 재생산이 요구되는 적합한 성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장애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에 대한 논의와 고민 없이 장애 여성의 건강을 논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보여준다. 장애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을 외면하고는 장애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 전반에 대한 논의를 해나갈 수 없다.

또한 장애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에서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의 생식기 건강, 의료 접근성, 자녀 양육 과정에서의 어려움 등 모성 건강을 분리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 장애 여성이 경험할 수 있는 관계의 문제, 폭력의 문제, 차별의 문제 등이 모두 성 건강과 함께 논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 건강이 보장이 되지 않는데, 모성 건강이 실현될 리도 만무하지만, 더 큰 우려는 이러한 접근이 몸과 경험을 분절하는 덫이기 때문이다. 성관계 중에서 임신으로 이어지는 성관계만, 파트너쉽 중에서 가족으로 보장되는 파트너쉽만, 신체 전반에 대한 유기적인 접근이 아니라 생식기 건강만 분리하는 또 다른 배제이다.

‘건강’을 어떻게 이야기할 건가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에 참여하고 간담회를 이어가며 여전히 고민으로 남는 것은 장애를 가진 여성의 재생산 경험에서 ‘건강하기 위한 실천’ 또는 ‘건강을 위한 노력’이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부인과 검진을 받거나, 피임을 하거나, 또는 임신을 준비하거나, 출산 과정에서 자신의 몸에 가장 적절한 방식을 고르거나, 원하는 병원을 택하거나, 출산 이후의 몸의 변화에 대한 산후조리나, 양육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해결하거나 하는 개인의 의지들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다양한 의료서비스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가 ‘건강’에 대해 어떤 의미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여전히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당연시하고, 건강이 나빠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간주하는 것은 아닌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더 이상 건강할 수 없다고 여기고 있는가. 더구나 신체적으로 무리가 갈 수 있는 성관계, 임신과 출산을 ‘선택’한 여성이라면 자신의 신체에 나타나는 손상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근대적인 의미체계에 머물러 있는 건강 개념은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기준이 되기 쉽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도움될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건강은 절대적이고 도달해야 하는 개념이 아니며, 병리적인 기준이 전적인 권위를 가질 수도 없다. 당연히 생산성을 위해 끊임없이 더 ‘건강’해져야 한다는 소비의 주문과도 거리가 멀다. 건강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지점이자, 나와 사회의 안녕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논의되는 장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장애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에 대한 논의는 출산을 한 장애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별개의 쟁점일 수 없다. 개인과 사회의 안녕을 위해서, 사회적 정의의 관점에서 총체적 문제 제기를 이어가야 한다.

1. 해당 정의의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Health is a complete state of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 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WHO, 1946)” 간혹 이 정의에 영적 건강(spiritual health)가 추가되었다고 하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영적 건강은 1998년에 제안되었으나 최종 인준되지는 않았다.

유림(건강과대안 젠더건강팀 연구원) / 미마이너 2016년 1월 7일자
- 이 글은 <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 활동의 결과물로서 비마이너와 인권오름에 공동 게재 중인 8차 기획물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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