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대 국회가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건강 정책 다섯 가지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는 결과를 내며 끝났습니다. 5월말 개원을 앞두고 있는 20대 국회가 19대 국회와 달리 노동자, 서민을 위한 국회가 될 것인지 관심이 많습니다.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있는 이 때 20대 국회가 노동자, 서민의 건강을 챙기고 보살피는 국회가 되기를 바라며 20대 국회가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건강 정책 다섯 가지를 제안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만큼 건강은 중요합니다. 건강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입니다. 하지만 건강은 개인이 지키려 노력한다고 지켜지는 게 아닙니다. 건강을 나쁘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나서야 합니다. 정치가 국민들의 건강을 챙겨야 합니다.

20대 국회가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건강 정책 첫 번째는 최저임금 인상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시장 정책 혹은 사회 정책이지 이게 왜 건강 정책이냐고 되물으시는 분들이 계시겠지요. 물론 맞습니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자, 서민의 건강을 향상시키는 데 그 어떤 정책보다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많습니다.

건강 불평등이라는 얘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없는 사람들일수록 일찍 죽고 병도 많이 걸린다는 얘기지요. 안타깝게도 이는 비유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소득 수준이 높아야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사실은 저소득 국가뿐 아니라 고소득 국가에서도 확인된 사실입니다. 한 사회의 소득 불평등 정도가 심할수록 건강 불평등도 심해진다는 것도 사실이죠. 모두가 월 200만 원씩 똑같이 버는 사회에 견줘, 80%는 100만 원도 못 벌고 1%는 1000만 원 이상 버는 사회의 평균 수명이 더 짧습니다. 한 사회의 최저임금을 올리면 그 사회의 불평등이 감소합니다. 그러므로 최저임금 인상은 한 사회의 평균수명을 늘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더 직접적인 건강 효과도 있습니다. 저소득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먹거리 환경이 좋아져서 비만이 줄어들고 당뇨병,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도 줄어듭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저소득 노동자들의 흡연률도 떨어져서 담배로 인한 건강 피해도 줄어든다고 하구요.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줄어들어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 발생률도 낮추므로 자살 예방 효과도 있습니다. 여러 모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 정책인 것이지요.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임금위원회의 일이므로 국회가 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죠.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위원이나 사용자위원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분들이 국회의원들이시잖아요.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국회 결의안 같은 걸 통과시키면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도 압력을 받지 않을까요? 지레 우리 역할은 아니야 하고 물러서지 마시고, 저소득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에 힘 실어 주세요.

20대 국회가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건강 정책 두 번째는 노동시간 단축입니다. 이 역시 최저임금 인상처럼 이게 왜 건강 정책이냐고 되물으시는 분이 계시겠죠? 그러나 노동시간이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노동시간 단축 정책은 당연히 건강 정책에 속합니다. 과로가 심장병, 뇌졸중 등 이른 바 과로사, 뇌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너무 오래 일하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져서 여러 가지 병에 걸리게 되죠. 노동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여가시간이 줄어들고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줄어들어 개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가족 관계, 사회 관계도 파괴됩니다. 2015년 OECD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 취업자는 1년에 1인당 평균 2천124시간을 일해 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 일하는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습니다. OECD 국가 중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독일로 1천371시간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인은 독일인보다 연간 4개월을 더 일하는 셈입니다.

노동시간 단축이야말로 정치적 의제이고 국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하고, 협상을 통해 타협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매년 과로사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20대 국회는 무언가 실제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20대 국회가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건강 정책 세 번째는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저감 정책입니다.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은 천식이나 폐질환 등 호흡기계 질환 뿐 아니라 심장병, 뇌졸중 같은 뇌심혈관계 질환도 일으키고 암까지 걸리게 하는 최악의 건강 유해 요인입니다. 국내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서울, 경기지역에서 대기오염으로 인해 죽는 이들이 한 해에 1만 5천 명에 달하고, 이는 전체 사망의 15.9%에 이른다고 합니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는 노약자나 어린아이들에게 더 치명적입니다. 약하거나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서 대기오염 문제는 불평등과 정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문제는 중국 때문이고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넘어오는 황사나 미세먼지가 없지는 않지만, 한국 하늘을 뒤덮는 미세먼지와 대기오염 물질의 70% 이상은 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했던 다른 나라들이 도입하여 효과를 낸 많은 성공 사례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정치적 의지이고, 산업계나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는 정치 문제이고, 20대 국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20대 국회가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건강 정책 네 번째는 정의롭고 건강한 먹거리 정책입니다. 건강한 먹거리, 안전한 먹거리 정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일찍이 박근혜 대통령도 안전한 먹거리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가 있지요.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말만 했지 국민들의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 보장을 위해 한 게 별로 없습니다. 얼마 전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민의 건강을 위해 ‘설탕과의 전쟁’을 선포하려 했지만, 식품기업과 경제부처의 반대로 꼬리 내리는 사태를 보신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이게 현 정부의 수준입니다.

먹거리 정책 중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 정책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정의로운’ 먹거리 정책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더 짜고 달고 기름기 많은 음식을 먹게 되어, 가난한 사람들이 더 건강이 나빠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경제적 장벽이나 물리적 장벽 없이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20대 국회가 할 일이 많습니다. 대통령이 말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것들을 국회는 국민 건강을 위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대 국회가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건강 정책 다섯 번째는 자살 예방 정책입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자살률 1위 국가입니다. 장기적 저성장 혹은 경기침체 상황에서 자살 예방 정책은 더욱 중요합니다. 경제가 안 좋아지면 자살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한두 가지 정책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판입니다. 우울증 치료 등 정신 의료 서비스 제공으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보는 게 대표적으로 잘못된 관점입니다. 자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사회정책과 더불어 탈시설, 지역사회 중심, 약물의존에서 벗어난 정신보건 서비스 체계 구축이 필요합니다. 반복되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최저임금 인상도 중요한 자살 예방 정책 중 하나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서민들의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건강 정책 다섯 가지를 20대 국회에 제안하여 보았습니다. 다섯 가지에 들지는 못했지만 환자가 내는 병원비 부담 해결, 믿고 갈 수 있는 병원 만들기 등 의료와 관련된 정책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의료 정책도 20대 국회가 노동자, 서민 편에서 불평등을 감소시키고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추진해 주기를 바랍니다.

한국 경제가 어렵습니다. 경제가 어렵다보니 경제 문제 외의 문제는 다 뒷전으로 밀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경제는 살림‘살이’를 낫게 만드는 것입니다. 죽거나 건강을 잃은 다음에 경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20대 국회가 좁은 의미의 경제문제뿐 아니라 정말로 사람을 살리고 ‘살이’를 나아지게 만드는 일에 애써 주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작은책 2016년 6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상윤(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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