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담뱃갑 경고그림, 규제개혁위원회, 그리고 보건의료운동

2016년 4월 22일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는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을 심의하면서 담뱃갑 상단에 부착하기로 한 경고그림을 담배회사의 “자율”에 맡기라고 결정하였다. 이 결정에 대해 담당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즉각 재심을 청구하였고, 한국금연운동협의회는 규탄 성명을 내고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는 등 반대 활동에 나섰다. 대부분의 언론도 규개위의 결정에 비판적 이었다. 중앙일보는 취재일기를 통해 규개위의 결정이 국민건강 보다는 담배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흡연제로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녹색소비자연대, 소비자를 위한 시민의 모임 등 소비자단체, 대한의사협회는 물론 진보적인 보건의료단체연합와 대한예방의학회, 대한가정의학회 등 의학전문가단체도 규개위를 비판하는 성명에 동참했다. 규개위원회 위원장이 김앤장의 고문이라는 사실과 규개위원 중 한 사람이 국내 담배회사의 사외이사로 3년간 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은 점점 더 규개위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더구나 규개위 회의록이 공개되고, 규개위가 경고그림의 상단배치를 반대한 이유가, 상단에 배치할 때 그림을 가리기 위한 가리개를 만드는데 담배회사가 약 1,300억 원의 비용이 든다는 점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규개위가 국민건강이 아니라 담배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졌다. 보건복지부는 경고그림의 상단배치가 하단배치에 비해 더 담배소비를 줄이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설득하기 위한 자료를 만들고, 규개위원에 대한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2016년 5월 13일 금연운동협의회와 흡연제로네크워크는 규개위가 열리는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규개위를 규탄하는 피케팅을 진행하였고, 그날 저녁 규개위는 당초 결정을 번복해서 담뱃갑 경고그림의 상단배치를 의결하였다.

 

담뱃갑 경고그림에 관한 담배규제기본협약 규정

 

담배는 전 세계에서 매년 약 6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상품이다. 이런 이유로 국제연합은 2003년 담배규제기본협약(Framework Convention on Tobacco Control 이하 FCTC)이라는 공중보건 최초의 국제조약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담배규제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FCTC는 담뱃세 인상을 포함해서, 공공장소 실내금연, 금연캠페인, 담배성분에 대한 규제, 미성년자 담배 판매 제한, 담배 판과 광고, 후원에 대한 금지 등 다양한 담배규제정책의 시행을 각 나라에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5년 FCTC를 비준하였기 때문에 이 조약의 내용을 따를 의무를 가지고 있다. FCTC 11조에는 담뱃갑 주요면의 최소 30%, 가능하면 50%에 경고그림을 부착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이를 비준 3년 이내(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에 이행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이 규정을 8년 동안이나 지키지 않고 있는 셈이다. 경고그림은 2001년 캐나다에서 최초로 도입된 후 현재 71개국에서 시행중에 있고, 2016년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101개국에서 시행예정일 정도로 광범위하게 도입된 담배규제정책의 하나이다.

 

담뱃갑 경고그림의 효과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넣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담뱃갑의 역할을 살펴보아야 한다. 담뱃갑은 담배 판매 전략의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담뱃갑은 경쟁 시장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편의점 진열대나 흡연자가 지니고 다닐 때에도 광고 효과를 나타낸다. 매스미디어를 통한 광고가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서 담뱃갑은 담배를 광고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의 하나인 셈이다. 편의점에 진열된 담뱃갑은 비흡연자에게 흡연을 시도하도록 하고, 최근 금연자에게는 흡연 재발을 유발하며, 흡연자에게는 담배를 충동 구매하도록 한다. 흡연자는 담뱃갑을 하루에 약 20번, 1년이면 약 7만 번 이상 주머니에서 꺼낸다. 카페의 테이블 위에 있는 빈 담뱃갑도 광고수단으로 이용된다. 담배회사는 광고수단으로서 담뱃갑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넣는 이유는 이런 광고 효과를 없애려는 것이다. 먼저, 소비자에 대한 담배의 매력을 줄이는 것이다. 경고그림을 넣은 말보로 담뱃갑은 흡연자에게 덜 매력적으로 보인다. 둘째, 담뱃갑의 건강경고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단순한 경고문구에 비해 경고그림을 더 주의 깊게 살펴본다. 셋째, 소비자들이 담배의 해로움을 낮게 평가하지 못하도록 한다. 소비자들은 경고그림이 없는 담뱃갑을 볼 때 그렇지 않은 경우 보다 담배가 덜 해롭다고 생각한다. 이런 세 가지 효과를 통해 결국 청소년은 담배를 덜 시도하게 되고, 흡연자는 담배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담배회사의 반대와 국회 통과

 

어떤 담배규제정책이 담배소비 감소에 효과가 있는지를 알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담배회사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이를 “비명(scream)” 테스트라고 한다. 호주에서 담뱃갑의 브랜드를 모두 없애고 큰 경고그림을 넣은 소위 ”민무늬 담뱃갑(plain packaging)”을 도입했을 때, 담배회사는 이 제도가 담뱃갑의 상표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주장했고, 호주 정부를 WTO에 제소했으며, 홍콩과 맺은 무역협정을 이용해서 투자자 국가 제소를 했다.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서 이 제도를 반대한 것이다. 강력한 경고그림 도입이 담배소비를 줄여 담배회사에 손해를 입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도입하는 경고그림은 주요 면의 30%로 인도나 태국의 85%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담배회사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담배회사는 경고그림이 담배 판매인이나 임산부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하였는데, 일부 국회의원은 담배회사와 동일한 논리로 이를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초에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다시 제동이 걸렸다. 여당 국회의원 한 사람이 ‘혐오감’을 이유로 이를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여론의 역풍을 맞은 이 국회의원은 결국 반대의견을 접었지만, 법안에 경고그림이 ‘지나치게 혐오감을 주지 아니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삽입되었다. 이 조항은 앞으로 담배회사가. 도입된 경고그림이 ‘지나치게 혐오스럽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소송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경고그림 도입을 위한 국민건강증진법 심의 과정에서 담배회사와 담배회사가 고용한 법률회사는 거의 국회에 상주하면서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 사실, FCTC 5조3항은 국회나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담배회사나 그 전위조직을 참여시키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고, 담배회사와의 접촉을 하는 경우에는 공개적으로 하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조항은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2015년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면 아주 미흡한 수준이고, 그것도 효과를 담보하기 어려운 ’지나치게 혐오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경고그림 제정위원회와 규개위

 

보건복지부는 경고그림 선정을 위해 경고그림 제정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위원회는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공무원과 이들이 추천하는 전문가와 변호사들로 구성되었다. 이 위원회는 경고그림을 선정하는 실무위원회 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공무원과 이들이 추천한 위원 중 일부는 공공연히 담배회사의 입장을 주장하곤 했다. 어쨌든 위원회는 ‘지나치게 혐오스럽지 않은’ 수준의 경고그림에 합의하였다. 보건복지부는 물론 경고그림 제정에 참여했던 금연운동협의회나 금연 전문가들도 경고그림 도입 규개위에서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규개위는 2014년 담뱃값 인상을 통과시킬 당시, 이미 경고그림 도입에 찬성했으며, 정부가 담뱃값 인상과 경고그림 도입을 동시에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금연운동진영의 잘못된 판단임이 드러났다. 규개위가 열리기 전 한 주 동안의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일부 경제지와 인터넷 신문을 중심으로 경고그림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나 글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한 대학병원 정신과 교수는 경고그림이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칼럼을 한 일간지에 썼다. 이런 일련의 활동에 담배회사가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과거 담배회사가 여러 나라에서 활동한 기록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규개위 당일 보건복지부의 전문가와 담배회사와 편의점연합회 대표자가 규개위에 참여해서 전문가 증언을 했다. 분위기는 경고그림 도입에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어떤 규개위원은 미국과 일본이 경고그림을 도입했느나고 물었고(이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듯 했다고 한다. 사실 미국은 FCTC를 비준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고, 일본은 정부가 JTI의 대주주로 담배회사의 영향력이 강하다), 다른 위원은 FCTC를 지키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규개위 위원 중의 한 사람이 KT&G 사장에 공모한 적이 있고, 최근까지 사외이사를 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정부 측 규개위원들은 아무도 정부안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규개위는 경고그림을 담뱃갑의 상단에 부착하려는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을 거부하고, 이를 담배회사의 ‘자율’에 맡기도록 결정했다. 경고그림 상단 부착으로, 담배회사가 이를 가리기 위한 가리개를 만드는 비용이 더 들고 효과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담뱃갑 인상과 경고그림 도입, 편의점 광고 금지

 

담뱃갑 경고그림을 도입하기 위한 시도는 이미 2002년부터 있었으나 번번이 보건복지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5년에 경고그림 도입이 다시 물위로 떠오른 것은 2015년의 담뱃값 인상 때문이다. 정부는 2015년에 담뱃값을 2,000원 인상 하면서 비가격 정책인 경고그림 도입과 편의점에서의 광고금지를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담뱃값 인상이 금연보다는 세수를 확충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야당과 국민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시도이지만 이것이 동력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정부 특히 복지부는 담뱃값 인상으로 예상 이상의 세수확대를 이루었는데, 함께 약속한 비가격 담배규제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대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 도입 과정에서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경고그림의 도입이 가능하게 된 배경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금연운동 진영이 조직적으로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의사협회, 전문학회 등까지 반대 운동에 참여시키는 등 여론화에 성공한 것도 주요한 요인이다. 낮은 수준의 정책적 의제로 생각하고 담배회사의 입장을 들어주려한 규개위의 결정에 대해, 여론화를 통해 주요한 의제로 만들어냄으로써 결국 규개위의 결정 번복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제 과제는 정부가 약속한 편의점에서의 전면적인 광고금지와 담배 진열금지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는 경고그림 도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편의점 광고와 담배 진열은 편의점 기업에 엄청난 수입을 보장해주고, 담배회사에게는 청소년을 흡연자로 끌어들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광고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간 진보적 보건의료운동은 의료보장과 공공의료 확충 등 의료제도 개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나, 건강위해기업에 의한 건강 피해에 대해서는 환경운동이나 소비자 운동에 비해 소극적인 자세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부도덕한 기업과 이들이 생산한 상품이 국민의 건강에 얼마나 큰 해를 줄 수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이제 진보적 보건의료운동도 담배, 술, 식품 등 건강 위해 상품과 이를 생산하는 기업에 대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참고문헌

 

1. WHO Framework Convention on Tobacco Control. 2003

2. Hammond D. Health warning messages on tobacco products: a review Tob Control 2011;20:327-337 .

3. 조홍준. “민무늬” 담뱃갑(plain cigarette pacakging): 현황과 우리나라 담배규제정책에의 함의. 대한금연학회지. 2013;4(1):1-9.

 

조홍준 (건강과대안 운영위원, 울산의대 교수)

* 이 글은 <의료와사회 5호> 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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