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벌이 입금하자, 박근혜-최순실이 움직였다

미르·K 재단, 박근혜와 재벌들의 추악한 거래

심지어 <조선일보>도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을 비판한다. 그러나 많은 언론과 정치인들은 재벌들이 박근혜-최순실에게 이른바 ‘삥을 뜯겼다’고 한다. 두 보수 야당도 다르지 않은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도한 모금은 “기업에 많은 부담으로 준 준조세적 성격의 기업 ‘삥 뜯기’”(더불어민주당)라든지 “비정상의 정상화는 미르처럼 기업에 준조세를 걷는 것을 없애는 게 핵심”(국민의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재벌들이 청와대 조폭들에게 갈취나 당할 약자인가? 재벌은 또 하나의 권력이다. 재벌들이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에 774억 원이나 냈다면 당연히 대가를 받았을 것이다. 이 거래 내용이 무엇일까? 검찰이나 <조선일보>에 기대할 수는 없다. 요즘은 매일 뉴스를 따라가기도 힘들지만, 진보 언론도 아직 이 부분에 집중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몇 가지 힌트가 있다 싶었다. 재벌들의 모금 날짜, 재벌들의 건의와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설립후 박근혜 정권의 역점 정책 추진 내용이 그 거래 내용이라는 추측이다. 재계 순위대로 삼성, 현대, SK, LG 순으로 돈을 냈고, 이들 4대 재벌이 60%를 넘겼지만 웬만한 재벌들은 다 돈을 낸 이 거래의 내용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 추진 내용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추측이다. (물론 각 재벌들의 거래나 거래 전체를 파악하는 것은 능력 밖이고 이 글의 주제도 아니다.)

입금 완료 다음날, 박 대통령이 한 일은?

언론 중 재벌들의 입금 날짜를 밝힌 것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처음으로 단독 보도한 미국의 <선데이저널>뿐이다. 이 언론 9월 29일 보도를 보면, 기부금 모금 날짜가 미르재단은 2015년 10월 26일로 똑같고, K스포츠재단은 2015년 12월 24일부터 올해 1월 12일까지다. K스포츠재단만 보면 12월 31일 현대 43억 원으로 시작하여 LG가 1월 12일 30억 원을 낸 것으로 끝난다.

‘조폭들은 단순하다’라는 전제하에 나는 날짜를 보았다. 뇌물을 받았으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조폭들의 법칙이니까. 그렇다면 2015년 10월 26일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은 무슨 일을 했을까? 또 지난 1월 12일 다음날 무슨 일을 했을까? 놀랍게도 똑같은 일을 했다.

2015년 10월 27일 즉 미르재단 모금이 완료된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도 예산안 시정 연설’을 국회에서 했다. 이 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예산과는 특별히 관련이 없는 법들에 대해 국회에 특별 주문했다. 첫째, 경제 활성화법 처리 : 서비스 산업 발전 기본법(서비스발전법), 관광진흥법, 의료법, 국제 의료 지원법 처리, 둘째, 5대 노동 개혁법 처리, 셋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FTA 비준이 그것이다.

올해 1월 13일 즉 K스포츠재단 입금이 끝난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은 무엇을 했을까?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담화문에서 국회에 또 다시 주문했다. 첫째, 노동 개혁법 처리, 둘째, 경제 활성화를 위한 서비스발전법 및 ‘원샷법’(기업 활력 제고 특별법) 처리. (이 둘은 같은 주문인데 작년 국회에서 관광진흥법, 국제 의료 지원법이 통과되고 한중 FTA도 비준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재벌들의 모임인 전경련은 무슨 요구를 했을까? 2015년 11월 19일 전경련 회장단은 황교안 국무총리와의 만찬에서 이렇게 요구했다.

“이번 국회 회기 내에 경제 활성화 법안, 노동 개혁 5대 법안, FTA 비준 동의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달라.”

대통령 연설문과 차례까지 똑같다. 이쯤 되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무엇을 둘러싼 거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을까.

서비스발전법, 공공 서비스 민영화와 규제 완화 끝장 법

서비스발전법의 내용은 무엇일까? 이 법 2조는 다음과 같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서비스산업”이란 농림어업이나 제조업 등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을 제외한 경제 활동에 관계되는 산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산업을 말한다.

제조업과 농림어업을 제외한 산업은 모두 서비스 산업이고 대통령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산업 표준 분류표를 보면 의료, 교육, 방송 통신은 당연하고 전기, 가스, 철도, 수도 등 공공 서비스도 다 들어가게 된다.

서비스발전법은 이 모든 산업을 기획재정부 장관이 위원장이 되는 ‘서비스산업 선진화위원회’가 만드는 서비스 산업 발전 5개년 계획에 따르도록 할 수 있는 법이다. 각 부처는 이 위원회에 보고하고 시키면 따라야만 한다. 심지어 세부 계획을 1년 단위로 만들어야 하고, 위원회가 개선하라면 해야 한다. 쉽게 말하자면 기재부가 계획을 내면 각 부처가 모두 이에 따라야 한다는 법이다(기재부 독재법).

기재부는 지금까지 민영화와 규제 완화를 추진해온 부처다. 발전 계획은 당연히 기업에 좋은 민영화와 각종 규제 완화가 될 것이다. 의료 민영화, 교육 상업화는 물론이고 발전, 가스, 전기, 철도까지 민영화할 수 있다(민영화 규제완화법). 전경련이 눈독을 들일 만한 끝장 민영화 규제 완화법이다.

노동 개악법과 조치들의 내용은 다른 필자들이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간략히 다루겠다. 법을 바꾸어 파견 직종을 대폭 늘리고 근로 시간을 늘린다. 실업 급여는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기간제 고용은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난다. 여기에 일반 해고 조치(저성과자 해고 가능),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 없이도 취업 규칙을 바꿀 수 있는 양대 지침이 포함된다. 전경련이 당연히 눈독을 들일 만한 법들과 조치들이다.

철도 노동자, 병원 노동자들을 포함한 공공 부문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는 이유다. 고(故)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2015년 11월의 민중 총궐기에서도 쌀값 보장과 더불어 이 노동 개악과 서비스발전법이 노리는 공공 서비스 민영화에 대한 반대가 주요 요구 사항이었다.

K스포츠재단 모금 완료 후, 박 대통령과 전경련은?

K스포츠재단 모금이 완료된 1월 12일 다음 날 전경련은 무슨 일을 했을까?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그날인 1월 13일 전경련, 대한상의 등 38개 경제 단체는 ‘민생 구하기 입법 촉구 국민 운동 추진 본부’를 결성했다. 국회가 서비스발전법, 노동 개악법 등을 처리하라는 ‘서명 운동’이다. 이 추진 본부는 1월 18일 현판식을 하고 가두 서명을 받기 시작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예정된 일정에 없던” 일정으로 “12시 40분쯤 청와대 수석들과 함께 판교역 행사장에 도착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영접을 받으며 서명”을 하셨다. 당연히 1월 19일 황교안 총리, 그 뒤로 국무위원들이 뒤를 따랐다. 관제 서명이라는 비판이 뒤따른 것도 당연하다.

보라. 거래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재벌들이 입금을 딱 완료하면 대통령이 다음날 딱 연설을 하는 게 바로 이들의 깔끔한 거래다. 대통령이 연설을 하면 그날로 서명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정확한 거래이고, 가두 서명 운동을 시작하면 대통령이 첫날 서명을 하는 것이 이 나라를 다스리는 청와대와 재벌들의 예의바른 거래다.

지금 이 법들은 어떻게 되었나. 원샷법은 국민의당이 전원 찬성하고, 민주당은 기권하여 통과되었다. 노동개혁법은 국민의당이 찬성과 반대를 오락가락 하고 있다. 서비스발전법은 규제프리존법이라는 더 막강한 법과 함께 새누리-더민주-국민의당 합의로 그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이 시국에 이번 주 화요일(11월 1일) 국회 기재위에서 열렸다. 여소야대 국회?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의 반대에도 아랑곳이 없었다. 두 보수 야당이 재벌들의 준조세만 말하고 그 재벌들이 무슨 이익을 보았는지 묻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는 국가 권력의 사유화다. 그 사유화된 권력으로 정권이 재벌들과 합작하여 서민들을 등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워 복지 공약은 실종되었고, 재벌들은 법인세 인하 유지만으로도 매년 수조 원씩의 혜택을 받았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은 더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을 늘리기 위한 노동 개악, 재벌들을 위한 규제 완화, 의료 민영화를 포함한 공공 서비스 민영화를 계속 추진 중이다. 재벌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피해자가 아니다. 그들은 공범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건강과대안 부대표) / 프레시안 2016년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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