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논평]‘제2의 줄기세포 게이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검찰의 차병원그룹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와 정부의 기업 지원을 위한 줄기세포 육성 정책의 전면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1. 어제 JTBC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씨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차움 의원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지방줄기세포 시술을 김기춘 전 실장은 면역세포치료와 줄기세포치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줄기세포에 대한 거품이 형성된 200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사회 지도층과 일부 부유한 계층을 중심으로 피부미용이나 성형목적으로 지방줄기세포 시술이 성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순실씨의 시술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기춘 전 실장이 받은 면역세포치료와 줄기세포치료는 그 종류가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줄기세포치료는 설령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성체줄기세포라 하더라도 아직 안전성과 유효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제한적으로 허가되고 있다. 복지부와 검찰은 최순실씨와 김기춘 전 실장이 받은 줄기세포치료가 합법적이었는지 그리고 이들이 정부의 차병원 그룹 지원에 관여했는지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 나아가 이 병원의 단골인 대통령이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는지 여부도 조사되어야 한다.

2. 이번 최순실씨와 김기춘 전실장의 줄기세포 시술은 ‘황우석 게이트’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황우석 박사의 논문 부정행위는 정부, 언론, 정치권 등의 전 방위적인 지원의 산물이었다. 범부처적 연구비 지원은 물론이고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법률에 위반되지 않도록 <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에 부칙을 붙여 황우석 박사만이 복제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청와대가 있었다. 당시 박기영 보좌관과 김병준 정책실장이 황우석 박사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제2의 줄기세포 게이트라고 의심되는 지금, 당시와 유사하게 청와대가 그 중심에 서있다. 최순실 일가와 박근혜 대통령은 차움 의원의 단골 고객임이 이미 드러났으며 지난 7월 차병원이 체세포복제배아연구 승인을 받기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생명 및 윤리 때문에 (줄기세포 치료가) 엄격하면서도 중첩적인 규제 대상이 되고 있다”며 차병원의 체세포복재배아연구 승인에 힘을 실어준바 있다. 문제는 윤리적, 과학적 논란을 떠나 차병원의 복제 승인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차병원은 황우석 사태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인 2009년 4월 MB정부로부터 난자 800개를 이용해 줄기세포 1개를 만드는 실험을 승인받았으나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순실-박근혜 정부가 또다시 차병원 그룹에게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줄기세포 연구에 특혜를 준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차병원 그룹의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된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복지부와 검찰은 차병원그룹의 △체세포배아복제연구 승인, △무릎연골치료제 임상 승인, △알츠하이머치료제 임상 승인, △제대혈 스크리닝을 위한 유전자 검사 완화 조치, △공공제대혈 은행지정 등 줄기세포와 관련된 정부 지원 과정에 대해서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또한 최순실 일가가 차병원 그룹의 계열사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도 조사해야 한다.

3. 이번 사태를 통해 대형병원과 의료산업체 지원 중심의 줄기세포육성정책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줄기세포 육성정책은 한마디로 ‘규제완화를 통한 경쟁력확보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임상시험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해 임상시험 허가가 난 일부 기업들의 시장 가치를 높이고 주식 가치를 올려 투자자들이 이익을 증가시키면서 산업발전을 꿰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공익적 관점의 장기적인 성과는 불투명하지만 이 과정에서 환자들의 합리적 선택과 건강권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우리나라 줄기세포 규제완화 정책은 황우석 사태 직전에 시작되었다. 당시 식약처는 불법으로 줄기세포를 시술한 업체들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동시에 오히려 규제를 완화시켰다. 응급임상과 연구자임상에 대한 규정을 수정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더라도 위원회의 승인을 얻으면 환자에게 시술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 뜬금없는 조치는 체세포복제배아를 이용해 장애 아이를 치료하고 싶었던 황우석 박사를 위한 것이었다. 2010년에는 RNL 바이오의 줄기세포 시술이 논란이 된 바 있다. RNL 바이오는 규제를 피해 일본이나 중국으로 줄기세포를 가져간 후 현지 병원에서 한국 환자를 시술하는 형태로 사업을 진행했다. 일본에서 두 명의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업체 측은 시술 병원이나 환자의 건강상태 문제라며 책임을 회피 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RNL바이오는 2007년부터 2010까지 약 8000여명의 환자에게서 1인당 1000-3000천만원을 받고 줄기세포 시술을 진행했다. 이 회사는 2013년 상장은 폐지되었으나 시술 받은 환자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름만 바꾼 RNL 바이오는 여전히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이후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는 정치권이 더욱 체계적으로 줄기세포 임상시험과 상업화를 지원하는 정책들을 펼쳐, 2011년 식약처는 바이오 의약품 시장 진입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가 유래 세포 치료제의 허가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이러한 규제 완화로 인해 2011년 ‘세계최초’로 줄기세포 치료제의 시판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4개의 치료제를 시판 허가 했다. 그러나 이들 치료제들은 규제 완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해외서는 팔 수 없는 국내용 제품들이다. (참고로 현재까지 미국의 FDA는 단 한건의 줄기세포 치료제도 허가하지 않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는 규제완화를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차병원 그룹처럼 다량의 배아나 난자를 보관하고 있는 기업들이 줄기세포연구에 배아를 사용할 수 있는 요건을 완화했으며,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에 대해서는 임상 3상을 면제받고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했다.

4. 비선 실세 최순실과 차움의 관계는 우리사회에서 줄기세포 연구, 시술이 어떻게 이해되고 작동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줄기세포연구가 재생의학 분야의 ‘마법의 치료제’가 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현재까지도 효과적인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다. 사실상 이러한 부풀려진 줄기세포에 대한 세간의 기대는 암, 희귀․난치병 환자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잇속을 채우려는 의료산업체들과 정치권의 부추김이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번 사태로 보듯 우리나라에서는 난치병 환자들을 위한 연구에 치중하기 보다는 특정 일부 기업과 병원, 투자자들을 위한 거품경제의 일환으로, 더 나아가 부유한 계층의 항노화와 피부 관리를 위한 방안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 또한 문제다.

규제완화를 통한 성급한 줄기세포 상업화는 사회적 경제적 거품을 형성해 환자들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훼손하게 될 것이다. 줄기세포 정책은 허술한 규제를 통해 업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아닌 기초연구 결과에 기반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공익적 관점을 바탕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2016. 11. 18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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