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사회운동을 살펴보면, 프레이저(Nancy Fraser)의 진단에서 나타나듯이 계급이해를 대신해 집단 정체성이 정치운동의 주요한 동원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마치 문화적 인정이 부정의(不正義)의 개선책이자 정치투쟁의 목표로 사회경제적 재분배를 대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뿐만 아니라 불인정, 즉 모욕이나 무시의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은 점차적으로 자신의 좋은 삶에 대한 기획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정 패러다임은 우리 사회의 부정의와 불평등을 해석하는 주요한 틀로 기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분배 패러다임에 근거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 받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분배와 인정을 둘러싼 논쟁, 혹은 인정이나 분배의 관점에서 사회구조를 해석하려는 시도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인정과 분배 어느 하나의 관점으로 모든 사회문제를 해석하거나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인정 패러다임의 관점이 갖고 있는 사회운동에서의 역동적 힘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정이론이 가지고 있는 역동적 힘, 즉 모욕이나 무시의 경험이 왜 사회운동에서 힘을 가지게 됐을까. 냉전 이후 사회주의 세력의 몰락과, 신자유주의 세력의 등장 및 지구화라는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가속화라는 현상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인정에 주목하게 된 것인지 혹은 인정투쟁과 연관된 경험이 새로운 사회운동의 동력을 만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회운동의 원료는, 불인정에서 나오는 모욕이나 무시같은 도덕적 긴장이다. 그것이 “집단적 자기 존중 가능성의 위치가 광범위한 정치적 저항과 사회적 반란을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회운동의 원료가 된다.
예를 들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감정노동자의 서비스 과정에서 발생하는 ‘갑질’은 감정노동자를 정당한 상호작용의 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갑’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를 통해 감정노동자는 자신이 정당하다고 믿는 자기실현관계의 훼손으로 이어지는 무시와 모욕을 경험한다. 이것은 단순히 갑 1인의 개인적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평가의 결과와 연관된다. 한편 노동을 통한 사회적 가치평가와 사회적 인정이 전적으로 거부되거나 훼손되는 경험은 실업의 순간에도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가치평가를 통한 사회적 인정은 개인이 사회적 경제활동에 참여함으로 획득됨에도 불구하고, 실업 혹은 미취업으로 인해 그 기회가 원천적으로 주어지는 않는 사람은 당연히 불인정, 무시의 경험을 갖게 된다.
모욕과 무시, 사회운동의 원료가 될 것인가
사회적 소수자의 경험은 더욱 파괴적이다. 특히 성적 소수자에 대해 이루어지는 모욕과 무시는 이들을 정당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를 들면, 호네트(Axel Honneth)가 구분한 인정원리와 영역의 3가지 즉, 가족-애정, 국가-권리, 사회-사회적 가치평가의 모든 인정형식 속에서 실천적 자기관계가 지속적으로 부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즉 무시의 경험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경험은 인정의 관점에서 적극적이고 총체적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특정 개인을 문화적 수준에서뿐 아니라 경제적 수준이나 일반 사회권리 등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들이 많이하고 있는 가사노동이나 사회서비스 노동에 대해 사회적으로 낮은 가치평가가 이루어져 온 것도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의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노동에 대한 가치평가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이나 여성의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인정 패러다임을 통해 기존의 사회운동과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운동 모두에 대한 역동적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회 부정의에 대한 경험으로 이어지는 모욕과 무시는 사회운동을 추동하는 중요한 원천이 되어 왔으며, 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심리적 수준에서 해석될 수 없고 사회문화적 수준에서 해석돼야 한다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 다만, 이런 경험이 긍정적 힘을 갖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별적인 모욕과 무시의 경험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사회적 수준에서 공론화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러한 개별적인 힘이 반동적 성격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해 긍정적 성격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은 우리가 옳다고 믿는 약한 수준의 도덕이나 윤리에 매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의 조직화를 위하여
이것의 해답의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으로 프레이저가 제시하고 있는 참여 동등(participatory parity)의 원칙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정의 지위모델 관점에서, 참여 동등의 원칙은 참여자들의 독립성을 보장할 물질적 자원의 분배(객관적 조건), 평등한 존중을 보장하는 제도화된 문화적 가치패턴(상호주관적 조건), 정치적 참여를 보장하는 대표(공적-정치적 조건)라는 조건이 만족될 때 이루어진다. 이것은 참여 동등을 보장하기 위한 조건일 뿐만 아니라 모욕이나 무시의 감정이 공적 토론의 민주적 과정을 통해서 담론의 지위를 획득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것은 무시와 모욕의 경험이 긍정적 사회변혁의 힘으로 작용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의 경험이 해석되고, 사회적으로 조직화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어떤 것이 좀 더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하는지 진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좋은 삶에 대한 다양한 기획이 전면화 되어온 현재, 이러한 기획의 배후로 작동한 자본주의는 실제로는 특정한 기획만을 보장하는 사회적 관계를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갈수록 무시나 모욕의 경험은 중요한 사회운동의 원천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일회용 청춘’을 넘어서 노동을 통한 사회적 가치평가 자체를 받을 기회조차도 박탈당하게 되는 이른바 ‘쓰레기가 되는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사회 부정의의 경험에 주목하고 당사자의 언어와 논리를 인정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일이 요구된다. 다만, 모욕과 무시의 경험을 긍정적인 힘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를 사회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모색돼야 한다는 점이 간과돼서는 안 될 것이다.
박건 /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연구원 / 중앙대학교 대학원 신문 2017년 10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