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갑질 문화와 간호 노동

생명존중을 빌미로 거부되는 자기 존중

들어가며

교수의 전공의 폭행이나 간호사의 (선정적인 댄스) 장기자랑 강요 등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하여, 이른바 의료계의 ‘갑질 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의료분야 종사자, 특히 간호사의 인권이나 노동환경의 열악함, 성차별, 괴롭힘(태움)에 대한 연구나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예전과 다름없다는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고, 그 내부적인 문제의 범위와 조건도 다양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여기서 다룰 수는 없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그 많은 관심 영역 중에서 최근 발생했던 간호사에 대한 병원 내에서의 인권침해나 부당행위 등으로 불거진 사회적 관심을 병원 내 간호사에 대한 무시와 모욕이라는 측면에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먼저 ‘갑질 문화’라는 용어가 갖고 있는 불명료함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간호사라는 직업과 노동이 병원 내에서 어떻게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이를 통하여 간호사 노동조건과 환경에 대한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제시해보고자 한다.

먼저, ‘갑질 문화’라는 말로 표현되었던 ‘간호사 장기자랑’의 내용을 살펴보자. 이러한 행위가 내부적으로 별다른 거리낌이나 특별한 문제 제기 없이 진행된 사실의 이면에는 다양한 원인과 작동 양식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한마디로 ‘갑질 문화’로 단죄하고 개념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최근 보건의료노조에서는 병원 내 10대 갑질 문화 근절을 촉구하는 집회를 가졌는데, 이슈를 제기하는 데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그 원인과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밝혀내기에는 한계가 있는 문제제기 방식이다. 이는 비단 보건의료노조뿐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언론이나 공론장에서 마치 ‘갑질’이 문제의 본질인 것처럼 지적하고, 그것만 타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 갑질 문화의 본질은 또 무엇이고, 그것의 해결은 단지 ‘갑’이 ‘갑질’을 멈추고 정당한(?) 대우를 (온정주의적으로)해주면 해결되는가? 이 정당한 대우는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어떻게 작동해야 하며, 누가 결정하는가 등 논의의 꼬리를 물고 가면 한도 끝도 없지만, 당장 우리는 ‘갑질 문화’로 모든 사회 현상의 ‘적폐(?)’1)를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갑질 논란에 쌓인 한 의료기관의 민낯’이라는 수식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왜냐하면 대체 갑질이 무엇이고, 왜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으며, 이것에 수반되는 결과물들은 무엇이며, 의료기관에서 벌어진 일들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하는 점을 분명하게 구조화시켜내기에 어려운 수식어이기 때문이다. 이번 ‘간호사 장기자랑’으로 촉발된 병원 내 간호사의 노동문화 또는 직장문화는 하나의 원인으로 해석될 수 없는 문제로 봐야 할 것이며, 이에 대한 다양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관점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먼저 병원 내 의료 인력 중 하나인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살펴보자.

병원 의료 핵심인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그동안 한국 의료계에서는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의 문제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다양한 극복방안 역시 제시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인력 부족과 관련하여 간호사의 공급 부족을 이야기하는 관점은 간호사의 양적 공급 부족을 문제 삼고, 전체 간호사의 숫자를 늘리는 방향 즉, 신규 간호인력의 양적 성장을 강조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간호사 공급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의 수익률 압박, 간호사 노동조건의 하락, 여성고용 일반의 문제나 간호사 전문직으로서의 정체성 위기 등을 제안한다(이상윤 외, 2008:46; 김명희, 2013). 그리고 현재 문제의 핵심이 간호인력 배출 부족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간호 인력이 이탈하는 상황, 예를 들어 간호사의 연간 이직률이 17%에 이르는 현실 등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신규 간호인력의 양적 배출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해결방식으로는 고용조건과 근로환경의 개선, 정책과정의 합리화/민주화, 간호인력에 대한 투자, 문제해결에 노동조합 참여 등이 언급된다(이상윤 외, 2008; 김명희, 2013).

후자의 이런 관점과 이에 따른 처방은 분명히 간호사의 노동조건을 개선시키는데 일조할 것이며,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갑질 문화’를 개선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간호사를 병원 내 노동 구조의 하위 파트너로 구조화하고, 핵심의료 인력의 한 축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면서(혹은 형식적인 차원에서만 인정하거나), 의료현장의 동등한 동료로 대하기를 거부하는 일련의 과정들, 그리고 그 속에서 간호사를 성적 대상화하거나 차별하는 사회문화적 시선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핵심적인 문제 역시 함께 지적되어야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병원이라는 현장을 ‘생명을 다룬다는 이유로 위계질서가 당연히 형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식으로 우리가 그동안 매우 당연하게 인식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질문하고 의문시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된 상황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관점을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총체적 의문과 질문의 하나로 먼저 의료행위가 발생하는 병원 내에서의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그동안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사회적 인정을 요구하는 작업은 꾸준히 전개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영국 교육체계의 영향 아래 1800년대부터 직업으로 등장한 간호사의 경우 초기부터 의사와 병원 관료가 통제하기 쉽도록 제도화되었고, 특히 해당 직업은 여성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공식적인 직업적 이미지를 갖기 힘들었다(Delgado etc, 2017). 한국의 경우 최근 드라마 병원선에서의 간호사 복장에 대한 논쟁2) 뿐 아니라 한국 의학드라마에 나타난 간호사 이미지를 연구한 논문(김정은 외, 2013)에 따르면, 간호사가 등장하는 주요 장면은 “간호사가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독자적인 간호를 제공하기보다는 주로 의사의 치료행위 관찰 혹은 병원의 물품과 기구를 준비하고 정리하는 역할”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여전히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며, 사회적 시선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정 혹은 사회적 가치부여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단지 직업에 대하여 사회적 인정을 부여하는 것으로 가능할 것인가? 병원 내 의료행위가 이루어지는 본원적인 작동양식의 문제는 없을까? 그리고 현재 병원 내 간호사와 이들의 노동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과연 ‘직업’의 문제 즉, ‘직업’이 전문직으로서 혹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에 대한 추가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이제 병원으로 들어가 보자. 병원이라는 공간에서의 의료서비스에 있어서 간호인력이 차지하는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각각의 판단에 따라서 그 중요성의 정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간호인력의 노동이 필수적이며,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의료 행위를 연상함에 있어서 의사만을 떠올리는 상황이라면3) 간호인력은 병원 내 핵심인력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여기서 병원 내 핵심인력으로 인정하는 것은 단지 언어적 표현으로 ‘중요하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중요하다’는 것은 그에 따른 제도적, 사회적 변화를 의미하며, 이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그에 따른 사회적, 문화적, 제도적 조건의 변동과 재구조화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갑질 문화’에서 등장한 간호사들에 대한 장기자랑을 경험한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

“43세 간호사입니다. 나이 많은 저도 장기자랑에서 예외는 없습니다. 5년 전 OO병원에 다닐 때 책임간호사인 저에게까지 걸그룹 춤을 강요했습니다. 그 일로 심한 충격과 자괴감에 빠져 바로 이직했습니다. 너무 수치스럽고 모욕감이 듭니다.”4)

비단 성심병원만의 일은 아니다. 다른 병원의 경우에도 장기자랑에 동원된 간호사들은 근무시간 외 따로 시간을 내어 한 달 정도 연습을 하였으며, 무대에 올라 선정적인 춤을 춰야 했고 이 과정에서 극심한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꼈다고 한다.5) 즉, 근무시간 외 추가적인 노동이 강요된 것은 물론 장기자랑 참가를 통해서도 자기 존중이 거절되는 느낌을 가졌다. 유사한 경험은 너무나도 많다. “의과대학장 고희기념행사에서 왜 우리 간호사가 춤을 춰야 하는지 모르겠다”6)는 어떤 병원 간호사의 고백은 병원 내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조건에 대한 무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 밖에 수없이 고발되고 증언되는 경험들을 고려해 볼 때, 현재의 상황은 간호사가 전혀 의료 핵심인력으로 인정되거나 존중되는 상황이 아니며, 오히려 이들 간호사들은 자기 비하와 모욕감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장기자랑으로 촉발된 간호사 노동환경과 이들에 대한 무시와 모욕의 경험을 호네트의 ‘인정이론적 의사소통 패러다임’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자신이 정당하게 누릴 만하다고 여기는 인정이 거부되면서 그와 같은 규범적 전제들이 훼손되면, 그 당사자는 일반적으로 그와 같은 무시의 경험에 수반되는 도덕적 감정들, 그러니까 수치심, 화 또는 분노로 반응하게 마련이다.”(호네트, 2009: 124)

여기에서 인정의 거부란 개별적 수준에서의 경험일 수 있으나, 그것은 사회적 수준에서 결정되는 인정형식에서의 거부를 개인 간의 상호 관계에서 경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호네트에 따르면, 이 속에서 주체들은 “자신들을 도덕적 인격체로 인정하고 또 자신들의 사회적 기여의 몫을 인정하는 상호적 기대의 지평 속에서 서로를 만나”게 되며, 이 속에서 각 상호작용의 주체들이 갖는 도덕적 경험이 “사회적 무시의 감정”이다(호네트, 2009: 123). 이렇게 해서 이들이 경험한 것은 부당한 노동행위에 대한 경험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정당하게 받으리라고 생각하는 상호적 인정의 거부이며, 노동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 조건에 대한 무시와 모욕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실현과 자기 존중의 거부와 무시의 경험

이제 이러한 간호사들에 대해 이루어지는 병원 내외에서의 부당한 대우와 동등한 동료로서 상호작용에서의 배제를 사회적 인정의 거부 즉 무시와 모욕이라는 관점에서 좀 더 다루어 보도록 하자. 간단히 정리하면 좋은 직업을 통한 자기실현 방식의 거절, 그리고 동등한 권리의 인정을 통해 획득되게 되는 자기 존중의 훼손 등이 현재 간호사들이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인정의 거부와 무시의 내적 원인이며, 이러한 무시의 경험들이 현재 간호사들의 투쟁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기자랑 강요를 폭로한 대구가톨릭대병원에는 지난해 12월 27일 노동조합이 설립되었으며, 이를 통해 동등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출범선언문은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 노동자들은 그동안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한 노동의 정당한 권리조차 누리지 못했으며, 장기자랑ㆍ이삿짐 나르기ㆍ병원 청소하기 등 업무 외 부당 지시들을 받아”7) 온 점이 강조되었다. 정당한 권리가 부정되고 거부되는 상황에서의 자기 존중이 훼손된 경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수준에서의 인정 거부의 한 측면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통한 자기실현의 거절이라는 측면에서 무시의 경험도 동시적으로 체험한다. 이것은 “한 개인 또는 다수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채 천대받고 비하되는 경우”(호네트, 2009: 231)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하여 개인은 한 사회에서, 그리고 자신의 일터에서 자신의 인격이 총체적으로 부정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해당 사례에서 본 것과 같이 간호사들은 자기 존중의 차원에서 동등한 권리가 부정되었음을, 그리고 간호사라는 직업 선택 및 직업 활동을 통한 자기실현의 차원에서 거부를 경험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작동하는 방식은 자기실현과 자기존중이 거부되는 근거로서 각 영역에서 작동하고 있는데, 간호사에 대한 성희롱은 최근에는 간호학과 재학생들의 현장실습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경험까지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8) 간호사 장기자랑이 작동되는 방식 역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간호사라는 직업을 통해서 나타난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병원 장기자랑대회를 없앤다고 사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자기실현의 문제와 자기존중의 문제가 중첩되어 나타난 현실, 그리고 내부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젠더권력과 성차별의 문제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안 방안을 고민하면서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직업으로서의 자기실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다소 원론적인 측면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즉, 좀 더 구체적인 수준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이 공론장의 현장에서도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다루어져야 하며, 어느 지점에서 이들의 인격이 훼손되고 상처받고 있는지 지적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참여 동등(participatory parity)의 확보를 통한 상호인정 구조의 확보

이러한 과정을 위해 어떤 영역에서 인격 훼손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와 관련하여 프레이저는 3가지 차원의 정의를 이야기한 바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정의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호인정 과정에서 주체들이 정당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조건을 구성함으로써, 자기실현이나 자기존중의 과정에서 무시나 훼손의 경험을 겪지 않게 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온전한 동료로 타인과 상호작용하는데 있어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경제적 차원의 분배 부정의나 잘못된 분배, 제도적으로 위계화된 문화적 가치, 일반 정치에서의 대표 불능의 3가지 차원이 있다(프레이저, 2016: 429-433). 이러한 3가지 차원의 부정의가 극복되지 않는 한, 무시와 모욕의 경험을 통한 개별 주체의 인격 훼손을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네트가 주장하고 있는 개별 주체의 경험을 개별화시키지 않고, 민주적으로 공론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제도적이고 정치적 수준으로 확장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프레이저의 논의를 참고할 만하다.

먼저 문화적 수준에서 가치 평가라는 측면을 고려해보자.9) 의료공간(병원)에서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가치는 어떻게 나누어지는가? 그러한 가치평가의 기준은 무엇을 근거로 틀 지우는가? 이것은 어떤 사람 혹은 어떤 가치관에 근거하여 누가 핵심의료인력인지를 평가하는 것을 포함한다. 핵심의료인력 여부를 떠나서 특정 직업군에 대한 문화적인 수준에서(병원 내외를 막론하고) 가치평가의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간호사 직군에 대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종속적 이미지, 부차적인 이미지, 혹은 (높은 이직률 등으로 인한) 이탈 가능성이 높은 이미지 등이 차곡차곡 형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것은 간호사 노동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간호사 신규인력 양성을 양적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정부정책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문화적으로 이들 직업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다시 전환된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적 가치평가, 조직 내 질서가 해당 직업군이나 노동자에 대한 가치질서로 전환되는 과정에 대한 평가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기존의 가치질서를 재배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보건의료지원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목소리나, 기존의 보건의료법에 명시된 규정에 이미 나와 있기 때문에 불필요하다는 의견 역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만,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며 현재의 문제를 단지 노동환경의 문제로 협의적으로 바라보면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관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관련하여 병원 내 위계질서와 관련한 문제 제기의 예를 들어 보자. 생명을 다룬다는 이유로 위계질서가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구체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분야가 있고, 생명을 다루지 않는 분야가 있으며 그사이에 어떤 순위가 정해져 있거나 넘지 못할 근본적인 틈이 있다는 것인가? 노동 분업, 즉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의료행위의 위계질서와 그것을 이행하는 과정의 위계질서는 동일한 것인가? 이 속에서 작동되는 젠더권력은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등의 답변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명존중 혹은 생명을 다룬다는 이유로 위계질서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당연시하는 관점은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바로 그 대의명분인 ‘생명존중’을 이유로 개별 인간 자신의 총체성을 훼손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나아가기 쉽다.

이제 병원 내 의사결정 차원에서 참여 동등을 확보하는 문제를 이야기해보자. 현재와 같이 간호사들의 노조 가입률이 저조하고, 병원 측에서도 지속적으로 노조가입을 저지하는 상황에서 노조를 통한 간호사들의 자기 목소리 찾기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가입 및 노조를 통한 문제 제기를 지속적으로 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를 포함하여 병원이라는 구체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결정에서 그 결정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배제되지 않고, 그 결정을 함께 만들어가는 의사결정의 과정을 통해서 참여 동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것은 단지 숙의 과정에 간호 인력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 이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즉 어떤 정책과 행위가 합리적인 것인가를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하며, 이 과정에서 해당 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간호 인력 이외에 다양한 병원인력들을 의미한다)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간호 인력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병원의 의사결정구조 문제이기도 하며, 노조를 논의구조에 참여시키는 문제로 제한될 수도 없고, 그것만으로는 해결될 수도 없을 것이다.

마치며

이러한 문제들은 당연히 갑의 온정주의적 행위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평등하게 구조화된 자원 분배, 상호 동등한 사회관계를 파괴하고 종속적 지위로 떨어뜨리는 제도적/문화적 구조, 그리고 자신이 직접 영향을 받는 각종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배제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회 현실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것을 병원이나 의료계에서만 문제시하고, 내부 구조만을 바꾸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우선 간호사를 병원 현장 의료행위의 동등한 동료로 실질적으로 인정하고, 이어서 병원 내 모든 의료인력 간의 노동분업 구조와 문화적인 수준에서의 재가치 부여, 그리고 의사결정과정에의 동등한 참여 등이 보장되는 구조로 병원 내부를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와 함께 전 사회적으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함께 의제화하는 작업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연대, 즉 행정 권력과 자기 이익 이외에 사회적 통합의 세 번째 원천이 되는 사회적 연대는 “개성화된, 자율적인 주체들 사이의 대칭적 가치부여를 위한 전제와 관련”(호네트, 1996: 221)된다. 따라서 이러한 전제들을 마련하기 위한 원천은 의료기관 내부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가져올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회적 연대의 원천을 찾아 나가고, 이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사회가 대답해야 한다. 이것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갑질 문화’를 극복하고, 우리 모두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어렵지만, ‘마치 처음 들어 본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도 그리 늦은 것은 아닐 것이다.

참고자료

- 김명희(2013). ‘간호인력 개편안의 영향’ 국회 토론회 <간호인력개편안 무엇이 문제인가> 자료집.

- 김정은 외(2013). ‘최근 5년간 한국 의학드라마에 나타난 간호사 이미지와 역할 수행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간호과학연구 논문집> 10권, 2호: 120-132.

- 이상윤ㆍ김화준(2008).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병원 인력구조 개선방안-간호 인력을 중심으로>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 정규원(2002). ‘의료행위에서의 온정적 간섭주의와 자율성 존중’ <법철학연구> 5권 1호: 231-254.

-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낸시 프레이저 외 지음, 케빈 올슨 엮음, 이현재 외 옮김, 그린비 펴냄)

- <인정투쟁>(악셀 호네트 지음, 문성훈·이현재 옮김, 사월의책 펴냄)

- <정의의 타자>(악셀 호네트, 문성은·장은주·이현재·하주영 옮김, 나남출판 펴냄)

- Estelia Garcíia Delgado, Carlos Rafael Nuñnez Peñna and Miriam del Rocíio Santos ÁAlvarez(2017). “NURSING AS A PROFESSION OF BROAD RECOGNITION IN SOCIAL AND HUMANISTIC ASPECTS IN MANABÍI, ECUADOR”. International Journal of Information Research and Review. vol.04. Issue, 09

- Young, Iris Marion.(1990). 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NJ: Princeton Univ. Press.

- 그 외 인터넷 신문기사

각주

1) ‘적폐’란 용어도 ‘갑질 문화’와 비슷한 정도로 모호함과 불분명함으로 가득 차있다. 이러한 불분명함을 헤치고 길을 보여주거나 최소한 한 걸음이라도 앞서 나가야 하는 것이 공론장의 역할이지 않은가.

2) 2017년 10월 13일 자 <헤럴드경제> ‘차라리 다루질 말지..드라마 속 오류에 간호사들 볼멘소리’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6&aid=0001300982

3) 예를 들면, 의료 행위에서의 온정적 간섭주의와 자율성을 다룬 정규원(2003)의 논문에서 의료 행위란 결국 의사와 환자 사이의 상호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것일 뿐이다.

4) 2017년 12월 21일 자 <중앙일보> ‘김치 1만 포기 담그고 회장집 개밥까지…직장인의 절규’

http://news.joins.com/article/22222544

5) 2017년 11월 17일 자 <공감신문> ‘간호사 수난 史 – 성심병원 문으로 엿본 간호사의 눈물’

http://www.gokorea.kr/news/articleView.html?idxno=31900

6) 앞의 기사

7) 2017년 12월 28일 자 <청년의사> ’간호사에 장기자랑 강요한 대구가톨릭대병원에 노조설립’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508398) 2017년 12월 8일 자 <중앙일보> ‘예비간호사 45% “길을 막거나 이동하는 행위로 성희롱 경험’

http://news.joins.com/article/22186282

9) 프레이저(Fraser)는 경제적 재분배의 측면도 이야기 했다. 그리고 매리언 영은 노동분업의 위계적 질서와 이에 따른 사회적 가치를 재분배하는 하는 구조에 대하여 강하게 문제제기한 바 있다(Young, 1990). 그러나 여기서는 노동 분업에 따른 병원 내 경제적 재분배의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다루지 않는데, 여기에는 단지 경제적 재분배의 문제 뿐 아니라 의료행위 자체 내 배태되어 있는 노동 분업 구조와 이에 연계된 사회문화적 가치 문제가 더 심각하기 때문인데, 이는 독자적으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는 영역이다.

의료와사회 2017년 겨울호 / 박건(건강과대안 상임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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