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설립되던 제주 ‘녹지국제병원’ 허가가 제주 주민참여 공론화 결과에 따라 판가름 나게 됐다.
‘의료민영화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이하 제주도민운동본부)’는 지난 2월 1일 도민 1067명의 서명을 모아 제주 영리병원 허가 공론화를 요구하는 청구서를 제출했다. 제주도민운동본부는 ‘여론조사에서 도민 75% 이상이 반대한다는 결과가 가 나온 바 있고, 사업계획서 운영권이 국내 의료법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바, 공개적인 의견 수렴을 묻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청구 의의를 밝혔다.
이미 사업계획이 승인된 사안은 공론조사 할 수 없다는 반대 주장도 제출되었으나 ”사업계획서는 승인됐지만 개원허가는 현재 진행형“ 이라는 심의위원 만장일치로 영리병원 공론화가 결정됐다. 공론조사위원회는 지난 7월 30일부터 31일까지 양일간 영리병원 찬반 도민토론회를 개최했고, 도민 전화설문을 위한 설문 내용을 심의하고 있다.
사실 영리병원에 대한 제주도민의 입장은 이미 여러 차례 조사된 바 있다. 지난 10년간 제주 영리병원 반대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법에 영리병원 설립을 허가한 이후 2008년 ‘외국인 영리병원’을 국내 영리병원 허용으로 바꾸려던 이명박 정부의 시도는 도민 설문조사를 통해 좌절됐다. 당시 김태환 제주지사는 “의료비 급증과 의료서비스 양극화 심화를 이유로 국내영리병원 도입을 반대한다”는 도민 의견을 따르겠다며 국내 영리병원 도입 포기선언을 한 바 있다.
원희룡 도지사 이후로도 반대 여론은 여전했다. 지난 2015년 영리병원 도민 설문조사 결과 제주도민 10명중 8명이 제주 영리병원을 반대했다. 의료비 폭등과 의료서비스 양극화 문제를 넘어 영리병원이 주변 의료기관을 영리적으로 변질시킬 것이라는 문제도 컸다.
제주 영리병원 도입 역사는 실제 온갖 부정부패로 얼룩져 있다. 박근혜가 처음 영리병원으로 허가했던 싼얼 병원은 CEO가 각종 부정으로 중국 감옥에 수감돼 허가가 취소됐다. 이어 녹지국제병원 제 2 투자자로 알려진 북경연합리거의료투자유한공사는 서울 강남에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리거’(首尔丽格‘) 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 사업계획서가 취소됐다. 관련된 서울에 있는 성형병원은 세금 탈루 혐의로 유죄가 판결되어 16억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도 있다.
‘세 번째 녹지그룹의 영리병원 사업계획 역시 미래의료재단이라는 국내 의료법인과 다단계기업과 연결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있다. 국내 의료법인들의 우회적 영리병원 진출의 편법통로로 이용된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녹지국제병원 도입 역사가 비리로 얼룩진 것은 녹지국제병원만이 아니라 영리병원 설립이라는 그 목적 자체가 가진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절박한 환자들을 이용해 고수익을 남겨 병원에 투자한 부자들에게 최고의 이윤으로 배당한다는 목적에 기초한 병원이 어떻게 부정과 비리 그리고 탈법에 연루되지 않을 수 있을까? 영리병원은 의료가 가진 본질, 그리고 지향하는 가치 전체를 파괴하는 제도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영리병원은 건강보험 환자는 받지도 않고, 의료비가 2배 이상 비싸고, 미용 성형이나 일부 부유층들의 건강관리를 목적으로 설립되는 주식회사형 병원이다. 게다가 의료의 질이 떨어져 사망률도 더 높다. 제주도민들이 걱정하듯이 영리병원은 그 병원만의 문제로 한정되지도 않는다. ‘뱀파이어 효과’로 알려진 것처럼 영리병원은 주변 의료기관들을 더 영리화되도록 감염시키는 오염원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정은 공론조사위가 행하는 영리병원 찬반 도민 전화설문 조사지에 ‘영리병원’ 이라는 표현을 넣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는 영리병원이 가진 문제들을 제주도정도 모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녹지국제병원은 중국 부동산 기업인 녹지그룹을 위해 제주도민의 의료환경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도민의사와 상관없이 영리병원을 추진하던 제주도정은 이제와 47병상에 호화롭게 지어진 녹지국제병원을 영리병원으로 허용하지 않으면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며 도민들이 낸 세금에서 이 돈을 물어야 하는 것처럼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다. 그러나 녹지국제병원을 영리가 아니라 비영리로 허가하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된다. 건강보험을 가진 환자들도 맘대로 이용할 수 있는 제주도민들이 바라는 국공립병원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의료영리화 정책을 반대한다’며 당선되었다. 그리고 지난 해 9월 17일 제주도정에 비공개 공문을 통해 “정부는 의료 공공성을 훼손하는 의료 영리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것임을 밝힌 바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라고 회신했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안타까운 일은 복지부장관 명의로 제주도지사에게 발송된 이 공문이 가진 실질적 집행력이다.
’나는 반대해. 그런데 아무 일도 안할래‘ 이런 중앙정부의 태도는 현재 제주에 문을 열고 터져나오려는 뱀파이어들을 온몸으로 막아서고 있는 제주도민들은 국민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내 의료법인이 실질적 운영권을 갖는 외국인 영리병원 허용‘ 이라는 이 네모난 삼각형 모양의 말도 안 되는 영리병원 허용이 가져올 국내 의료제도의 심각한 문제들을 직접 나서서 조사하고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게 주무부처의 역할이다.
제주 영리병원 반대 싸움의 지난 10년 간 정권은 세 번 바뀌었다. 그 중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직접 쌓아 올리던 두 대통령은 현재 감옥에 있다. 10년이면 충분하다. 제주도민의 건강권과 삶의 터전을 지키는 것보다 우선할 것은 없다. 의료비 폭등, 의료의 질 저하, 제주도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영리병원을 청산하자. 그럴 때가 됐다.
건치신문 2018년 8월 13일자 / 변혜진(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