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해 2월 아산병원에서 한 간호사가 자살을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지 않은 2019년 1월 5일, 서울의료원 간호사가 똑같은 길을 선택했다. 안타까운 두 죽음에 적지 않은 사회적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지금 사회가 이 문제를 대하는 시선은 상당히 불편하다. 마치 ‘태움’이 모든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기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의 ‘태움’이라는 그릇된 문화를 지적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에만 매몰되어 ‘태움’이 발생하는 그 구조와 이중적 문제들을 가려버렸다. 특히 ‘태움’이 여성들이 다수인 간호사 직업군의 특성인 듯한 낙인효과를 가져왔고, 한국 사회의 시스템과 병원 사업장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개인 간 문제로 치환시켰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토론이 ‘태움’이라는 상징적 틀에 갇혀버린 결과를 낳은 것이다.
2. 간호사들의 연이은 노동현장에서의 자살 사건을 통해 우리가 되돌아보아야 할 문제들은 너무나 많다. 우선 간호노동의 특수성과 그로 인한 어려움을 들여다봐야 한다. 현 상황에서 가장 확실하게는 한국 간호사들의 자살률을 파악하여, 생명을 살리는 공간에서 생명이 아스러지는 모순을 확인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OECD 국가 중 자살률 1, 2위 다투는 한국은 아직 직업별로 세분화된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도 간호사들의 열악한 상황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영국에서조차 여성 간호사는 자살률이 높은 대표적인 직업군으로 꼽힌다. 전체 자살률보다 23%가 높았고 그 원인으로는 예상대로 정신적인 고충이 지목됐다. 일본에서도 2018년 국가 차원에서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해 집중해야 할 대표적 직군 7개 중에 의료종사자가 들어갔고 간호사가 이를 대표했다. 그리고 그 핵심 원인은 역시 정신적 스트레스였다. 아픈 사람을 한번이라도 간호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간호업무의 특성상 엄청난 감정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환자 치료라는 것이 병원 내 여러 직군들의 통합적 관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노동이기 때문에 직장 내 관계에서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3. 그런데, 한국의 경우 이러한 일반적인 간호노동의 특수성 외에 3교대근무, 장시간근무, 초과근무가 더해진다. 이렇게 되면 그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까지 올라갈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나마 몇 개의 수치를 통해 한국 간호사의 가중된 고충을 엿볼 수 있다. 2018년 복지부 발표자료를 보더라도, 한국 간호사들의 평근 근무연수는 5.4년이고, 신규간호사의 경우 1년 내 이직률이 33.9%에 육박한다. 또한 전체 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 중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49.6%로 절반도 되지 않는다. 즉, 간호사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더 나은 곳이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근무지를 옮겨보지만 몇 년 안가 결국 희망을 접고 ‘탈병원’을 시도하는 절망적인 상황인 것이다.
4. 간호사들의 스트레스를 단칼에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도 가장 좋은 방법은 있다. 인력을 늘리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태움’ 예방 교육이나 프리셉터 제도의 확립 등을 얘기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보완책일 뿐이다. ‘태움’은 1차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고 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 여유조차 없으면 공기처럼 퍼져 있는 의료계의 권위주의가 걸러지지 않은 채 배출되는 것이다. 사람을 늘려 근무시간을 줄여주고 야간근무를 하더라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주어야 웃으며 사람을 가르칠 수 있고, 배우는 사람도 행여 꾸중을 들어도 털고 일어날 수 있다.
이는 결코 신규간호사만을 위해서거나 간호사 복지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앞서 말한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고 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여유’에서 그 사람에는 환자도 포함된다. 아니 환자가 가장 직결된다. 병원에서 가장 밀접하게 환자를 보는 간호사가 인력이 부족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다면 그것은 불친절함에서 끝나지 않는다.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고 박선욱 간호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데 기폭제가 된 것 역시 환자의 배액관이 찢어지는 실수였다.
5. 우선 국공립병원부터 간호사들의 정원을 늘려야 한다. 실제 포괄간호서비스 등을 실시해 간호인력을 대폭 늘린 병원의 경우 간호사는 물론 환자들도 큰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정책을 더욱 확대해나가야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병원이라는 공간을 이윤추구의 틀에서 빼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사립병원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바꾸고, 병상경쟁을 하며 매출 실적을 떠벌리고, 돈 잘 버는 과를 추켜세우는 행태를 중단시켜야 한다. 인건비가 운영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병원에서 이러한 이윤추구 행태가 남아있는 이상 결국 어떻게든 사람을 줄이려는 동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돌림노래 같은 얘기지만, 이로 인한 피해는 다시 환자와 남아 있는 의료인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이윤추구의 동기가 작동하면 식당처럼 베드 회전율이 중요해지기 때문에(입원초기에 고가의 검사가 진행되기 때문) 아직 회복되지도 않은 환자를 내보내려는 압력이 생긴다. 간호사 입장에서 보면 일손은 줄어들고 새로 파악하고 많은 조치를 취해야 하는 신규환자가 늘어만 가는 것이다.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스트레스는 약한 고리를 찾아 나선다. 당연히 가장 약한 고리는 신규간호사다.
6. 이처럼, ‘태움’은 구조적인 문제다. 단순히 개인 간 갈등이나 여성 직업군의 특수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남성이 더 많은 의사 집단에도 만만치 않은 ‘태움’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일차적으로 ‘태움’은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미명하에 위계적이고 때때로 폭력적인 방식이 허용되는 병원의 권위주의가 낳은 괴물이다. 그리고 그 권위주의는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착취를 위한 조건’이다. 즉, 병원이 수익구조에 매몰될수록 확대·재생산된다는 얘기다. 더 많은 수익을 더 적은 인건비를 통해 축적하려는 그 보이지 않는 권력의 운영방식이 죽음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간호사들의 죽음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최규진(건강과대안 운영위원, 인하대 교수) / 건치신문 2019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