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로나19의 시발점은 ‘박쥐동굴’ 아니다

바이러스의 근본적인 기원을 찾지 않는 학계…
농업비즈니스와 동물 유래 감염 병원체의 빠른 순환은 밀접한 연관관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코로나19는 ‘헝거 팬데믹(Hunger Pandemic)’을 초래할 것”이라 예고했다. 2021년 발표된 각종 국제기구 보고서들은 실제 2020년을 ‘세계 기아가 급증한 전염병의 해’라고 평가했다. 학교가 문을 닫자 학교 급식에 의존하던 아이들이 굶주림에 내몰렸고 심화된 빈곤과 이어진 보건의료 체계 붕괴는 기아 사망률을 6배 증가시켰다. 2030년까지 ‘제로 헝거(Zero Hunger)’에 도달하겠다는 유엔 지속가능목표는 절망적일 만큼 멀어졌다. 하지만 세계는 팬데믹 위기 이전부터 굶주림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8억 명의 인구가 영양실조 상태에 놓였고 20억 명가량이 먹거리 불안정성에 처해 있었다. 기아로 고통받는 이들 중 절반은 스스로 식량을 구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개인 관리 의료의 시대 아닌 감염병의 시대
동시에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미국 최대 낙농협동조합들은 매일 370만 갤런의 우유를 덤프트럭에 실어 내다버렸다. 코로나19 시기뿐만 아니라 해마다 전체 생산 식량의 3분의 1이 ‘합리적’ 시장가격을 맞추느라 버려진다. 거대 농축산 기업에서 일하는 육가공 노동자들은 거리두기가 어려운 노동현장에서 기저귀를 찬 채 일하고, 그곳은 코로나19 대규모 감염지가 되기도 했다. 농산물과 ‘우유 호수’를 이룬 폐유 영상이 연일 외신을 뒤덮는 동안, 헝거 팬데믹은 코로나19만큼 무섭게 번져갔다. 이 비효율과 비참에 코로나19의 기원도 결합돼 있다.

마치 ‘감염병의 시대’가 끝난 것처럼 주류 의과학계는 미래 보건의 문제를 ‘정밀의료’나 ‘맞춤형 의료’ 같은 개인 관리 의료의 시대로 규정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감염병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의과학계 내 이런 가정은 어떤 역학적 오류에 기반한 것일까? 우리의 의과학적 기술발전이 미생물의 변화 과정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경제발전은 빈곤을 해결하고 기술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가정? 불행하게도 우리의 과학은 지구 생물 총량의 60%를 차지하는 미생물의 세계를 다 알지 못하며 부와 기술은 평등하기는커녕 불평등이 심화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죽은 역학자들>의 저자 롭 월러스는 역학자들이 병원체가 등장하는 더 큰 인과관계를 쫓아 질병의 원인을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는 태도를 ‘적시 역학(Just-in-time Epidemiology)’이라며 비판한다. ‘적시 생산’과 마찬가지로 겉으로는 효율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위기에 취약하고 임기응변적이라는 것이다. 박쥐동굴은 코로나19의 시발점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원인에 의한 결과일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역학자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알아내겠다며 정작 중요하고 근본적인 발생 원인(박쥐 서식지가 왜 없어졌는지 등)은 조사하기를 꺼렸던 것을 되짚어보면, 이러한 역학적 접근은 위기에 대한 예방도, 비상사태에 대한 예비책도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2015년 보고서를 내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 토지 이용의 변화, 산림 파괴, 생물다양성 손실, 생태계 내 필수적인 보호 장벽의 제거 등이 신종감염병 유행과 확산의 원인임을 지적했다. 1940년대 이후 인간에게서 새롭게 발생한 감염병의 70% 이상이 동물로부터 유래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현재 자본주의 농생태 경제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감염병원체 중 하나일 뿐이다. 2000년 이후만 사스, 돼지독감(신종플루), 에볼라, 메르스, 지카 바이러스가 출현했고 모두 두 대륙의 감염을 넘었다.

식량, 상품이자 금융 그리고 기후 파괴의 원인
감염병은 바이러스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이 출현하는 상황과 맥락을 쫓고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토지, 축산, 화학비료, 제분, 제당 등을 수직적으로 계열화해 거대해진 농식품복합체가 운영하는 농업비즈니스(애그리비즈니스)의 등장과 동물 유래 감염 병원체의 빠른 순환은 궤를 같이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유무역협정 체제는 거대 농화학기업이 종자와 농약시장을 장악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장벽들을 제거해왔다. 식량이 상품이 되고 금융이 되고 환경과 기후를 파괴하는 원인이 된 배경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와 국제기구들은 먹거리 생산 체계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4~30%로 추산한다. 바이오연료나 가축사료용 옥수수, 사탕수수, 콩 등의 단일 작물 경작 방식의 확대, 팜유산업과 공장식 축산을 위한 벌목과 삼림파괴, 화학 비료와 농약에 의존한 화석연료 기반의 애그리비즈니스는 생물다양성을 파괴하고 야생동물 서식지를 빼앗아 신종감염병 발생과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식지 파괴로 오갈 데 없어진 박쥐와 야생동물이 식육용 가축과 접하는 방식이 더 잦아진 것이다.

‘공장식 축산’으로 명명되는 집약적 육식 생산방식은 좁은 공간에 많은 동물을 가두어 키우고, 특정 유전형질을 증폭하기 위한 단일종 사육으로 유전적 다양성을 훼손하고, 상품성을 위해 얼마 기르지 않은 채 도축함으로써 바이러스를 포함한 미생물 변이와 배양에 좋은 조건을 만든다. 가축의 면역체계를 증강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항생제를 사용한다. 공장식 축산은 바이러스 감염과 확산, 새로운 변종이 진화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된 셈이다.

2020년 타이슨푸드 육류 포장 공장에서는 뉴욕주보다 단위 인구당 더 많은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발생했다. 공장이 위치한 인구 1만1천 명의 아이오와주 루이자카운티에는 의사도 살지 않고 병원도 없었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 세워진 육가공 공장은 가장 가난한 비공식 노동자들의 일터이기도 하다. 월마트 같은 유통업체들의 ‘적시 생산’ ‘적시 유통’은 이들의 열악한 노동에 기생해야 가능하다.

‘모두의 건강’을 위한 먹거리 체계 전환
지금 세계 곡물 가격은 1973년 ‘오일 쇼크’ 시기만큼 올라 있다. 유럽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밀과 보리 등의 주 곡물 가격을 더욱 상승시키고 있다. 하나의 위기가 또 다른 위기의 방아쇠를 당기는 연쇄적이고 복합적인 위기의 시기임은 분명하다. 선택은 비선택과 공존한다. 구호를 위해 누군가에게 식량을 주는 선택이 굶주린 다른 이는 버려야 할 수 있는 선택이라면 그 세계는 맞지 않는 세계다. 오늘날의 기아 문제는 대부분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볼 때, 굶주림이 당연시되고 불평등이 심화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낙관을 가지기도 어렵다.

생태학자이자 과학철학자 리처드 레빈스는 유기체의 건강은 영구적 활동이며, 진리가 전체에 있듯 건강은 보건의료나 공중보건보다 더 넓은 생태학적 연관 속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생태의 신진대사 균열을 회복하기 위한 싸움은 ‘모두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빈곤과 불평등을 없애려는 투쟁은 생태 회복력을 강화한다. 우리의 먹거리가 소수 독점에 의해 결정되지 않도록 개입하는 일은 지구로 다시 돌아오기 위한 출구이기도 하다.

병마 중에도 집 안의 쥐 먹이를 챙기던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은 ‘역사는 잔인해도 생명은 아름답다’고 했다. 이윤보다 생명 구하기를 우선하는 일, 그게 잔인한 역사를 바꾸는 출구임은 분명하다.

변혜진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
한겨레21 제1407호(2022년 4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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