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비아그라’ 등 팔면서 의사들에 향응 제공
ㆍ의보 개혁 위한 오바마정부의 경고 분석
의 료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의사·병원들에 향응을 제공하며 불법 마케팅을 해온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에 23억달러(약 2조8600억원)의 기록적인 벌금을 매겼다. 연구·개발보다 마케팅에 돈을 퍼부으며 소비자들에겐 비싼 약을 팔아온 제약업계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의료보험제도 개혁을 위한 제약업계 압박 신호탄으로도 풀이된다.
캐슬린 시벨리우스 보건장관은 2일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 마케팅과 프로모션(상품 판촉)을 해온 화이자가 12억달러의 형사적 징벌금과 1억달러의 과태료, 민사상 징벌금 10억달러 등 23억달러를 내기로 정부와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제약회사의 불법 관행에 대한 벌금 부과는 각 주 검찰이 맡아왔으나 이번에는 시벨리우스 장관이 직접 발표함으로써 제약업계의 부패관행을 뿌리뽑고 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오바마 정부의 의지를 확인했다.
세계 최대 제약사 화이자를 지난 5년 동안 조사해온 보건부와 법무부에 따르면 화이자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와 콜레스테롤 강하제 ‘리피토’, 우울증 치료제 ‘졸로프트’ 등 13종을 팔면서 의사들에게 골프·마사지 접대를 하고 리조트 여행을 향응으로 제공하는 등 불법적인 마케팅을 해왔다. 당국은 이를 ‘반복적 사기행위’로 규정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화이자는 당국과 벌금 액수를 놓고 협상하는 동안에도 같은 행태를 계속 반복해 더 눈총을 샀다.
화 이자 같은 거대 제약회사들은 신약을 개발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액을 들여 판촉에 나선다. 비아그라의 예에서 보듯 한 번 히트하면 연구개발·마케팅 비용을 모두 뽑고도 남기 때문이다. 흔히 ‘블록버스터’로 불리는 이런 초대형 히트작을 내려면 의료계를 끌어들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약품을 내놓고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거나 학술회의 명목으로 호화 휴가를 보내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의료진에 왜곡·과장 정보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화이자 판촉사원들은 관절염 치료제 ‘벡스트라’를 팔면서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지 않은 약효를 마치 입증된 것처럼 의사들에게 선전했다. 벡스트라는 뇌졸중과 심장마비 등 치명적 부작용을 일으켜 2005년 시장에서 퇴출됐다. 하지만 미국 병원들에서는 여전히 진통제로 승인된 약품을 혈압강하제로 처방하는 식의 ‘오프 레이블’ 처방이 드물지 않다고 CNN방송 등은 전했다. 지난 1월에는 또 다른 대형 제약회사 엘리릴리가 정신질환 치료제 ‘지프렉사’의 불법 마케팅으로 14억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AP는 “화이자의 거액 벌금은 오바마 정부가 모든 제약회사들에 보내는 경고”라고 전했다. 이번에 매겨진 민사상 징벌금 10억달러는 벡스트라 부작용에 대한 배상금이다. 이 돈은 워싱턴과 전국 49개주 정부의 연방 의료보험 프로그램 예산으로 들어간다.
토머스 페렐리 법무차관은 “예산은 모자라고 의료비용은 치솟는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정부는 제약업계와 의료계, 보험업계의 고질적인 결탁관계를 끊기 위해 개별 의사들에 대한 처벌도 강화할 방침이다. 의회는 올해 초 제약회사나 의료기기 회사가 의사에게 현금이나 고액 선물을 줄 경우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화이자 측은 “이번 합의를 통해 법적인 문제를 마무리짓고 본업인 약품 개발과 혁신에 주력할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화이자는 앞으로도 5년 동안 불법 마케팅 여부에 대해 당국의 집중 감시를 받게 된다.
<구정은기자 ttalgi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