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파도 병원 못 가는 ‘가난한 노인들의 나라’

(사진출처: 민중의 소리) 작년 한해 건강보험이 무려 6조원 가량 흑자가 났다는 기사가 나고 있다. 일부 경제지등에서는 한술 더 떠 건강보험공단의 흑자를 마치 우수경영의 사례인 듯 보도한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흑자는 경영성공의 예가 아니라, 한 나라의 의료제도의 실패를 드러내는 것이다. 환자들이 경제위기 떄문에 아파도 병원비가 무서워 의료기관 이용을 자제한 결과다.

경제가 어렵다고 환자들이 줄어들었을 리는 만무하다. 특히 한국은 지금 급격히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로 만65세 이후 노인의 비율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2020년에 15.7% 2030년에는 24.3%가 되며 그 속도는 OECD국가중 최고로 빠르다.

사회적으로 노인이 늘어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한 체계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 국민건강의 측면이나 의료이용의 측면에서 보면, 노인인구의 증가는 의료이용의 급격한 증가를 뜻한다. 실제 한 사람의 평생의료비의 90%이상이 65세 이상에서 지출된다. 2009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0세이지만 건강수명은 71세로 마지막 9년은 질병이나 부상 등으로 고통받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즉 노인들이 많이 아프고, 치료를 받을 주된 대상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노인인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민건강보험이 매년 유례없는 흑자를 기록한다는 점은 노인들조차 의료기관 이용을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충족 의료가 노인들에서도 더욱 확산된다는 뜻이다.

나이 들수록 더 아프지만, 치료는 더 못 받는다

흔히 노인이 되면 잘 걸리는 질환을 일으켜, 노인성질환이라고 부른다. 노인성질환은 매우 광범위한데, 당뇨병,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과 노인성치매, 관절염 같은 퇴행성 질환을 통칭한다. 이 밖에도 골다공증으로 인해 사소한 낙상에도 쉽게 발생하는 골절, 심혈관계 질환인 뇌졸중이나 협심증, 심근경색까지 포함할 수 있다. 노인성 질환은 발병 전 예방, 발병 후 질환의 악화 방지, 장기요양환자로 진입하는 것을 방지해야 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노인의 의료이용이 쉽지 않다는 것은 바로 이런 질환이 잘 치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만성 질환으로 불리는 당뇨병이나 고지혈증 등의 경우 이미 한국의 발병률은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수준이다. 2005~2010년 기준으로 당뇨병 24.7% 고콜레스트롤증 86.4%로 당뇨병은 60세 이상 노인의 다섯 명중 한 명꼴이다. 당뇨병의 숱한 합병증을 일일이 거론하지는 않겠다. 이제 국민들이 당뇨병이 무서운 병이라는 것 즈음은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관리를 해야 하고, 예방해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만으로 이런 만성질환을 물리칠 수 있을까?

지금도 TV를 보면 각종 건강프로그램에서 대증요법, 운동요법, 건강보조식품 등을 선전한다. 신문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러한 개인적 대응방법도 효과가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문제의 핵심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당뇨병과 같은 하나의 만성질환만 보더라도 해결책은 사회적이어야 한다. 환자 개개인이 운동을 배우고, 약을 먹고, 혈당을 측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도리어 노인 환자들은 약값을 좀 줄여보겠다고 보건소를 방문하고, 무료로 약을 나눠주는 곳을 방문한다. 노인들이 운동을 할 공간은 없고, 그나마 시설이 좋은 곳은 비싸다. 제때 식사를 해야 하는데 독거노인들, 부부노인들이 서로를 위해 밥을 차려야 한다. 그나마 몸에 좋은 식재료는 비싸다. 영양 상태를 개선해야 하는데, 과자나 사탕으로 열량 채워야 한다. 이것이 현재 한국의 노인의 현실이다.

결국 한국의 노인들은 가난하고, 가난해서 더 잘 아프고, 더 잘 아픈데도 가난해서 병원도 못 가는 신세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8.6%로 OECD 평균인 12.4%와 비교해 너무나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 모든 것이 제대로 된 복지서비스, 연금제도, 건강보험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박근혜 정부는 기초노령연금 20만원이라는 자신의 핵심 공약조차 지키지 않겠다고 한다. 이것도 턱없이 부족한데 말이다.

또한 앞서 말한 대로 병원에 가지 않은 이유는 국민건강보험이 건강보장을 위한 공공보험으로써의 보장률이 너무 낮다는 반증이다. 즉 환자들이 건강보험을 들고도,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많은 돈이 나가야만 치료 받을 수 있는 한국의료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 제대로 된 치료를 노인들이 받을 수 있을까?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간병비 같은 무서운 비급여가 있는데, 자식들에게 용돈이나 받아 생활하는 노인들이 자식이 무서워 제대로 치료 받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4대중증질환 국가보장 100%의 공약조차 폐기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노인 자살율도 높다. 아파도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데, 어찌 우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인성질환의 유일한 해결책, 공적보장제도의 도입

이 때문에 한국에서 노인성 질환의 해결은 사실상 공적보장제도의 조속한 도입이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제 아무리 올바른 예방책과 약물치료, 운동치료를 하려고 해도, 낮은 보장성의 건강보험과 노인빈곤에서는 빛 좋은 개살구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령층은 군사독재시절에 열심히 일해 지금의 한국을 만든 사람들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분들에게 인간답게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산업화’ 시대에 이 분들의 노고에 한국의 기업들도 이제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노인복지를 위한 기업들의 목적세 및 각출금이 필요하고, 건강보험의 기업부담을 늘려 보장성을 확대 해야 한다.

이런 토대에서야 의사들도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노인성질환을 체계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허울뿐인 노인질환대책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만들어야 할 때다.

-정형준 재활의학과 전문의/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회원

* 위 글은 정형준 건강과대안 회원이 <민중의 소리>에 1월 28일자로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출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www.vop.co.kr/A000007220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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